문학잡지 <릿터>
<릿터>에는 '지금, 여기, 이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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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지만 문학잡지를 정기 구독해본 적은 없다. 어쩌다 읽어야 하는 글들이 문예지에 실렸을 때 학교 도서관을 뒤져 읽은 경험이 몇 번 있고, 대단한 작가들이 참여했다 해서 나도 모르게 휩쓸려 산 문학계간지가 집에 몇 권 있을 뿐이다.
여러 책을 꾸준히 읽는 것과 문학잡지를 구독해서 읽는 건 내게는 전혀 다른 의미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지 확신이 들진 않지만, 내게 문학잡지는 삶에서 가까이할 이유가 없는 존재였다. 그리고 아마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릿터> 창간 소식을 들었다. 창간 전 <릿터>에 대한 이런저런 소개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에 남은 건 없고, 가장 좋아하는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글이 실렸다고 했다. 그렇게 창간호를 구매한 게 시작이었다. 2호에는 이장욱의 글이 실려서 샀고, 그러다 3호까지 자연스럽게 샀다.
<릿터>는 지금 이 시간, 여기 이곳에 가장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지 고민하여 주제를 잡고 많은 작가들이 글로 그 주제들을 풀어낸다. <릿터>는 내게 꽤 충격적이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그 시대 속의 '내'가 여러 글 속의 누군가로 그려져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럿 있겠지만, 어떤 이야기 속에서 특정한 경험을 하고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는 점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책 속 인물들은 나와 어느 정도 비슷하긴 했지만, 같진 않았다. 그와 다르게 <릿터> 속 인물들은 나와 꽤 닮아있었다. 혹은 내 친구들과 굉장히 비슷하기도 했다. 그 인물들과 나는 거리가 너무 좁았다.
'지금, 여기, 이곳'을 아주 작게 조각내서 들여다보거나, 아주 멀리서 관망하거나, 그 주변을 들춰보는 이야기들은 나의 폐부를 찌르고 나를 흔든다. 지금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너는 어떤 사람이니, 여기서 어떻게 살고 있니, 어떻게 행동할 거니, 여러 글을 통해 질문들이 나를 주시했다.
대부분 나는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세상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나는 포털 사이트 한 번 열어보지 않고 잠드는 날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개인적인 고민도 자꾸만 불어났다. 그런데 돌아보면 다 같은 이야기였다.
내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왜 고민하는지 한 꺼풀 벗겨보면 그게 '지금, 여기, 이곳'이라서 가지고 있는 고민일 때가 많았다. 희망 없는 저성장 시대에 살고 있어서, 여성으로 살고 있어서, 수많은 SNS와 인터넷에 내가 파편화되어 있어서. (순서대로 <릿터>의 커버스토리이다. 1호 뉴 노멀, 2호 페미니즘, 3호 랜선-자아)
<릿터>를 통해서 나는 지금 이 시대 이곳의 이야기를 마주한다. 더해 어딘가에 매몰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쉽게 놓쳐버릴 이야기가 무엇인지, 내 고민들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발견하고 싶다. 그래야만 바로 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