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의 시작은 ‘비자림’이었지만 그 이전에 내게 제주는 ‘성산 일출봉’이자, ‘여미지 식물원’이었다. 이유는 제주 첫 여행지였기 때문.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처음 제주도에 방문했었다. 제주에 갈 때는 배로, 돌아올 때는 비행기를 탔었다. 물론 여객선도, 여객기도 나에게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강렬했을 제주 수학여행. ‘성산 일출봉’을 향한 마음이 알게 모르게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셋째의 상황 때문에 ‘성산 일출봉’ 정상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다. 다만 지금, 이곳에 내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8명이 모인 우리 가족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가장 먼저 ‘성산 일출봉(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1)’을 첫 여행지로 결정하게 되었다. 아침 식사 전, 엄마와 이모는 산책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이모는 숙소가 있는 동네가 산책하기 좋은지 물으셨다. 전날, 미리 동네 산책을 다녀온 엄마는 이모에게 말씀하셨다. “산책하기에는 좋지 않아.” 뒤이어 내게 물으셨다. “혹시 가까운 곳에 산책하며 경치 구경할 만한 좋은 곳 없을까?” 번뜩 생각이 났다.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 가보고 싶었지만 유아차로는 갈 수도, 엄두도 내지 못하는 함덕의 ‘서우봉(제주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169-1)’. 눈을 뜨자마자 엄마와 이모를 함덕 서우봉으로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아침 식사 준비와 더불어 여행 준비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산책을 마쳤으니 데리러 오라고.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함덕 서우봉으로 향했다. 온 가족이 이제 ‘성산 일출봉’에 갈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성산 일출봉’에 가기 전, 점심시간이 맞물려 우리는 이동 중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바다에 왔으니 해산물을 먹어보자 싶어 문어 요리로 점심 식사 메뉴를 결정했다. ‘탐나는 문어(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852)’. 아마 제주의 옛 이름 ‘탐라’에서 기원한 식당 이름인 것 같았다. 해변가 바로 앞에 있어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의 절경은 감탄 그 자체였다. 어찌하여 매일 보는 듯한 제주 바다는 질리지도 않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눈부신 바다를 반찬삼아 우리가 먹게 될 메인 메뉴는 ‘통 문어 부대찌개’와 ‘탐나는 문어 해물라면’이었다. 둘 다 너무 맛있었는데, 어쩐지 라면에 더 손길이 갔다. 다소 텁텁한 찌개의 국물보다 각종 해물을 넣은 얼큰한 국물의 라면이 숙취 해소를 도와줬다고나 할까? 어쨌든 어제에 이어 메뉴 선택은 탁월했다. 모두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성산 일출봉’ 방향을 향해 해변도로를 타고 힘차게 달려갔다. 차창 오른쪽 옆으로 바다가 보이고, 정면 가까이 ‘성산 일출봉’ 보일 때까지 우리는 웃음이 가득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
드디어 ‘성산 일출봉’ 도착! 가까이 마주한 ‘성산 일출봉’이 선사하는 자연의 위엄에 모두 압도당하고 말았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다 커서 찾아가보면 동네가 작아 보이는 것처럼 고등학교 때 다녀온 ‘성산 일출봉’도 그러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자연은 위대했다. 오히려 고등학생 때 보았던 ‘성산 일출봉’보다 더 커다래 보였다. 올라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한참 동안 등산로 입구에서 ‘성산 일출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한 이모 덕분에 유난히 사진을 많이 찍기도, 찍히기도 했던 날.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나이지만 이날만큼은 어쩐지 사진과 친근하게 지내게 되는 기분이었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던 말처럼 엄마와 이모, 심지어 나까지 오늘의 젊음을 사진 속에 가득 담아두고 싶었다. 점심도 배불리 먹었겠다. 간식 또한 놓칠 수 없는 큰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관광지의 먹거리를 샅샅이 살피는 눈치였다. 아이들이 어렵게 결정한 최종(?) 간식은 한창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는 탕후루였다. 큼직한 딸기 열매가 길고 얇은 나무 꼬치에 콕콕 박혀 아이들의 구미를 자극했다. 안 그래도 새콤달콤한 딸기 위에 설탕을 잔뜩 덮어두었다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 탕후루는 그저 우울한 날에 먹으면 그만일 음식일 것 같았다. ‘왜 우리는 우울할 때 단 것을 먹는 것일까.’와 같은 질문까지 더해지며 딸기 탕후루를 먹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달지 않을까’와 같은 걱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진 않았을는지.
외삼촌과 외숙모는 일정상 오늘까지 함께 하고 엄마와 이모는 이틀 정도 여행을 더 하고 떠나기로 했다.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외삼촌과 외숙모를 제주공항에 모셔다 드렸다. 우리는 나머지 시간 동안 또 무엇을 하면 좋을까. 엄마와 이모에게 어떤 추억을 선사해 드리면 좋을까. 고민이 깊어진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