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많고 번잡한 곳은 대개 주차하기가 힘들다. 제주공항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짐을 싣고 나르는 일이 빈번한 곳에서 주정차는 더더욱 어렵다. 정오를 기점으로 도착 예정이었던 친정엄마(이하 엄마)의 친구분(이하 이모)은 직접 데리러 간 외삼촌과 외숙모의 전화번호를 모르고 계신 상황이었고, 약속 장소만 정해놓고 만나기로 한터라 엇갈리기라도 하면 만남이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엄마와 이모의 반복되는 통화 끝에 이모는 외삼촌과 외숙모를 가까스로 만날 수 있었고, 다소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커피숍에 돌아올 수 있었다. 주정차 문제와 배고픔이 겹쳐 모두가 예민해진 상태. 우리는 점심 메뉴 선택을 서둘러야 했다. 결론은 흑돼지. 제주에 오면 당연히 먹어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의했다. 숙소와 멀지 않은, 함덕 해수욕장 앞에 위치한 ‘우돈향(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함해안로 530 2층 우돈향)’으로 결정했다. 2층에 위치해 있었지만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인지라 손님이라곤 우리 테이블 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행지인데 너무 사람이 없는 건 아닌가.', '맛집이 아니라 그런 건가.' 싶어 불안한 마음 반, 기대 반으로 음식을 주문했다. 흑돼지 모둠세트를 주문한 우리는 친절하게 고기를 구워주시는 사장님 덕분에 편안히 기다릴 수 있었고, 어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만에 만난 기쁨을 나누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아픈 곳 없이 건강히 잘 지냈는지.'물론 워낙 가까운 사이라자주 전화통화 하던 엄마와 이모였기에 1년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한 기색 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고기 맛은 허기를 차치하더라도 일품이었다. 사람이 없어 걱정했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였으니. 엄마와 이모는 고기를 맛있게 구워주는 사장님과 꺼리는 기색 없이 대화를 했다. ‘사장님이 잘생겨서 손님이 많을 것 같다.’, ‘우리 딸이 동복리에서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는 중이다.’ 등 필요 이상의 말들을 하며 해맑은 소녀들처럼 웃는 엄마와 이모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엄마와 이모의 급진적 친화력(?)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극적인 내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그런지 신기하면서도 한편 재밌기도 했었다. 그렇게 맛있고, 즐거운 점심시간을 보내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기로 했다. 저녁 시간까지 다소 시간이 남았고, 늦은 점심 식사 탓에 제시간에 저녁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소화도 시킬 겸 이곳저곳 알아보았다. 하지만 무더운 한여름 날씨에결국 항복하다시피 다시 커피숍에 가기로 했다. 밀린 대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던 것일까. 또 커피숍이라니. 그래도 엄마와 이모가 좋다면 나는 뭐든 좋았다. 그렇게 인근 커피숍을 알아보다가 김녕 해수욕장 앞에 있는 ‘델문도(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40)’라는 커피숍에 가기로 했다. 제주에 여행 온 사람들 모두가 커피숍에만 모여있는 것일까. 빵도 함께 팔던 델문도 커피숍은 큰 건물 두 채로 되어있는 커피숍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겨우 자리를 잡았지만 다 같이 앉을 수는 없었고, 결국 두 팀으로 나누어 함께 먹을 빵과 음료를 시켰다. 사람이 왜 많은지 알 수 있을 만큼 빵과 음료가 훌륭했다.(나는 소문난 빵순이다.) 점심을 그렇게 배불리 먹어놓고선 또 맛있게 빵과 음료를 먹는 우리의, 아니 나의 모습이란. 어른들은 기분 좋게 술을 드셔서 그런지 커피숍에서도 즐겁게 대화를 나누셨다. 여행을 와서 많은 여행지를 다니는 것도 물론 의미 있는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행복한 추억을 쌓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제주에 가서 이곳도 가보고 저곳도 가봤잖아.’가 아닌 ‘우리 제주 김녕 해수욕장에 있던 커피숍에 갔던 것 기억나? 그곳에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 한마디로도 충분한 사이. 그런 사람들이 어디든지 함께 모여이야기만 나눠도 좋았다.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지만 우리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은 당연히 술과 함께 할 테고, 제대로 된 식사보다 간단한 안주거리로 먹을 예정이니 몇 가지음식들을 사기 위해 김녕 해수욕장에서 가까운 ‘김녕 킹마트(제주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 124)’에 들렀다. 사는 곳 어느 식당에 모여서도 충분히 나눌 수 있는 대화들이지만 우리는 이 먼 곳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어느 숙소에 모여 잠이 들기 전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제주였기에 가능했던 엄마와 이모의 지나간 45년간의 추억 이야기와 더불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내일의 또 다른 여행을 기약했다. 매일이 아까운 한 달 살기의 하루지만 오늘만큼은 그저 이야기만 나눠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