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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Jan 24. 2023

달콩이와 함께하는 사계절

달콩이와 산책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인간이 하루에 한 번 이상 화장실에 가야 하듯, 달콩이도 하루에 한 번 이상 산책을 나가서 배변을 해결해야 한다. 아무리 달콩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라 해도 매일 산책을 나가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집 바깥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궂은 날씨, 뛰어다니는 꼬마들, 바닥에 붙은 껌 등등. 정말로 나가기 싫어서 버티고 버티다가 좀비처럼 현관문을 나설 때도 많다.


그래도 달콩이와 산책을 하다 보면 평소 무심하게 지나치던 사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달콩이를 산책시키기 가장 좋은 계절은 가을이다. 더웠던 날씨가 조금씩 선선해지면서 달콩이의 털은 한껏 풍성해진다. 솜사탕처럼 부푼 채 신나게 걷는 달콩이를 보면 마치 털이 춤을 추는 것 같다. 자그마한 발바닥이 낙엽을 바삭바삭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나의 큰 발바닥으로 낙엽을 따라 밟는다. 둘이서 요란하게 바스락 악기를 연주하며 걸어간다. 가을 웜톤 달콩이가 낙엽 위에 서 있는 풍경은 조화롭다. 색채에 어떠한 이질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달콩이는 낙엽 속에 숨어 있는 냄새도 궁금한가 보다. 가끔 낙엽 더미에 코를 깊이 묻고 한참 킁킁거린다. 탐색이 끝난 뒤 고개를 들고 다시 가던 길을 가는 달콩이의 턱에는 낙엽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웃음을 크게 터트린다. 달콩이는 내가 왜 웃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 표정이 더 웃겨서 나는 더 크게 웃으며 쭈그려 앉는다. 내 몸을 달콩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턱에 붙은 낙엽을 떼어준 뒤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자, 다시 가자! 엉덩이를 톡 밀어주면 달콩이는 신나게 앞으로 나아간다.



달콩이는 추위에 강한 강아지다. 그래서 겨울 산책도 문제없다. 겨울의 센 바람을 정통으로 맞을 때, 달콩이는 여신 포스를 뿜어낸다. 90년대 아이돌 뮤직비디오에서 바람을 이용하여 머리칼을 날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평소에는 제 멋대로 삐죽삐죽 삐져나와있던 털들이 바람의 결을 따라 뒤쪽으로 정렬한다. 달콩이 얼굴의 윤곽이 선명해진다. 나도 모르게 또 달콩이를 향해 쭈그려 앉는다. 예뻐라, 머리를 쓰다듬게 된다. 겨울에는 달콩이의 코가 유난히 차가워진다. 달콩이의 촉촉하고 차가운 코를 나의 이마에 갖다 댄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달콩이와 피부 대 피부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그 순간에는 천사소녀 네티와 수녀 친구가 머리를 맞대고 기도할 때처럼 경건한 마음마저 든다. 겨울은 흔치 않은 달콩이의 콧물 방울을 볼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콧물 흘리는 강아지는 귀엽다. 달콩이가 흘린 콧물을 쓰윽 닦아주고 나면 기분이 좋다. 이렇게 또 달콩이의 콧물마저 소중히 여기는 바보 보호자가 된다.


달콩이는 눈 밟는 걸 좋아한다. 일부러 눈이 녹은 쪽으로 걸으려 해도, 달콩이는 굳이 눈 위로 올라가서 걷는다. 가끔 발이 시린 지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그럴 땐 손으로 달콩이의 발을 감싸서 녹여주면 금세 다시 쫑쫑쫑 걷는다. 겨울 산책을 할 때 가장 불편한 것은 미끄럼 방지를 위해 바닥에 뿌려둔 염화칼슘이다. 개가 염화칼슘을 밟으면 발바닥을 다치거나 화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닥에 염화칼슘이 보이면 달콩이를 안아서 그곳을 지나간다. 눈이 한참 많이 오는 시기엔 염화칼슘이 지뢰처럼 널려있어서 달콩이를 안아야 하는 상황이 자주 찾아온다. 내가 안고 다니기에는 달콩이의 덩치가 조금 커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눈으로 흘긋 쳐다본다. 가끔 "그렇게 큰 애를 왜 안고 다녀요?"라면서 웃으시는 어르신도 있다. 시선이 집중되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 내 강아지의 발바닥이 더 중요하니 나는 무거운 달콩이를 번쩍번쩍 안는다. 너무 추운 겨울에는 인적이 드문 길에서 달콩이와 냅다 달려버린다. 우다다 뛰고 나면 몸에 열이 나서 그 뒤로는 산책이 좀 더 수월해진다. 겨울 산책은 대체로 귀찮고 개운하고 까다롭고 상쾌하다.


겨울과 상반되는 여름 산책은 뜻밖의 이유로 힘들다. 더워서 힘든 건 둘째 치고,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 탓에 아스팔트가 가열되어 달콩이의 발바닥을 괴롭힌다. 실외배변견 달콩이의 발바닥은 겨울이고 여름이고 성할 날이 없다. 장마철에는 장마철대로 어렵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달콩이는 쉬야를 하러 밖에 나가야 한다. 달콩이에게 우비를 입히면 달콩이는 얼어버린다. 우비 특성 상 다리 부분을 조여주는 고무줄도 있고, 모자도 달려 있고 하다 보니 어색하고 불편한 탓이다. 우비 입히는 걸 여러 차례 실패한 뒤로 남편은 달콩이의 우비를 손수 수선해 주었다. 모자를 떼어주었고(머리 젖는 건 포기했다.), 앞다리 쪽의 긴소매를 돌돌 말아서 고정시킨 뒤 민소매처럼 만들었다. 비교적 뒷다리 쪽 소매는 짧길래 그대로 둔 채 입혀보았다. 그나마 걷긴 걷지만 달콩이는 여전히 고장 난 로봇처럼 뚱땅뚱땅 걷는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빗속을 뚫고 밖으로 나간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보통 달콩이는 다른 멍멍이들이 영역 표시를 해둔 곳을 찾아가서 냄새를 맡은 뒤, 그 위에 자기도 영역 표시를 한다. 그런데 비가 오면 그 냄새가 모두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달콩이는 한참을 걸어도 쉬야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나와 달콩이는 비에 젖은 생쥐 가족이 된다. 궂은 날씨에도 굳이 나와서 산책하고 있는 반려견과 보호자를 본다면, 99프로 실외배변견이라고 보면 된다. 비 온다고 화장실을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얼마 전에는 우비를 입은 보호자와 진도 믹스 멍멍이가 강력한 태풍 속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보았다. 휘오오오 부는 바람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을 보며 왠지 모를 전우애를 느꼈다. 야, 너두 실외배변? 야, 나두.


생쥐 달콩


비가 그쳐도 바닥이 마르기까지는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다. 젖어있는 바닥을 산책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달콩이는 다리가 무척 짧아서, 젖은 바닥 위를 걷고 나면 다리와 배에 온갖 풀때기와 나뭇가지와 흙이 붙는다. 털 사이사이에 껴서 잘 떨어지지도 않는 이물질들을 손으로 떼고, 빗으로 빗고, 물로 씻어주면서 나는 바닥이 뽀송뽀송하게 마를 날만 기다린다. 그러다 또 뜨거운 태양이 바닥을 달구면, '아, 비 올 때가 시원하긴 했지.'하고 간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름에는 산책을 하다가 달콩이가 소나무에서 나온 송진이나 바닥에 터진 열매를 밟을 때도 종종 있다. 끈적한 그것들은 달콩이의 약하고 소중한 발 젤리에 착 붙어서 웬만한 방법으로는 잘 떨어지지 않는다. 안 그래도 더운 날 산책을 하면 탈진 상태로 집에 오는데, 발바닥을 닦고 털을 잘라내고 별 짓을 다 해도 발바닥이 끈적할 땐 정말 울화통이 터진다.


그래도 장마철을 제외한 여름 중에는 대개 푸르고 눈부신 하늘을 볼 수 있다. 또 대한민국의 사계절 모두 초록색을 볼 수 있지만, 여름의 초록색은 좀 다르다. 가장 싱그럽고 다채롭다. 달콩이와 산책하다 보면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초록색이 존재한다는 사실 배운다. 햇빛은 쨍하고 나뭇잎은 한껏 무성해지면서, 유독 나무 아래의 풍경이 더 예뻐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더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그 모습을 살며시 드러내다가 감추기를 반복한다. 달콩이의 털도 햇빛을 받고 반짝이다가 그늘지는 일을 반복한다. 덥고 힘든 산책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달콩이와의 산책 덕에, 사계절이 모두 지나고 다시 봄이 오는 걸 가장 빨리 알아채기도 한다. 척박하던 겨울 거리에 노란색 개나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면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이상기후 때문인지 아직 한창 겨울인데도 개나리가 피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봄이 곧 오나보네.'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본격적으로 봄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봄이 온다는 건, 미세먼지가 밀려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염이 있는 남편과 나는 달콩이와 봄 산책을 하며 연신 코를 쿨쩍거린다. 우리의 콧물 센서가 바쁘게 돌아갈수록 산책 시간은 짧아진다. 우리뿐만 아니라 달콩이의 기관지를 위해서이지만 달콩이가 그걸 알 리 없다. 평소보다 일찍 집 근처에 오면 달콩이는 똥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냄새를 맡는 척 반대편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거나, 자리에 우뚝 서서 도통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럴 땐 주변을 조금 더 돌고 들어가든지 어르고 달래서 겨우 집으로 들어가곤 한다. 가끔은 미세먼지 따위 무시해 버리고 긴 시간 산책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 미세먼지와 스트레스 중 어떤 게 더 해로울지 가늠해 보면서.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큰길에는 벚나무가 쭉 심어져 있는데,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달콩이와 그 길을 걸으면 황홀하다. 벚꽃 잎이 나풀나풀 바닥에 떨어져서 바람에 휘날리면 달콩이가 그 잎을 쫓아가기도 한다. 나는 벚꽃 잎을 한 움큼 쥐어서 달콩이 위에 뿌려보기도 하고, 달콩이의 길쭉한 콧잔등 위에 벚꽃 잎을 올려놓기도 한다. 찬란한 일상에 감탄하며 달콩이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고마워. 빠르게 흘러가는 이 풍경을 놓치지 않게 해 줘서.



달콩이와 산책하는 동안에는 참 다양한 감각을 쓴다. 계절 특유의 냄새를 맡고, 새와 바람의 소리를 듣고, 집 앞 나무의 색깔이 변화하는 걸 본다. 달콩이의 몸과 이어진 줄을 서로 밀고 당기며, 달콩이와 함께 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게으른 우리 부부의 오랜 숙제가 될 달콩이 산책. 무거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야 하는 그 일상이 매일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아마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계절의 모습들을 배워갈 것이다. 새로운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 기쁨을 달콩이와 나누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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