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듯 바라보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어렸을 때부터 바쁜 엄마, 아빠에게 익숙해서 이른 아침 출근하는 엄마를 잠이 덜 깬 눈 비비며 의젓하게 배웅해 주던 나의 아기.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 즈음이면 떼쓰는 건 없지만 현관 주변에서 놀며 엄마를 기다린다는 돌봐주시던 이모님 이야기를 들으며 출근하는 차 안에서 많이 울기도 했단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첫 공개수업 때 부모님께 선물해 주고 싶은 것들을 잡지에서 사진을 오려 붙이고 발표를 하는데 넌 텔레비전을 붙여놓았어. 우리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서 너를 봐주시던 할머니가 심심해하시니 텔레비전을 선물하고 싶다고.
선생님께서 엄마가 수업 참관하셨는데 혹시 엄마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없냐고 했더니 할머니가 텔레비전을 보시며 심심하지 않으셔야 엄마가 편하게 일할수 있다고 해서 뒤에서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함께 이야기 듣던 엄마들도 덩달아 눈물을 훔치며 "승주 효자네!!! " 하며 엄마를 위로했지.
그 아기가 어느새 16살 청소년이 되었어. 훌쩍 자란 너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더 풍부해지고 매 순간 엄마를 요즘의 세상으로 끌어주고 있구나.
걸음마를 배우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가던 승주가 이제 세상의 흐름을 엄마에게 전해주며 너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사이가 되고 있어서 엄마는 행복하단다.
그런 행복만 충만하게 느끼며 만족해도 될 텐데 사람 마음이 간사하게 욕심이 생긴다. 엄마가 요즘 글쓰기를 통해 시간을 거슬러 여행하느라 더 그렇게 느끼는 걸까? 지금의 너를 보며 엄마를 보는 듯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구나.
학교생활하며 친구를 사귀는 방식, 힘들어하는 것들, 좋아하는 요소들이 마치 엄마의 학창 시절을 다시 보기 하듯 바라보게 돼.
엄마가 가끔 너를 보며 속상해하거나 침묵을 지키게 될 때는 그런 마음이 못마땅해서인 거야. 엄마의 모습을 닮아있는 너를 보며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속상한 마음이 올라오고, 못난 엄마가 될까 봐 침묵으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하는구나.
이상해. 나를 닮은 너의 모습을 왜 부정하는 건지! 너는 엄마보다 더 용기 있게 세상으로 나아가길, 도전에 관대하길, 새로움과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보다는 그런 성향이 많은 아빠를 닮기를 바랐지!
그런데 이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더구나. 너의 성향을 모른 척 엄마의 욕심처럼 너를 끌고 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욕심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당부하듯 너에게 엄마가 후회돼서 그렇다는 변명 같은 이유를 들며 너에게 도전을 부추기게 된다.
엄마는 어땠어? 물어보는 너에게 엄마도 그때 그러지 못했어! 그런데 넌 안 그랬으면 좋겠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우리의 대화방식이 되어 버렸어.
엄마가 스스로를 부정하고 너에게 바라는 게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
엄마가 살아오며 가장 아쉬운 점은 나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 못 했던 거야. 도전해봐도 될 일인데 괜히 무관심한 척 넘겨 버린 것들, 처음 배우면 서툰 게 당연할 텐데도 그 서툶이 두려워서 시도하지 않으려 했던 순간들... 이제야 그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식임을 깨닫게 되었단다.
엄마가 오랜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낯선 나라에서 적응하며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배워갈 때 승주가 엄마를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해 준 것에 더 용기가 생겨서 이제 뭐든 해보지 뭐!! 이렇게 배짱을 부릴 수도 있게 되었구나.
엄마의 새로운 도전들을 가능하게 해 준 것도 너의 격려 덕분인데 엄마는 승주에게 어떤 격려를 전해주고 있는지 격려를 가장한 욕심이 아닌지...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 한결같을 테지만 네가 살아가며 놓치지 말아야 할 너다움을 쌓아가고 잃지 않을 수 있도록 제대로 도와주고 있는 건지 다시금 고민하게 되는구나.
너로 인해 알게 된 기쁨과 행복, 그것만으로 충분하니 더 욕심내지 말고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너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주고 싶은 마음 잊지 않을게.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며 이 마음을 다시금 인장 새기듯 새겨본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 넌 전생에 엄마에게 얼마나 큰 신세를 졌길래 이 세상에 태어나 엄마에게 이렇게 큰 기쁨과 행복을 전해주는 걸까? 그것만으로 충분해. 나를 닮은 너의 모습에 이제 속상해하는 마음, 다르게 커가길 바라는 욕심은 내려놓을게.
너의 꿈을 펼치기 위해 훌쩍 엄마 곁을 떠나도 쉴 곳이 필요할 때 찾아오면 언제나 편히 쉴 수 있도록 너에게 그늘이, 벤치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햇살이 되어 줄게. 나를 바라보듯 너를 보며 사랑한다. 내 강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