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die Kim May 16. 2023

바르셀로나에서 두 달 살기 #11

El día de San Jordi



바르셀로나에 여행오기 전부터, 4월 23일이 바르셀로나에서 꽤 유명한 축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축제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그날 까사 바트요의 파사드를 장미로 장식한다는 것에 마음이 뺏겨 이 날은 무조건 까사 바트요에 다시 가봐야겠다고 계획했던 날이다. 22일부터 거리 곳곳에 장미를 파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4월 23일은 발렌타인 데이처럼 연인들이 서로에게 장미와 책을 선물하는 날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통이 생긴 이유는 카탈루냐 지방의 전설 때문인데 기사 산 조르디가 용한테 납치된 공주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났고 결국 용을 칼로 찔러 무찌르고 공주를 구했다고 한다. 이때 산 조르디의 창에 찔린 상처에서 나온 피가 장미로 변했고 산 조르디는 이 장미를 꺾어 공주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책은 왜 선물할까? 셰익스피어가 영면한 날이 4월 23일이어서 출판업 쪽에서 산 조르디의 날과 엮어서 진행한 마케팅이었는데 그게 잘 자리 잡은 것 같다. 정말 똑똑한 사람들.


거리에서 장미꽃과 책을 파는 사람들


23일 아침. 일찍부터 나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까사 바트요의 장미장식 파사드를 동생이 기대하기도 했고 나도 보고 싶었기 때문에 발걸음을 빨리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이고 산 조르디의 날이라서 그런지 도로는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고 책 파는 부스와 장미 파는 부스가 우리 집 앞 쪽 거리부터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건 경험해 봐야지 하는 마음에 나도 장미 하나를 사서 들고 다녔다. 괜찮은 동화책이 있었으면 하나 사고 싶었는데 사람이 많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그라시아 거리, 카탈루냐 광장과 라람블라 거리가 메인인지 행사를 크게 하는 것 같았고 어떤 곳에서는 몇몇 책의 작가 사인회를 진행하는 모양인지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재밌다고 느꼈던 건, 보통 한국에서 하는 이런 행사 한쪽에는 푸드 트럭이나 그 외에 먹을 것을 파는 부스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 오로지 책과 장미 밖에 없었다는 점. 괜히 같이 들뜨는 마음으로 장미꽃을 휘두르며 까사 바트요를 향해 크게 걸어 나갔다.


날씨는 흐렸지만 존재감은 뚜렷한 장미로 덮힌 까사 바트요


창가 발코니 부근 쪽을 모두 장미로 뒤엎은 까사 바트요는 사진으로 보고 영상으로 본 것보다 더 임팩트 있는 모습이었다. 멀리서 걸어올 때부터 존재감이 뚜렷했기 때문에 구글 맵을 보며 찾지 않아도 쉽게 갈 수 있었다. 그 앞에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밀집해 있어서 뚫고 가기 쉽지는 않았지만 몇 장의 사진을 건졌기 때문에 올려 본다. 푸른 타일, 까사 바트요 앞에 서 있는 큰 초록의 나무와 대비되는 빨간 장미 장식. 가운데에 걸려있는 카탈루냐 국기가 산 조르디의 전설 그 자체처럼 보였다. 까사 바트요는 산 조르디의 전설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건물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산 조르디의 전설 같다고 느꼈다. 넋 놓고 바라보다 점점 많아지는 사람들로 인해 금방 지쳐서 이후에는 근처 카페로 피신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일정이 맞아 특별한 날에 특별한 곳을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좀 더 즐겼으면 좋았을 텐데 혼자다 보니 감상을 나눌 동행이 없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르셀로나에서 두 달 살기 #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