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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Apr 20. 2023

당연한 존재일수록 더 당연하지 않게.

올해는 어째 안 아픈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았다. 잔병치레와 무기력의 연속이었다. 연초부터 워낙 골골거리기에 영양제를 몇 통씩 사서 매일 먹고, 그것도 모자라 보약까지 챙겨 먹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작년 말에 '씩씩하고 경쾌한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담은 글을 썼는데, 올해의 나는 그리 씩씩하지 않고 경쾌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요즘 가장 힘든 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난 몸이 안 좋은 게 가장 스트레스라고 대답했다. 원래 항상 정신이 먼저 아프고 그에 따라 몸이 아팠었는데 올해는 그 흐름이 완전히 반대로 흘러갔다.


최근에는 감기몸살이 심하게 왔다. 코로나가 아닐까 싶어 아무리 검사를 해봐도 음성이었다. 겨우 정신을 부여잡으며 출근을 하고,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쓰러지듯 아무 데나 드러누웠다. 끊임없이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자는 와중에도 너무 추워서 몸을 덜덜 떨었다. 어딘가로 빙글빙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어지럽고 살갗이 아팠다. 매일 잠만 자도 힘든 판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게 정말 버거웠다.


감기몸살이야 환절기에 워낙 흔하게들 걸리는 병이지만, 이미 그전부터 온갖 잔병치레로 아파왔던 나는 몸살을 마주하는 순간 완전히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곤 극도로 뾰족한 사람이 되었다. 나를 안아주려 노력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가 세운 가시에 긁히고 다쳤다. 바로 남편이었다.



홍군과 부부가 된 지는 이제 만 5년이다. 당연하게도 동안 함께 살아가 그에게 많은 모습을 보였다. 원체 예민한 성격이라 연애할 때부터 나는 홍군에게 자주 경고를 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연애 중이니 그런 모습이 덜 보이겠지만, 막상 나랑 같이 살면 정말 힘들 수도 있다고. 예민해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날카로워져서 옆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역시 결혼을 한 뒤로 나는 그의 옆에서 울기도 많이 울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불안장애가 심해지면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적도 있고, 예민하게 행동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워낙 커서 그런지 결혼 전 그에게 경고했던 것만큼 매운맛은 아니었다. 그의 행동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때도 나는 그의 기분이 너무 상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이야기했다. 이성을 잃고 큰 소리로 화를 낸 적도 없었다. 힘든 마음을 털어놓으면서도, "내가 너무 걱정시켜서 미안해"라고 말하곤 했다. 홍군 앞에서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나의 모습에 적응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몸이 너무 힘드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옆에서 간호하는 홍군이 날 위한 행동을 하면 하는 대로, 또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는 대로 퉁명스럽게 굴었다. 괜한 일들에 꼬투리를 잡았고 말투에는 모가 나 있었다. 중간중간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금세 다시 예민해져서 못된 사람이 되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남편에게 상처주기 싫은데...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행동은 내 뜻과 다르게 튀어나왔다. 내가 보아도 너무나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여기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렇게 가시 돋친 나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 익숙했다. 마치 5년 동안 홍군을 배려하려 노력하던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토록 뾰족한 모습이 원래 나의 모습인 것처럼. 나조차 잊고 지내던 나의 모습을 마주하고 나니 자연스레 부모님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삼십여 년 동안 나는 부모님께 줄곧 그렇게 쌀쌀맞게 행동했다. 짜증을 내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나에게 주시는 관심을 무시했다. 동시에 속으로는 매번 후회했다. 대체 왜 말이 예쁘게 안 나갈까. 오늘도 왜 애꿎은 엄마한테 화풀이를 했을까, 하면서. 그런 과거를 떠올리다 보니 조금 두려워졌다. 홍군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결국 미래의 나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아니, 제발.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가장 가깝고,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나에게 가장 믿음직한 존재, 가족. 내가 그들을 더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약해지고 예민해지는 순간에, 부디 가족들에게 날을 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까운 존재일수록 더 소중하게. 당연한 존재일수록 더 당연하지 않게.


아픈 게 벼슬이나 되는 양 행동했던 나는 침대에 누워서 계속 반성했다. 그리고 기운을 조금 차린 뒤에는 홍군에게도, 부모님께도 사과를 전했다. 부모님도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렇게 뾰족한 딸이랑 사느라. 맨날 딸 눈치 보느라. 독립한 뒤로 부모님께 날을 세우는 일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하지만 오래도록 뾰족했던 나의 모습, 앞으로도 오래도록 잊지 말고 곱씹어야겠다. 그리 못난 나를 한결같이 사랑해 주신 부모님께 더 잘해야겠다. 더불어, 앞으로 평생 함께 할 나의 동반자에게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가족들에게 잘하자.


자주 하면서도 자주 실패하는 다짐이지만 이번에 나는 또 굳세게 다짐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자고.


폭풍 같던 감기몸살이 지나갔다. 지칠 대로 지쳤던 몸과 달리, 마음만큼은 왠지 한층 성장한 듯한 기분이 든다.







필름카메라 Olympus PEN EE-3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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