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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운동화

첫 나이키  

by Cheersjoo Feb 13. 2025
©cheersjoo©cheersjoo



나이키를 처음 가져본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학교 들어간다고 엄마가 큰맘 먹고 사주신 새 운동화였다. 흰 가죽 위의 진한 핑크색 로고가 마음에 쏙 들었다. 네 자매 중 막내딸이다 보니 일곱 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물려받은 옷과 신발로 (내복 포함) 살아온 나였기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새 운동화라니! 그것도 나이키라니! 


바닥에 앉아 상자에서 꺼낸 말간 운동화 한쪽을 발에 끼웠을 거다. 그리고 공장의 누군가가 무심히 끝을 잡아 돌려 묶었을 끈을 풀었겠지. 그다음 작은 손으로 한 칸씩 끈을 끼워 올라왔을 거다. 타고난 성격을 봐서는 맨 첫 칸에선 끈이 구멍 아래로 가야 할까, 위로 가야 할까를 가지고 한참 고민했을 것도 뻔하다. 맨 마지막 구멍까지 모두 끼운 끈은 리본으로 마무리되었겠지. 마치 선물을 포장하고 리본을 묶듯 매우 설레었을 거다. 


입학식 날을 기다리며 틈만 나면 운동화를 들여다본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옷소매를 끌어내려 손가락 네 개로 눌러 잡은 채 쓱쓱 문지르곤 했다. 멀쩡한 리본을 괜스레 다시 묶어보기도 했다. 장갑처럼 두 손에 하나씩 끼워 빙빙 돌리며 구경도 했다. 




처음 가 본 학교라는 곳은 유치원과 달랐다. 선생님은 우리와 둘러앉지 않으셨다. 

열과 행을 맞춰 앉은 우릴 앞에서 내려다보며 한글 아직 못 읽는 사람은 손을 들라 하셨다. 그때만 해도 요즘과 달라 입학 전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들이 간혹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에 대한 배려란 찾아볼 수었는 선생님의 요구에 몇몇이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선생님은 딱 한 마디를 하셨던 게 기억난다. 


"지금 손 든 사람들은 다음 주까지 집에서 배워오도록." 


늘 밝게 웃으며 포옹으로 맞아주던 유치원 선생님과 달리 학교라는 곳의 선생님은 차가웠다. 가만히 있어도 긴장이 되었고 스산하기까지 했다. 정체 모를 기운에 그 또한 처음 산 실내화 속 발가락 끝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유치원에서 받아쓰기까지 떼고 입학한 나는 집에 돌아오자 선생님의 차가운 경고를 금세 잊었다. 그렇게 입학 후 두 번째 날이 되었다. 그날 어떤 수업을 어떤 분위기와 기분에서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방과 후의 기억은 여전히 가슴 아프게 남아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복도에 놓인 신발장 앞으로 가 신발을 갈아 신고 집을 가려했다. 어느새 애착 운동화가 된 내 나이키를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한 짝이 없었다. 두 짝이 다 사라진 것도 아니고 한 짝만 사라져 있었다. 여덟 살 아이의 작고 작은 심장을 둘로 나눠 절반을 떠나보낸 느낌 아니었을까?


당황이라 해야 할지, 슬픔이라 해야 할지 모를 감정이 파도를 치자 난 그 자리에 서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한 짝의 나이키만을 손에 들고... 

이내 교실에서 나온 선생님은 왜 우냐고 물으셨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곧 짜증으로 바뀌었다. 지금 떠올려도 차가운 얼굴이다. 그리고 이내 징징 우는 나의 등을 세게 떠밀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 뚝 그치고 혼자 찾아보든가, 집을 가든가 둘 중 하나를 해."


그렇게 선생님은 아무도 없는 낯선 복도에 나만을 남겨두고 자리를 뜨셨다.




선생님의 뒷모습에 막막함과 원망스러움을 느끼며 주저앉아 한참을 더 울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후, 낯선 복도의 모든 신발장을 하나하나 확인해 가기 시작했다. 눈물을 애써 옷소매로 닦아내며 하나씩. 우리 반부터 시작해서 옆 반, 그 옆 반, 또 그 옆 반.. 그리고 한층 씩 올라가 2, 3, 4, 5, 6학년 반까지. 전교의 모든 반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아무 곳에도 내 나이키 한 짝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고, 어린애가 참 대단하다 싶지만 그때의 난 그 정도로 애가 타고 속상했던 것 같다.  


결국 실내화를 신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혼자 학교에 다녀온 막내를 맞이하는 엄마에게 행여나 혼이 날까 울먹이며 그날의 일을 말했다. 


- 신발장에 잘 넣어뒀는데 없어졌어?

- 응...

- 아니, 그걸 누가 가져가! 진짜 니가 잃어버린 거 아니야?

- 진짜 아니야...

- 선생님한텐 얘기했어?

- 응...

-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

- 뭐라 하셨는데?

- 혼자 찾아보든지, 빨리 집에 가라면서 나 세게 밀었어...

-.... 

-....

- 실내화 벗어서 갖다 놔. 괜찮으니까 울지 말고. 




지금 생각해 보니 분명히 알겠다. 아마도 엄마가 진짜 속상했던 건 잃어버린 나이키가 아니라 냉정한 선생님에게 상처받은 어린 딸의 마음일 거다. 어느덧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나는, 충분히 눈치챌 수 있다. 


이렇게 나이를 먹을 때까지 그게 무슨 추억이라고 부모님이 간직하고 계신 네 자매의 성적표와 상장들 사이에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의 것도 아직 있다. 그리고 그곳엔 그 후로 1년 동안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차별하신 선생님의 한 마디가 적혀있다.


"이 아이는 선생님의 말에 걸핏하면 우는 습성이 있습니다. 가정 내에서 올바른 교육을 시켜주시기 바랍니다."  


짐작건대 이제는 하늘에 계실 확률이 높은 그분께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을 통해 학교라는 곳의 첫 기억은 아직도 가끔 절 괴롭히지만, 덕분에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이젠 잘 울지도 않아 스스로 감정이 메마른 것 아닐까 싶을 때도 있지만, 덕분에 더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곳에선 조금 더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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