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결혼식은 처음이라 미국과 한국의 결혼식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친오빠의 결혼식인 것을 떠나, 미국 문화 속에 발을 담글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물론, 오빠의 결혼식과 내 결혼식을 미국 결혼식과 한국 결혼식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오빠의 결혼식은 길었다. 아마 보통의 미국 결혼식 중에서도 긴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결혼식 전날 리허설 디너를 하고, 본식은 오후 4시부터 시작해서 2부부터는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그다음 날 아침에는 가벼운 브런치 일정까지 있었다. 보통 한 시간이면 끝나는 우리나라의 결혼식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분위기조차 도통 알 수 없는 3일의 연속의 일정을 앞두고 우리 식구들은 조금 긴장했다.
새언니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미국에 가족도 많지만, 오빠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기에 모든 가족이 한국에 산다. 워낙 먼 곳에서 결혼식을 하다 보니 한국에서 오빠 결혼식에 참여하러 간 사람은 아빠, 엄마, 나, 남편. 네 명이 전부였다. 만약 한국식 결혼이었다면 우리 입장에서도, 오빠 입장에서도 괜히 좀 쓸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오빠 결혼식에서는 그런 기분을 느낄 새가 거의 없었다. 새언니는 삼 남매 중 막내라 가족의 규모가 제법 큰 편인데, 모든 식구들이 우리를 편하게 대해주셨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리허설 디너 때부터 서로 얼굴도 익히고, 틈틈이 대화도 나누고 하다 보니 금방 긴장감이 사그라들었다. 적응할 시간이 넉넉한 덕이었다.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자유롭고 부드러웠다. 신부 쪽 하객과 신랑 쪽 하객들도 선 긋듯 나누어져 있다기보단 그냥 다 같이 축제를 즐기러 온 느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은 땅 덩어리가 워낙 넓기 때문에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몇 시간씩 이동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오빠의 결혼식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인 Felton이라는 지역에서 열렸는데, 비행기를 타고 와서 숙소를 잡고 이틀 정도 머무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게 멀리서 시간 내어 와 준 하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3일에 걸쳐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빠 결혼식/Photo by Simon Kim
본식은 레드우드 주립공원 근처 숲 속의 야외 결혼식장에서 열렸다. 사실 그 장소를 '결혼식장'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물론 결혼식을 올리는 장소이니 결혼식장이라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러기엔 우리나라에서 '결혼식장'이라고 말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는지극히 제한적이다. 산속에 위치한 그곳에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가 큰 삼나무들이 있었고, 아기자기한 집이 있었고, 꽃이 가득한 정원이 있었고, 식을 올릴 수 있는 넓은 초원이 있었는걸. 차라리 엄청 넓은 에어비앤비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본식 전에는 집 안에서 신랑, 신부와 양가 어머니들, 들러리들이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받았다. 이때, 준비하는 신부의 모습은 절대 신랑에게 공개하면 안 된다고 했다. 때문에 오빠는 주로 방 안에 콕 박혀 있다가 잠깐 거실에만 나와도 눈을 꼭 가려야 했다. 오빠가 나올 때마다 신부 들러리들이호들갑을 떨며 신부의 모습을 가려주었는데, 딱 미국 드라마에 나올 법한 장면이라 귀여웠다. 결혼식 전에 신랑, 신부가 둘이 손 잡고 샵으로 가서 메이크업을 받고 나오는 우리나라와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준비가 모두 끝난 뒤에는, 뒤돌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신랑에게 신부가 부케를 들고 다가간다. 마침내 신랑의 바로 뒤에 신부가 선다. 긴장되는 순간, 모두가 다음 장면을 숨죽여 기다린다. 신부가 신랑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다. 뒤를 돌아본 신랑과 신부는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춘다. 신부를 바라보는 신랑의 눈동자가 맑게 흔들린다. 아, 정말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이후에는 전망 좋은 곳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신랑, 신부 양쪽에는 줄곧 들러리들이 자리를 지켰다. 들러리 문화 역시 우리나라에는 없는 문화라서 처음엔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들러리들의 존재로 인해 신랑, 신부가 더욱 빛나는 것을 보고, 이래서 들러리 문화가 있는 거구나 몸소 알게 되었다.
들러리 문화를 제외한다면, 본식의 진행 방식은 한국의 결혼식과 비슷했다. 애초에 우리나라의 결혼식이 대부분 서양의 문화를 우리 식으로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초원 위에는 하객을 위한 나무 의자가 열 맞추어놓여있었다. 그 사이로 양가 어머님들께서 함께 입장하셨고, 새언니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했다. 뒤이어 들러리들이 파트너를 이루어 둘씩 입장했다. 주례가 있었고, 신랑과 신부가 결혼반지를 나누어 끼었으며, 서로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오빠가 편지를 이렇게 잘 쓰는지 몰랐다. 신랑 신부가 너무 예뻐서 또 주책맞게 눈물이 났다. 눈부시게 따사로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