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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네레빗 Feb 23. 2017

[A4소설]로봇도 자살을 할 수 있을까?

완벽할 것만 같은 로봇에게 더 이상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제시어: <로봇도 자살을 할 수 있을까?>




#. 오늘 새벽부터 아침


“쨍그랑!!”


유리가 후두둑 떨어지고, 누군가도 바닥에 같이 ‘쿵!’하고 떨어졌다. 

그렇게 어두운 새벽이 걷히고, 아침이 되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기자, 경찰, 군중들로 북적였다. 

형사는 이 군중 속을 헤집다가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추락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로봇이었다. 


멀끔하게 양복을 입고 이 까마득하게 높은 회사 빌딩으로 출퇴근하던 

인간형 로봇은, 그전에도 차가웠지만 더 차갑게 식어있었다. 

파편을 흩뿌린 채로 기름이 새어나오면서, 함께 널부러져 있었다. 


“타살인건가요?”


“아직 확실한 건 몰라. 타살이겠지. 자넨 살면서 세상에 로봇이 자살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나 있는가? 

분명히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일을 저지른 거야. 

이따 회사가서 CCTV 자료 보기로 했으니까 같이 가서 확인해보자고.”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형사는 고개를 들어, 

저 로봇이 떨어지기로 마음먹었던 높은 빌딩의 깨진 유리창이 있는 층을 올려다 보았다. 



#.어제 저녁 


“ST-X가 보여준 성과는 실로 놀라운 수준입니다! 

우리 이사회에서 큰맘 먹고 추진했었던 

로봇 회사원 프로젝트(ST 프로젝트)는 가히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승진 시즌을 앞두고 저희는 ST-X 부장을 상무이사로 

선출하자는 데 모두 찬성했습니다. 

여러분 뜨겁게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녹음재생 종료.



상무이사실, 캄캄한 저녁, ST-X 이사는 머릿속에 녹음해둔 

과거의 녹음파일을 듣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에게 남은 수많은 선택지와 그 선택의 결과들을 비교, 대조했다.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수는 단 한 개도 없었다. 

일주일 전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의 파일을 재생하며 다시 의자에 몸을 뉘였다. 

여러 가지 말들이 그의 회로를 맴돌았다.


“회장님을 위해선 누군가가 총대를 메야만 하지 않겠는가.. 에헴..” 

라고 하던 최 전무의 말도


“자네도 분명 머릿속에서, 더 큰 수익을 내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계산을 내지 않았는가? 

비자금 조성, 뇌물 공여, 그래 어쩔 수 없었던 거잖아. 안 그런가 ST-X 이사?” 라고 그를 쳐다보며 

불법을 묵인하자던 유 상무의 말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미 다 증언도 확보해놨어요.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습니다 이사님. 

OO그룹 비자금 조성 건에 대해 혐의를 인정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라고 자신을 압박하던 조 검사의 말도. 


ST-X 이사는 머리가 과부화되도록 계산을 했다. 회사를 위한 최선의 선택지는 없었다. 

자신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고, 혐의는 벗어날 수 없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줄 것이다. 

회사에 손해를 끼치라는 결정은 마치 주인의 등에 칼을 꽂으라는 명령만큼

그에게는 가혹하고 절대로 할 수 없는 결정이다.


 이럴 때 로봇인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내 자신이 조금 더 멍청해지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그는 조심스럽게 물잔을 들었다. 

그리고 창가로 한발짝씩 다가가 

달빛 아래 물에 비춘 자기의 모습을 지그시 보았다. 


이 물은 로봇인 그에겐 말 그대로 사약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최선의 선택을 프로그래밍해서 실행하기 시작했다.




#. 오늘 저녁 


“여기 자료화면들을 보시면, 스스로 물을 들이키고는 곧장 창문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보이시죠? 외부의 개입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회사 관계자는 형사들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뭘까요? 이게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상부에는 또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형사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은 방금 본 대로 보고하고, 더 조사를 해보자고, 나가자고 김 형사.” 

그렇게 조사는 종결되었다. 



깨져 버린 채로 있는 로봇. 로봇의 표정은 웃고 있는 채로 정지되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실행했던 선택지에는 늘 그렇듯이 최선의 선택지를 입력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이제 0과 1로만 이루어진 세상으로 떠난다. – 프로그램 실행 완료'   






2017.02.22. 초단편소설 by Cine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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