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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un 12. 2024

오은영을 위한 변명

전체를, 적어도 맥락을 보고

동화를 쓰는 사람으로서 요즘 아이들에 대한 취재는 필수적이다. 무자식이기도 한 고로 매체를 통한 관찰도 제법 하는 편이다. 그중에 <금쪽같은 내새끼>가 도움되서 자주 보는데 솔루션에는 사실 관심이 없고 주로 아이들이 사는 방이나 사용하는 물건, 집 구조를 관찰한다. 문제는 무슨 프로그램이든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정주행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강박 때문에 <금쪽같은 내새끼>도 1회부터 152회까지 보고 있다. 덕분에 이 글은 강박 때문에 지금까지 해당 프로그램을 반강제(?)로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쓰는 글이다. 


* 프로그램 초기에는 대부분 부모의 강압적인 육아방식, 때리거나 겁주기, 폭언이나 심각한 무관심 또는 지나친 편애가 원인. 체벌이나 상황과 별 관계없는 긴 잔소리, 인격적인 모독이 훈육 방법으로 동원되기도. '육아는 힘드니까 아이에게 어느 정도 화를 내도 괜찮다'는 통념이 문제였다.


* 이런 경우 주로 나오는 말이 '아이에게 공감해 주세요'인데, 그게 아주 좋게 돌려서 하는 말이지 사실은 부모를 완곡하게 야단치는 뜻이다. 이 프로그램의 중대한 특징이자 거의 지적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오은영 박사 앞에서는 출연한 부모도 아이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부모는 어른임에도 해당 잘못에 대해 그에 걸맞는 비판-어른에 어울리는 대우-을 받지 않는다. 대신 아이처럼 공감받고 나서야 자기가 고칠 점을 알게 된다.


* 예민한 시청자라면 오은영이 자주 분노를 자제하고(왜냐면 화는 쓸모가 없으니까) 부모에게 조근조근 일러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앞에서는 부모들도 어린 아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기에 스튜디오는 유치원같은 환한 색깔이고, 패널들은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와도 어울릴 듯한 색색의 튀는 옷들을 입는다.


* 여기서부터 오해가 발생하는데, <금쪽같은 내새끼>의 소위 '공감 육아'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 가정에 제시되는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균형감각있는 시청자라면 텔레비전에 나올 정도면 결코 평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막말로 아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게 아니다. 보통의 소소한 문젯거리를 안은 일반적인 가정에 심각한 문제의 해결책을 들이대는 것은, 상식적으로 균형이 깨져 있다. '잘 먹어야 된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이미 세 끼 잘 먹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다.


* 어쨌든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공감해주는 식의 육아법이 상식으로 자리잡으면서 프로그램의 문제 원인이 바뀌기 시작한다. 정신적인 문제, 즉 ADHD나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가벼운 자폐 등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공감해주는 육아법'의 문제가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경우 공감 육아법은 자주 역효과가 난다. 


* 그런데 사실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단호한 훈육 방식이 자주 나온다(나는 아동문학가로서 훈육 방법보다 아이들의 회피 방식에 훨씬 관심이 많지만). 흔히 오은영 박사는 공감 육아법, 조선미 교수는 훈육법을 이야기한다고는 하지만 틀린 이야기다. 둘 중 하나만 이야기한다는 것은 제대로 공부하고 상식이 박혀 있다면 나올 수 없는 소리다. 오은영도 훈육법을 이야기하고 조선미도 공감 방법을 이야기한다. 


* 결국 오은영을 둘러싼 여러 비난들, 그리고 조선미의 육아법이 주목받는 분위기는 종합하자면 전체를 보지 않고 '꿀팁'만 찾는 일부 수용자층이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일부 수용자층 중의 또 일부가 이른바 '진상'이 되어 전체를 괴롭힌다. 그 원인의 일부로 오은영이 지목받는데, 사실 152회까지 강박 주행한 시청자가 보기엔 '오은영 박사는 잘못이 없는데 왜 그런데요' 라는 것. 그래서 대중 상대로 이야기하는 일이 괴롭다. 어떻게 이야기해도, 저떻게 알아먹겠다고 결심하면 이쪽이 괴벨스가 된다.


* 어쨌든 큰 그림을 보거나 그리기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쨌든 한국 아동사(라는 게 있다면) 오은영 박사의 역할이나 해당 프로그램의 비중은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민법상의 자녀 체벌권이 폐지되기도 했거니와, 체벌이나 폭언, 인격모독 없이 아이를 가르치는 육아법의 빠르고 신속한 배포가 필요한 사회 문화적 배경이 엄연히 생겨났기 때문이다(체벌권을 되살리자는 주장은 살포시 밟고 가자. 민법상 체벌권이 되살아나더라도 부모 자식 간의 폭행죄는 여전히 성립한다).


* 아마 대부분 잊어버렸겠지만, <금쪽같은 내새끼>는 아동권리보장원과 같이 시작한 프로그램이다. 그렇지만 아동문학가로서, 아동의 입장에 늘 서려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어쨌거나 이 프로그램은 궁극적으로 아이들을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그러기 위해 역설적으로 아이보다 부모의 입장에 먼저 공감해줘야 하고 손을 들어줘야 한다. 관찰 영상을 보다보면 아이와 부모의 입장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다는 균열이 보이지만 이 프로그램은 애써서 그걸 덮는다. 그 부분이 이해가기도 하고, 아직은 아이만을 위한 육아법 프로그램은 나오기 힘든 건가 싶기도 하다.


* 덧붙이자면 서천석 교수의 말대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기에 '오은영 매직' 식의 구성 방법은, 인내와 노력 없이 '핵심 솔루션'만으로 아이가 바뀐다는 환상이 생기지 않도록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안 바뀌고, 아이도 사람이다. 시청률을 유지해야 하는 예능과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육아법을 가르치는 교육 목적 사이에서, 해당 프로그램이 흔들리는 모습이 포착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능하다면 얼마나 기간이 걸렸는지 프로그램에서 명시해주면 좋겠지만 늘 그럴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다(4개월에서 2개월 정도 걸린 케이스를 본 적은 있다). 


*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고 시청자들은 매주 놀라지만, 그게 바닥이 아니라는 점은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 바닥 밑에는 늘 지하실이 있다. 정말 문제가 심한 집은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는다. 그그 중 극히 일부가 사회면 뉴스에 나온다. 그 저변을 보면 가내 정치 문제가 있고, 역학 관계에 따라 제일 약자인 어린이 중 한 명이 뒤집어쓰게 되는 게 아동학대의 구조다. 진짜 육아와 아동 문제, 학대 문제는 그러한 집들에 있지만 그런 집들은 텔레비전에 나오지 못한다. 사실 가내 정치의 문제는, 유교적 질서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가족의 통념과 환상을 완전히 깨부수는 이야기라 아동학대 전문가들도 손쉽게 거론하지 못한다. 문자 그대로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기 때문에.' 그렇기에 현대 민주주의의 위대한 점은 가정 내도 민주화시켰다는 데 있다. 의도치 않게 민주주의 덕분에 많은 어린이와 여성, 노인들이 가내 정치의 희생물이 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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