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인생에서 되게 중요한 순간
<뜻밖의 귀여운 응원>
신도시로 이사 와서 좋은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서울 살 때보다 아이들을 많이 봅니다.
-
우리가 사는 동 앞에 바로 놀이터가 있어요.
작업실 창문을 열면 바로 놀이터가 보입니다. 집을 구할 때 놀이터가 가까이 있는 것을 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희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오히려 낮에 아이들이 신나게 떠드는 소리가 좋습니다.
어제 낮에는 한 녀석이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어찌나 파워풀하게 외치던지
책작업 하면서 킥킥 웃음이 났습니다.
친구한테 하는 얘기인지 자기한테 하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지치지도 않고 반복하는 그 외침에
덩달아 제가 힘이 나더라고요.
'그래 너도 할 수 있고 나도 할 수 있고....'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열어놓은 창문으로 계속 들이쳐서 봄처럼 저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귀여운 응원이라니!
-
요즘의 사람들은 참아주지를 않습니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본 글은 좀 충격이었어요. 학교에서 하는 아이들의 행사가 점점 사라진다는 얘기.
시끄럽다고 민원이 너무 들어와서 아이들이 운동회도 살살해야 하고 아예 체육수업자체가 줄어든다는 얘기.
이것 말고도 많죠.
우리는 점점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어요.
어디까지가 민폐이고 어디까지를 참아줘야 하는가?
요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기다려주지 않아요.
인내하지 않고 봐주지도 않습니다.
미안하다 말하지 않고
희망도 별로 얘기하지 않아요.
시간을 들이는 모든 많은 행위들은 너무 가볍게 생각해요.
서사가 쌓이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한데 말입니다.
아이의 신나는 소리에 뭔 거창하게 희망까지 올라가냐 하겠지만 이런 모든 순간들은 미세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순간의 소리가 오래도록 남아 사람을 지탱하게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시끄러운 소음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속삭임처럼 들릴 수 있어요.
-
전 25년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오래되고 낡은 시영아파트 한 방안에 누워있던 제게 낮에 들려오던 아득한 소음들은
내가 살아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어요.
이제 나는 세상과 단절되었다고 낙담한 순간 그런 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귀를 세우고 들려오는 소리들을 채집하던 순간들이 모여 저는 살아난 것 같아요.
나와 상관없는 소리들이 나를 살게 해주는 동력이 되는 경험은 매우 특별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소리를 기대하게 되거든요.
그다음은 나와 관계있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싶어지고, 그다음은 나도 소리를 내고 싶어지고, 그렇게 살아지더라는 겁니다.
어떤 순간의 소리는,
정말 오래도록 살아남아 나를 계속 끌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