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편적인 경험을 꺼내는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초등학생 때의 단짝친구와 헤어졌다가, 대학생이 되어 연락이 닿고, 삼십 대가 되어서야 만나는 경험에 대해서 말이다. 이 영화는 과거의 보듬지 못한 감정들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이별의 굳은살이라고는 없는 10대를, 그리고 실망스러운 현실에 힘들었던 20대를 떠올리게 한다.
해성은 어렸을 때 돌보지 못했던 실망을 꺼내 그것을 매듭을 지으려 한다. 그 시간은 24년이 지나고 나서이다. 흥행하는 영화들이 흥미진진한 플롯을 형성하여 관객을 기다리게 한다면, 이 영화의 매력은 기다림 자체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궁금하기 해서 기다리기보다는, 기다리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찾을 수 없다. 그저 그의 감정을 상상할 뿐이다.
영화 속 길고 짧은 기다림을 상기시키는 요소들 또한 많다. 많이 등장하는 건, 미국과 한국의 시차이다. 이 시차를 두고 매일 영상통화를 기다리는 해성과 나영이다. 또한 해성은 한국말이 느려진 나영에 대화를 맞추고, 둘은 어릴 적처럼 대화 자체가 목적인 말들을 나눈다. 해성을 통해 나영이 깨달은 것은 자신이 무엇을 기다려왔는지이다. 나영은 어릴 적 1등을 한 해성을 향해 너 때문에 내가 2등을 했다고 울며 어리광을 부리던 울보였다. 하지만 나영은 미국에서의 12년 동안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그녀가 두 번의 이민을 통해 바랬던 건 세계의 작가였지만, 혜성을 통해 12년 동안 정작 그녀가 기다렸던 건 일상을 나누는 친구라는 걸 깨닫는다. 나영은 해성에게 "하루종일 한국으로 갈 비행기 편만 쳐다보고 있다"라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라는 질문 뒤에 연락을 끊는다. 그렇게 글에 전념하려는 듯 외딴 셰어하우스에 들어가지만, 거기서 나영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하고, 이내 아서를 만난다.
나영의 남편 아서 또한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이다. 첫사랑을 만나러 간 아내를 기다리고, 두 한국인의 긴 대화가 끝나기까지 기다리고, 아내의 울면서 들어와도 묻지 않고 토닥인다. 영화는 기다림의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타국으로 이민을 기다리고, 군복무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연락이 오기를, 하물며 택시를 기다리는 시간들까지 애틋하게 그려낸다. 또한 여러 장면들에게 유사한 카메라 시점을 사용하여 마치 한 가지를 상기시키게 한다. 마지막으로는 인연이라는 말로써 기다림의 의미를 더하고, 이번 생이 아니라면 다음 생을 기다리는 해성의 말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던 요즘, 그것에 의미를 생각해 보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