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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을 Feb 11. 2024

장애를 오픈하시겠습니까?

renewal.7 모른다는 것만 알아도 반은 성공.

- 언제나 장밍아웃은 어렵다.

참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 장애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장밍아웃(장애 커밍아웃)하는 일은 매우 겁이 나는 일 중 하나다. 비단 겁이 많은 나라서 일어나는 현상만은 아니다. 내 장애를 어떻게 볼지 겁이 난다.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아도, 쉽지 않다. 애초에 내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머리는 알고 있으나,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항상 존재하기에. 언제나 들키지 않는다면 최후로 미루고 싶은 일 중 하나다. 나 또한 장애에 대해서 한 예민함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자만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도 많았다.            


- 당신 주변에 분명히 있다.

어찌 보면 일개 장애인 중 한 명일 뿐인 사람이, 어쩌면 그저 내 개인적인 바람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선 당신 주변을 살펴보았으면 좋겠다. 대부분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친구는 없을 것이다. 아니 모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장애인 가족이 있거나, 있었거나 하지 않은 이상, 장애를 가진 사람은 저 멀리에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장애를 가지기 전의 내가 그랬던 것과 같이 말이다.            


- 왜 그 아이의 부모가 그렇게까지 내게 고마워했는지, 나를 보며 매번 좋아했는지.

내가 비장애인이었을 때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하나 이야기하고자 한다. 초등학생 때 같은 반에 발달장애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너무 어릴 적이라 그 친구의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억에 남는 친구였다. 어릴 적 나는 그 친구와 꽤나 자주 어울렸다. 그 친구의 부모의 입장에서 다른 의미로 해석하자면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보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도움을 주는 게 번거롭다거나, 힘들다거나 하지 않았다. 도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냥 도와줄 수 있어서 도움을 주었고, 그것이 기쁘거나 뿌듯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냥, 당연한 것이었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내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의 부모는 내게 선물을 주었다. 어떤 기념일이었고, 선물은 연필 깎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선물을 받으면서 의도는 모르겠으나 그저 선물을 받아서 기뻤다. 도와준 대가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좀 커서야, 내가 장애가 생기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달았다.


- 매우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했던 배려

이 에피소드는 장애인이 된 나에게 여러 번 곱씹게 만드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그 부모의 마음이 말이다. 조건 없는 호의의 고마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그 당시 정확히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매우 사소한 것이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알림장을 챙겨준다던가, 미술이나 체육시간에 좀 더 챙겨준다던가, 짝으로 급식을 받는 걸 도와준다거나, 그런 자잘한 것들. 그러나 아직도 그 마음가짐은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러한 마음가짐을 기대하면서 살아가면 되는 줄 알았다. 때론 사람들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도 실수할 때가 있지만, 어렸던 나는 그 실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고 여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확신은 깨졌다. 친구가 내민 실수투성이의 호의와 배려에 나는 상처를 받았다. 그 친구로서는 걱정이 돼서 그런 것임을 분명히 알지만, 내가 그 사소한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꽤나 큰 충격이었다. 나는 속상했고,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때 깨달았다.            


- 수많은 장애이해교육을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지 못했는지를. 장애인이 되어보니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당사자인 나도 다른 장애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을 보면서.


-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모른다"라는 것이다. 무엇을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오해는 발생하고 만다. 그리고 장애인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특히나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도와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 당신은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장애를 가진 본인뿐이다. 가족조차도 필요할 때와 필요하지 않을 때를 구분하지 못한다. 무엇이 불편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저 어떤 일을 하기 힘들 때, 벅찰 때, 도움이 필요할 때 이야기해 달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 언제든, 때로는 조금 투덜대더라도, 귀찮더라도 네가 더 소중하니까, 도와주겠다는 말과 그 진심이면 나는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 거절과 연속된 문제들을 처리해야 하기에.

내가 할 수 없어서 도와달라는 말에는 가슴 아픈 인정이 필요하다. 특히 더욱더 사소한 일에는 말이다. 할 수 있지만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거절당해도 그렇게 쓰라리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해서도 할 수 없는 걸 부탁할 때는 거절의 타격이 크다. 단순히 거절당해서라기보다는, 거절 이후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 처리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난처한 것이다. 장애가 있다 보면, 이런 일들이 우후죽순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치워나가는 것이 장애인의 험난한 일상이다. 언제나 도움이 온다고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타인에게 계속 부탁해야 하는 일, 그것을 성장기의 아이들에게 바라기에는 더욱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 아이의 부모는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작지만 무엇이라도 선물하고 싶지 않았을까?            


나는 타인이 나에게 꾸준한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사실 나조차도 타인에게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나는 도움을 바란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여렸던 나는 옛날 옛적 마음의 기대치만큼 기대하기에는 이미 수많은 실패와 실망을 하면서, 점점 지쳤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오히려 이유 없는 호의가 더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야 할 때면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실제적으로, 현실적으로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감정과 기분을 가지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도와주겠다는 진심 어린 이 말을 기다린다.                 


- 그 말을 기다리면서 나는 매일을 살아간다. 안 하는 일은 있어도 장애로 인하여 못 하는 일은 없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으면서, 생존에 있어서는 도움이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선택으로 되도록 노력하면서. 내 인생 최대의 난제다.


- 내 탓이 아니지만, 내 탓밖에 할 수 없던 순간들.

다행히 나는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쌓아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으로서 흔히 받는 상처는 어쩔 수 없이 받는다. 그런 상처들 속에서 깨달았다. 내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내 장애만 가지고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비난과 질타를, 욕을 먹을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 아이들, 그 성인들은 미성숙했고, 어려서 그랬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야 내 상처가 덜 아프니까. 하지만 항상 이런 비난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만으로도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탓하게 된다. 내가 장애가 없었더라면, 내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내가 장애를 오픈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 그렇게 장애인은 더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세상이 무서워지는 그런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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