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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ersjoo Nov 04. 2023

그녀는 팟캐스트를 끊기로 했다

2인의 감정 소화동반자

어젯밤 늦은 귀갓길. 

평소 같으면 그 시간에 전화하지 않을 조심성 많은 절친이 전화를 했다. 늘 있는 일이 아니라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응! 무슨 일이야?"

"지금 통화 괜찮아?"

"그럼, 괜찮지."

"너무 늦게 전화해서 미안."

"(불안하게 딴 소리 그만하고) 괜찮으니까 말해."


내용인 즉, 일주일 전 함께 당일 여행을 갔다 오며 오만가지 이야기를 다 했는데 그중 한 가지를 내가 혹시 어디 가서 말할까 걱정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우리 둘과 상관없는 사람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소위 말하는 사돈의 팔촌보다 먼 어떤 사람의 이야기였다. 당연히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르고, 심지어 그때 들은 이야기도 전혀 기억 못 하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기억 못 해서. 차라리 잘됐어."

"근데 내가 기억을 한다 한들 어딜 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사생활 이야기를 굳이 하겠어? 나도 그렇지만 너도 진짜 걱정 끝내준다, 으이그."


그렇게 한바탕 웃어젖힌 우리는 늦은 밤 통화를 끝냈다. 


최근 몇 년간 나는 친구의 성격이 점점 더 조심스러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생각 많고 걱정 많기론 어디 가서 둘째 가라 서러운 나도 놀라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늘 담담하고 큰 소리 없이 씩씩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왜 ㅇㅇㅇ는 이렇게 별 것 아닌 것으로도 상상의 나래를 저 끝까지 펼치며 걱정을 하는가'를 주제로 밥을 먹으며 토론 아닌 토론을 한 적도 있다. 그 결과 나이가 먹으면 쓸데없는 걱정이 늘어난다는 세상 공통의 진리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보다 결정적인 원인은 무려 몇 년째 범죄 관련 팟캐스트를 들으며 하루 종일 작업을 해온 것이었다. 실제로 친구는 그 팟캐스트를 듣고 난 후 온 세상이 범죄의 소굴 같고 별별 사람이 다 의심스러워졌다고 했다. 경각심을 갖는 단계를 넘어 지나친 걱정의 단계에 이미 진입한 상황이었다. 


그날 이후 친구는 먼저 해당 팟캐스트를 끊었고, 대신 아이돌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렇게 오랜 시간 절친으로 별 탈없이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도 있지만,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성향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나친 걱정을 하는 범죄 팟캐스트 중독자 친구를 웃고 넘어갈 수 있었고, 당장 그것부터 끊어라 조언할 수 있었으며, 나아가 그녀를 통해 나 자신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끼리끼리 붙어 다닌다고, 우리 둘 다 점점 더 걱정이 늘고 조심성이 많아지고 있지만 서로가 함께라면 감정 소화 불량자까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건설적인 결론도 내렸다. 적어도 감정 소화 동반자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

며칠 후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요즘 뒤늦게 꽂힌 아이돌 그룹 노래를 한 곡 추천해야겠다. 


"한 번 들어봐. 남들이 뭐라 해도 지는 지 갈 길 가겠대. 우리보다 조심성은 없지만 씩씩한 가사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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