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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름이 뭐니?

여기는 왈왈 아파트 관리사무실입니다.

by Raindrops

우리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곤 한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이름을 물어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유는 내가 나를 소개하면 당연히 상대방도 자기를 소개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소개를 할 때 이름을 말하는 행위는 의례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내 소개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물어봤던 경험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늘 익숙하게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름을 말하거나, 물어볼 일이 거의 없이 일상을 살아간다. 보통은 공공장소에서 업무처리를 하는 상황에서 물어보는 수도 있지만 신분증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결국 이름을 말하는 행위는 실제로 많이 할 것 같지만 굉장히 한정적인 상황에서만 쓰인다는 것이다.


"너 이름이 뭐니?"라는 유행어가 탄생된 이유는 상대방이 정말 누군지 궁금해서 물어본 말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나타난 유행어라고 할 수 있다.

이름을 묻는 행위는 그 사람이 궁금해서 묻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름만 들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이름은 그 사람과 대면하는 첫 번째 관문일 뿐 그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파트에서 이름을 물을 때는 어떤 때일까? 관리사무실 직원들은 관리실에 찾아온 민원인에게 이름을 묻는 경우가 많다. 업무처리를 위해 일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이름을 물어보고 민원업무를 처리한다. 이렇게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이름을 묻는 것이다. 이름을 물을 때도 있지만 동호수를 물을 때도 많다. 대체로 업무처리를 위해 질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름을 물을 때는 그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 묻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질문이다. "정보의 교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정보의 교환을 넘어서는 이름 묻기가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에 몇 통에서 수십 통의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거는 대부분의 아파트 민원인은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하지 않는다. 대체로 자신의 불편함을 말하고 해결 받기 위해 전화를 한다. 대체로 기분이 나쁜 상태이거나, 뭔가 요구할 테세로 말을 한다.


"위층에서 너무 시끄럽게 뛰어다는데 조치를 안 해주시나요?"

"주차장에 차 댈 곳이 없는데 관리실에서 뭐 하고 있는 건가요?"

"담배냄새가 너무 나는데 방송 좀 해주세요?"

"왜 따뜻한 물이 안 나온 것인가요?"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은 해결 받은 것에 만족하거나, 혹시 만족할 수 없더라도 해결되었다는 생각으로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대체로 이런 말을 한다.


"도대체 관리사무실에서는 돈 받으면서 일을 하는 건가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를 바라고 일부러 문제 해결을 하지 않는 관리사무실 직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관리사무실은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도 너무 많이 존재하고, 또 개별적으로 세대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많이 발생한다. 세대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원칙적으로 세대가 직접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 세대에 소유권은 그 세대에게 있고, 아파트 관리사무실은 세대 내에 문제가 아닌 공용 부분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령 개별난방 아파트에서 난방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문제를 관리사무실에서 해결해 줄 수 있을까? 관리사무실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보일러 상태를 확인해 주는 일 정도이다. 보일러 상태의 점검도 전문기술자의 의견이 필요한 상황이다. 관리사무실직원은 보일러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세대가 민원을 제기하면 상태 확인정도는 해주는 편이다. 보일러를 수리해 준다거나, 다시 난방이 될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없다. 관리사무실 직원은 무엇이든 고치는 만능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칠 수 있다고 해도 함부로 고칠 수도 없다. 고치다가 실수로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민원인이 관리실 직원에게 이름을 묻는 행위는 정보교환의 차원이 아니다. 내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겠다는 선전포고 같은 것이다. 향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묻겠다는 일종의 협박인 것이다.


"너 이름이 뭐니?" 이런 말을 들을 때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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