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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시작 Sep 12. 2024

Day20_1

2023. 08. 16._제주 한 달 살기

용두암 드롭탑 제주용담해안도로점


 제주에서 어느덧 20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남은 시간은 단 열흘!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오늘도 즐겁고, 신나는 하루를 만끽해 볼 것이다. 오랜만에 전날 저녁 가족들과 모인 기쁨으로 과음을 한 탓에 살짝 무거워진 몸으로 아침을 맞이하였지만 든든한 가족이 있으니 큰 걱정은 없다. 20일 차, 시작해 보자.

 아침부터 흑돼지 삼겹살을 굽는다. 아침 식사로 삼겹살을 먹지 못할 것이란 편견은 그만! 외삼촌 덕분에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분주히 삼겹살과 함께 먹을 음식 준비를 하고, 조금은(?) 덥지만 마당이 있는 숙소이니, 밖에서 먹어보자는 가족들의 의견에 여행 온 지 20일 만에 처음으로 평상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무더위에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집안을 서성이던 내게 친정엄마(이하 엄마)는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얼른 와서 먹어라.’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기 시작하셨다. 서둘러 나갔지만 멈출 줄 모르는 엄마의 말에 결국, 곱지 않은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와 버렸다. “내가 알아서 먹을 게.” 그 모습을 보던 외삼촌이 퍽 속상하셨는지, 한 말씀하신다. “너 생각해서 엄마가 먹으라고 챙겨주시는 건데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 나도 그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라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결국 입을 잔뜩 내밀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알겠어요(죄송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엄마의 반복되는 말소리에 예민해지는 못난 딸이었다. 엄마의 잔소리에 늘 생각다. ‘한 번만 말하면 되는데 왜 두 번, 세 번 이야기할까.’ 엄마와 싸우는 것은 결국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알겠습니다.’라며 기분 좋게 대답하다가 반복적인 말 끝에 엄마 입에서 돌아오는 말은 ‘네가 알긴 뭘 알아. 똑바로 해.’이다. 되풀이되는 말과 위와 같은 대답은 마치 딸을 믿지 못해서 하는 말들이라는 생각 탓에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는 것 같다. 마흔이 다 된 나이를 운운해도 소용이 없다. 엄마 눈엔 그저 미더운 딸일 뿐. 엄마의 사랑 방식이란 건 알지만 나이 마흔이 되어도 적응이 되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간신히 외삼촌 덕에 큰 화를 면한 아침. 서둘러 뒷정리를 마치고 제주공항과 제주항 사이에 있는 ‘용두암(제주 제주시 용두암길 15)’에 가기로 했다. 첫 일정을 용두암으로 정한 이유는 또 다른 손님이 제주 숙소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분은 다름 아닌 엄마의 45년 지기 친구. 친이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연 덕분에 자연스럽게 가족 모임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엄마뿐만 아니라 외삼촌 내외, 우리 가족 모두 편한 관계라 반가운 마음으로 이모가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못 돼서 도착하는 김포발 비행기. 우리는 용두암에 들렀다 외삼촌이 이모를 공항으로 모시러 간 사이 가까운 커피숍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용두암, 자주 들어보긴 했지만 여행 일정으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찰나, 가족과 함께 하는 일정 덕분에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제주공항과 제주항 사이에 있다 보니 도착하자마자 찾아가는 관광지로 유명한 듯 보였다. 오늘도 무더운 날씨 속에서 해변도로를 타고 용두암을 향해 달려갔다. 되도록 해변 가까이에 있는 도로를 통해 가고 싶었지만 막바지에는 큰 도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운전을 잘하시는 외삼촌 덕분에 길을 헤매는 경험조차 즐거 시간이었다. 용두암. 말 그대로 용의 머리를 닮은 돌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두암뿐만 아니라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코스가 나오는 것 같았는데, 우리 가족은 셋째가 있기 때문에 용두암 앞에서 엄마와 나, 큰 아이들만 용두암이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유아차에 있던 셋째는 외삼촌이 봐주셨다.) 구경하고, 사진 찍고 다시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잠깐 사이에 셋째는 잠이 들었고, 관광 여행 상품을 파는 가게 앞에 큰 그늘이 져 유아차를 잠시 세워두었다. 그 사이, 큰 아이들은 외할머니 찬스로 젤라토를 얻어먹었다. (아마 이 때문에 외할머니를 좋아하는지도.) 잠든 지 얼마 안 된 셋째가 차를 타면 금방 깰 것이 분명하기에 젤라토를 먹는 동안만 잠시 기다렸다가 해변가에 있는 커피숍에 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커피숍은 ‘DROP TOP(제주 제주시 서해안로 540)’ 주차를 하고 들어섰는데, 2층에서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된 커피숍이었다. 셋째 유아차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장소는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외삼촌이 있었기에 그럼에도 시도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꽤 무게가 나가는 유아차를 함께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전면 통유리 창으로 된 2층에서 바라보는 제주 바다는 그야말로 절경 중에 절경이었다. 오전 중이라 사람도 없었던 커피숍. 이모가 오기 전까지 두 눈 가득히 제주 바다를 담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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