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둘,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든 집짓기

집 짓기란? 자꾸만 울고 싶은 것!

by 고다혜


“작은 다락방이 있는 이층 집을 짓는 거야!”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듯 차근차근 준비했다. 퇴근 후 에는 집짓기 관련된 책과 영상을 찾아보고 쉬는 날이면 건축 박람회나 조경 박람회에 갔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건축 기법, 자재들의 이름이나 개념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것처럼 귀에 쏙쏙 들어와 머리에 콕콕 박혔다. 우리가 원하는 거실과 방의 위치, 계단과 화장실 구조를 담아 나름의 설계도도 그렸다.


‘건축의 성공 여부는 팔 할을 시공사가 결정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우리 집을 지어줄 바로 그 회사. 어떤 분들은 무조건 경험이 많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하자가 적다고. 반면 어떤 분은 예산이 조금 초과되더라도 건축비가 좀 더 비싼 곳이 집을 잘 지어줄 거라고 했다. 한 지인은 우리 땅에서 가까운 시공사가 아무래도 더 자주 와서 신경 써줄 거라며 그쪽으로 결정하라고 조언해 줬다.


하지만 나는 이 중요한 결정 앞에서도 논리와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용인에 있는 ‘ᄉ’ 시공사를 방문했다가 견본 주택을 보게 되었다. 어머나?! 집을 보고도 설렐 수 있다니.... 소개팅 나가서 가슴 두근대는 상대를 만난 것 같았다. 그 집의 단정하고 따듯한 느낌이 참 좋았다. 지표로 삼으려 했던 객관적인 판단 요소들을 뒤로하고 직관을 믿어보기로 했다. 마음속에선 이미 ‘ᄉ’이 지어준 집에서의 고소~한 깨 볶는 일상이 시작됐다. 바로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터파기를 시작했다.


집은 생각보다 금세 지어졌다. 땅을 파는 기초 공사부터 붙박이장을 만들고 벽지를 붙이는 작업까지 서너 달이면 끝났다. 정작 건축 기간은 그렇게 짧은데 왜 ‘집을 지으면 십 년은 늙는다’고들 하는 걸까? 내 나이 서른둘에 맨땅에 헤딩하듯 집 짓기에 뛰어들게 되면서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첫 집. 그와 나의 신혼집엔 닦아도 닦아도 자고 일어나면 곰팡이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결로 때문에 벽에서는 닭똥 같은 물이 떨어졌다. 단열도 취약해서 여름엔 아스팔트처럼 뜨겁고 겨울엔 얼음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추웠다. 그래서 ‘곰팡이와 결로가 없고 시원하고 따듯한 우리 집’을 짓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창문이 정말 중요했다. 예산을 짤 때 창호에는 돈 아끼지 말자며 비싸도 좋은 걸로 선택했다.


‘공사가 얼마나 진행됐으려나.’

양손 무겁게 간식을 사 들고 현장에 갔다. 만날 때마다 자라는 조카를 보는 기분이다. 오늘도 집이 자라 있었다. 어제 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창이 좀 이상 했다. 우리가 고른 게 아닌 엉뚱한 창호가 설치되어 있었다. 신랑과 나 둘 중 어느 하나 그 창을 달아 달라고 얘기 한 사람이 없었다. 또한 시공사 측에서 그걸로 하겠다고 우리에게 말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그게 대체 거기 왜 있는 것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몇 번의 통화와 큰 소리가 오고 갔다. 원인을 찾고 보니 결국 소통의 문제였다. 공사를 시작할 때 우리는 창문 브랜드를 시공사의 사장님과 이야기 나눠 결정했고 견적서에 적었다. 그런데 공사를 진행하던 중 견적서가 한 번 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창호 브랜드가 누락되었다. 제일 큰 문제는 소장님이 우리에게 묻지 않고 본인 임의대로 창문을 선택해서 설치해 버렸다는 것이다. 창호는 환기가 되는 창이 있고 되지 않는 창이 있다. 성능도 다 다르다. 단순히 브랜드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가격도 천양지차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어떤 것으로 하겠냐고 묻지 않았을까? 왜 혼자 결정하고 공사까지 마쳐 버렸을까?

소장님이 건축주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일을 진행해 버리는 이런 일은 창호 문제 외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자잘한 게는 방문, 손잡이의 종류까지 포함해서 골라야 할 것들이 수십 가지였는데,

“결정해야 할 게 생기면 그전에 꼭 전화해 주세요. 문자나 카톡이라도 부탁드려요.”

몇 번을 얘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장님과는 소통이 되지 않았고 일하는 방식도 우리와 맞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 시공사 사장님은 책임감 있게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잘 못 달린 창호를 뜯어내고 우리가 선택한 브랜드로 재시공을 해주셨는데 그 사이 문제가 한 번 더 있기는 했다. 직원이 사이즈를 잘 못 발주하는 바람에 해외에서 창문이 오는데 시간이 몇 달 더 걸렸다. 그렇게 공사기간이 세 달 정도 지연됐다. 우리는 살던 아파트를 팔고 월세를 살고 있었는데 세 달 치 월세를 더 내게 되었다. 돈이야 열심히 일해서 더 벌면 됐다. 그건 괜찮았다. 진짜 속이 타들어 갔던 이유는 창호가 달려있지 않은 세 달여간 뻥 뚫려있는 집에 비가 들이쳤기 때문이다. 우리집은 목조주택인데 뼈대인 나무가 젖을까봐.... 비가 내리는 날마다 엄마 무덤 옆에서 우는 개구리가 된 심정이었다. 새집인데. 아직 한번 들어가서 누워보지도 못했는데.... 심지어 그때는 장마 기간이었다. 하늘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나도 자꾸만 울고 싶었다.


개골개골 개골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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