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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Aug 29. 2024

Day17_2

2023. 08. 13._제주 한 달 살기

 

연동성당, 한라수목원, 광이오름

 


 셋째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어린이 미사를 보기 위해 ‘연동성당(제주 제주시 1100로 3157)’으로 향했다. 김녕성당과 조촌성당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뭐랄까. 조금 더 가족적인 분위기랄까. 아니나 다를까 연동성당 어린이 미사는 가족 미사로 진행되고 있었다. 어린이만 참여하는 미사가 아닌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미사였던 것이다. 신부님이 홀로 주가 되는 성인 미사가 아닌 어린이와 가족, 신부님이 모두 함께 하는 미사. 참 보기 좋았다. 부모입장에서 경건한 미사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이 다소 부담되는 일일 수 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뜻깊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올해 우리 가족이 다니는 성당에서도 가족 미사를 시작했다.) 신부님의 복음 봉독(奉讀) 후 강론이 이어졌다.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고통과 시련은 신자라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느님은 우리에게 고통과 시련을 없애는 분이 아니시라 고통과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는 분이시라고. 그러니 기도로 간절히 청하며, 삶을 잘 버티고 이겨내어 묵묵히 살아가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신자라고 해서 순탄한 삶만을 살아가는 것은 아다. 순탄하기만 했다면 며칠 새 우리 가족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일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이 고통이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 일어났다면 우리는 이 시련과 고통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볼 문제인 것이다. 누구나 삶은 똑같은 시간 속에서 흐른다. 우리에게 벌어진 고통을 넋 놓고 바라보지 않고, 혹은 누군가를 탓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현재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다. 그래서 한 달 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남은 보름이란 시간 동안 잠시 멈추었던 나흘의 시간을 뛰어넘을 추억을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게 내가 불행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미사를 마치고 연동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한라수목원(제주 제주시 수목원길 72)’ 갔다. 한라수목원 내에도 ‘광이오름’이 있어서 그곳까지 다녀올 예정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넓은 주차장이 있었고, 조금 더 걷다 보니 커피숍 앞 자그마한 무대에서 한창 우쿨렐레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공지를 보니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맘 같아선 여유롭게 앉아서 관람하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어쩔 수 없이 광이오름을 향해 나아갔다. 무더운 날씨 속 한 여름의 자연을 마주할 기회가 살면서 과연 몇 번이나 있을까. 그렇기에 열심히 걷고 또 걸었다. 여름, 제주의 풍경을 속속들이 눈으로 고 몸으로 느끼느라 기쁨에 넘쳤다. 광이오름의 정상을 향해 걸었다. 힘들었기에 중간중간 쉬기도 하고, 풍경을 배경 삼아 부지런히 사진도 찍었다. 이 모든 게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임을 잘 알기에. 아쉽게도 민오름만큼 뛰어난 전경은 아니었다. 작지만, 그럼에도 정상을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소소한 성취의 기쁨을 맛보게 해 주었던 한라수목원에서의 귀한 시간. 셋째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발걸음조차 하지 못했을 민오름과 광이오름. 불행 중 감사한 것을 찾다 보니 뭐든 나쁜 것만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불행히 오롯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지.

 

 오후 5시 반, 셋째의 네 번째 수유를 위해 다시 병원을 찾았다. 내일 퇴원을 앞두고 무사히 회복해 가는 셋째를 보니 더없이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마지막 수유가 남았기에 큰 아이들을 숙소에 데려다주고 간단히 저녁을 챙겨주었다. 저녁 8시 10분경, 어두운 밤길을 헤치며 홀로 마지막 수유를 위해 달렸다. 여전히 외롭고 쓸쓸했던 마지막 밤이지만 퇴원할 내일을 생각하며 조금은 가뿐한 마음으로 달려갈 수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애써 위로해 보았다.



어려움을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을 견뎌낼 만한
강인한 내가 되는 것뿐
                                                                                              출처 : <걷는 독서>_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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