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오빠가 결혼식 장소에 Dance floor가 있다고, 너 오면 춤춰야 된다고 말했을 때는 그 장면이 상상조차 안 됐다. 있는 격식, 없는 격식 다 차려야 하는 결혼식에서 춤을 춘다니. 나는 막춤(?)밖에 못 추는데. 영화 <셸 위 댄스?>에 나오는 우아한 왈츠를 미리 연습이라도 해가야 하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사실 그간 친오빠와 춤을 춰본 적은 많았다. 둘 다 춤추는 걸 좋아해서 오빠가 한국에 놀러 왔을 때 닌텐도 저스트 댄스를 틀어놓고 격렬하게 춤을 추기도 했고,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놀러 갔을 때 같이 클럽에 가본 적도 있었다(적응 안 돼서 5분 만에 다시 나오긴 했지만). 어쨌든 막춤이야 자신 있다만 결혼식에서 추는 춤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더랬다.
본식이 끝난 뒤 테이블에 앉아있는데, 새언니가 드레스를 갈아입고 오빠와 다시 입장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2부 예식인 셈이다. 뒤이어 댄스플로어 위에서 신랑, 신부의 댄스 타임이 있었다. 두 사람은 <Dream a little dream of me>라는 노래에 맞추어 로맨틱하고 우아한 왈츠를 추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장면과 노래가 머릿속에 끊임없이 아른거린다. 이 장면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진하게 남아있는 장면들이 몇 있다. 형식적으로 후다닥 끝나버리는 결혼식에서는 느끼기 어려울 감정이다.
왈츠 추는 신랑 신부/Photo by Simon Kim
모든 공식 행사가 끝난 뒤 드디어 파티가 시작되었다. 하객들은 와인잔을 들고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수다를 떨었고, 새신랑은 그간 숨겨온(?) 춤 솜씨를 모든 하객에게 뽐내겠다는 듯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체면, 그런 거 없었다. 그저 춤추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 댄스 플로어에 나가서 몸을 흔들어 재꼈다.
디제이가 음악을 틀어준다기에 나는 EDM 음악 같은 게 나올 거라 예상했었는데, 막상 누가 들어도 알 수 있을 만한, 그러니까 10년 전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왔을 법한 유명한 팝송들(예컨대 테일러 스위프트의 shake it)이 흘러나왔다. 좋은 선곡 덕에 나 역시 근질근질해지는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어서 후다닥 댄스 플로어로 올라갔다. 첫 댄스 파트너는 아빠였다. 아빠랑도 춤추고, 남편이랑도 춤추고, 수줍음이 많아서 절대 춤추지 않을 것 같았던 엄마랑도 춤을 추었다. 그리고 당연히 오빠랑도 춤을 추었는데... 그날 우리 남매는 무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하객들이 모두들 오빠와 새언니를 지목했다. 오빠는 '어휴, 이런 걸 왜 시켜. 안 해. 안 할 거야.'라는 제스처를 하더니 막상 노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마자인격이 두 개인 사람마냥 돌변하여 격하게 말 춤을 추었다.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새언니 역시 오빠 옆에서 함께 말 춤을 추었다. '뭐야. 결혼식이 이래도 되는 거야?' 문화 충격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나 역시 밤늦게까지신나게 결혼식을 즐겼다.
떠들썩한 댄스플로어 맞은편에서는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밤이 되어 쌀쌀해지자 모닥불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었고, 다들 본식 때 받은 마시멜로우와 초콜릿을 꼬치에 꽂은 채 구워 먹었다. 마시멜로우와 초콜릿은 오빠와 새언니가 밤새워 직접 포장한 것이었다. 나는 다른 쪽에 마련된 컵라면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으며 늦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신랑과 신부의 얼굴을 오래도록 볼 수 있는 결혼식이라니. 모두가 다 내려놓고 그저 즐길 수 있는 결혼식이라니!
본식 다음날, 결혼식장에 있던 집에서간단하게브런치 행사가 열렸다. 그때 어떤 한국어르신께서 나에게 다가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어제 춤 잘 봤다고. 어쩜 그렇게 잘 노냐고. 민망해져서 어디라도 숨고 싶었는데, 어르신께서 이어서 이야기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