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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Mar 09. 2021

<사조영웅전> 현대의 동화, 무협소설(1)

현대의 동화, 무협소설


<사조영웅전射鵰英雄傳>은 1957년 1월 1일부터 1959년 5월 19일까지 <홍콩상보>에 연재되었다. 200자 원고 매수로 분량을 셈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어권에서는 보통 글자 수로 재는데, <사조영웅전>은 총 91만 8천 자로 <서검은구록>과 <벽혈검>의 두 배에 가까운 분량이다. 등장인물 숫자도 훨씬 많고 그에 따라 구사되는 무공이나 갈등의 축도 다양해졌다. 국가와 민족 대립뿐만 아니라 문파와 가족의 복수 등 얽히고설킨 원한 관계가 등장한다. 작품의 공간도 몽골부터 남송의 중심지 소주와 항주는 물론이거니와, 지금의 이란 지역인 호라즘 왕국에 이르기까지 대폭 확장되었다. 시간적으로도 윗세대가 남긴 유산이 다음 세대에 이모저모 영향을 주도록 설정되었다. 한마디로 작품의 무대가 되는 시공간이 훨씬 넓어진 것이다.


스토리의 구조도 달라졌다. 기본적으로 <사조영웅전>은 성장소설과 유사한 구조를 취한다. 곽정이라는 청년이 무공 수련을 통해 사랑을 얻고 고수가 되는 과정이 주요한 스토리로 제시된다. 그런데 곽정은 태어날 때부터 영웅이 아니며 때로는 보통 사람보다 약간 모자라게 묘사된다. 그렇지만 유교의 기본 가치인 충효와 의리를 지키는 심지 굳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인공이 강호에 뛰어들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이 <사조영웅전>의 스토리다.


이러한 스토리는 당시 홍콩에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고, 이후 김용 작품 세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이 무공을 배워 절대 고수가 된다’는 특유의 장르 규칙이 자리잡았다. 이제 주인공은 태어날 때부터 영웅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착한 마음을 지키기만 하면 끝내 인생의 승리를 거둔다. 이러한 무협소설의 스토리는 어린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착한 일을 하다가 왕국을 얻는, 전형적인 동화의 구조와 일치한다. 중국의 수학자 화라경의 말대로 “무협소설은 현대의 동화”가 된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 구조는 신무협 등의 조류를 거치면서 많이 바뀌었지만 지금도 무협소설 특유의 장르 규칙으로 꾸준히 반복된다. <사조영웅전>은 김용 작품 중 동화적인 스토리 구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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