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남부 여행 01. 세비야 - flamenco의 본고장으로
이번 여행에서는 스페인 남부에 꼭 가보고 싶었다. 남부 지역은 그라나다만 가봐서 잘 모르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여행 전부터 기대가 되었던 곳이었다. 세비야, 론다 등 여행지로 유명한 도시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세비야는 한달살이 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가장 좋았다고 평이 많은 도시 중에 하나이기도 했기 때문에 나 또한 한껏 들뜬 마음으로 세비야로 넘어가는 날만 기다렸다. 바르셀로나에서 당일치기로 근교 여행은 몇 번 갔었지만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며칠동안 떠나 있는 것은 처음이라 짐 준비를 할 때부터 설레었다. 다만 몸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약을 잘 챙겨 먹으며 버텼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가는 내내 신이 났다. 상태는 어제보다 더 안 좋아지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작은 기내용 캐리어 하나 들고 여행 가는 이 모습 이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이미 온라인 체크인을 했고 수화물 맡길 것도 없었기 때문에 바로 들어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며 여유롭게 기다렸다. 세비야의 유명한 관광지는 알고 있지만 그 외에 맛집이나 카페 같은 곳을 많이 찾지 못해서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찾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세비야까지는 약 1시간 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세비야 국제공항은 도심에서 좀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세비야 공항에서 EA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시내로 갈 수 있다.
세비야는 일반적으로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가장 잘 가지고 있는 도시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정렬적인 레드가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중심지로 번창해 온 세비야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그라나다처럼 이슬람 건축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에 출발점이 된 도시이기도 하다. 4월 말쯤에 열리는 "la feria de abril"이라는 유명한 축제 덕분에 매 해 4월이면 관광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고 한다. 나도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4월 말에 세비야에 오고 싶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5월 초로 미루게 되면서 4월의 축제에 참여하지 못해 참 아쉬웠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일교차가 커서 한국에서 챙겨 온 짧은 반바지와 나시를 꺼내 입을 일이 없었고 컨디션도 안 좋았기 때문에 긴 청바지와 얇은 아우터를 입고 갔기 때문이다. 세비야는 이미 여행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덥다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고(5월 초에 간 여행이었는데, 4월 중순부터 덥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다.) 실제로 버스에서 내려 숙소로 걸어가는 내내 갑작스럽게 경험하게 된 더위에 당황스러웠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갈아입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어 잽싸게 옷을 갈아입고 시내 구경을 하러 나왔는데 중심지로 이동하는 동안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4시가 좀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햇빛이 정말 강해서 결국에는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6시까지 앉아있다가 나왔는데, 이때는 진짜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목은 아프고 날씨는 너무 뜨거워서 주변 건물과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사람들이 여기서 어떻게 한 달 살이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6시쯤 되니 밖을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아 원래 가려고 했던 스페인 광장을 갔다. 세비야의 더위는 3~5시가 가장 강한 것 같다. 그래서 보통 관광을 할 때 오전에 관광하고 낮에 그늘이나 숙소에서 쉬었다가 늦은 오후에 다시 나오는 패턴을 보인다. 세비야는 치안이 안 좋은 도시도 아니고 일몰이 9시 30분 이후이기 때문에 늦게까지도 밝아 늦게 돌아다니기 위험하지 않다. 나는 오늘은 첫날이기 때문에 세비야가 어떤 도시인지 느낌만 감상하고 싶어서 여유롭게 다녔다. 스페인 광장에 가는 길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지나가다 본 세비야 대학(구 담배공장)의 웅장함도 멋있었고 거리를 가로지르는 트램 길도 멋졌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풍경은 보라색 꽃나무들이다. Jacaranda (하까란다 또는 자카란다)라고 불리는 보라색 꽃나무들이 거리 곳곳을 수놓듯이 많이 심어져 있어 신비로운 거리 느낌을 자아냈다. 하까란다가 활짝 핀 시기를 잘 맞춰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보통 꽃 피는 시기보다 2주가량 꽃이 먼저 핀 경우라고 했다. 어쨌든 운이 좋았기 때문에 보랏빛 거리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잔뜩 꽃구경하며 마침내 도착한 스페인 광장은 그동안 내가 본 광장 중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멋지고 제일 감동적이었다. 광장을 가로로 지나가는 인공호수와 꼬마 배들, 4개의 다리, 대칭으로 감싸고 있는 광장 건축물, 광장 가운데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플라멩고 공연이 어우러져 더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혼자 다니는 여행에서 가장 큰 장점은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원하는 곳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광장 중앙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플라멩고 댄서들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아 오랫동안 구경하며 앉아있었다. 낮에는 더위에 쳐져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해가 저물어 가는 오후에는 눈에 너무 선명하게 들어와서 바빴다. 야경의 스페인 광장이 그렇게 멋지다던데.. 내일은 야경을 보러 와봐야겠다.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