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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die Kim May 26. 2023

바르셀로나에서 두 달 살기 #17

비 오는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 와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날씨였다. 물론 일교차가 굉장히 커서 가지고 온 여름옷들이 난감할 때도 많았지만 낮에는 여행하기 굉장히 좋은 날씨였다. 쨍한 햇빛과 맑고 높은 하늘 덕분에 사진 찍기도 좋았고 구경 다니기도 편했다. 낮에는 한 번도 흐렸던 날이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챙겨 온 우산을 나중에 햇빛 가리는 용도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항상 좋은 날씨 때문에 날씨 앱을 챙겨보지 않았었는데 결국 비가 오고야 말았다. 하필이면 벙커에서 일몰을 볼 때. 이전에 감동적인 일출을 보고 나서 일몰과 야경의 벙커는 어떤지 궁금해서 가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준비 없이 갔기 때문에 너무 늦게 가기도 했고 자리도 안 좋아서 다시 한번 가볼 생각으로 2번째 일몰을 보러 올라간 날이었다. 이 때는 동행을 구해서 갔었는데 벙커에서 만난 일행들이 되게 좋은 자리를 잡아놔 주셔서 즐겁게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8시 반쯤 됐으려나.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기대감에 설레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 일행들 덕분에 너무 재밌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 방울로 시작했던 비가 갑작스럽게 퍼붓기 시작했을 때 야경을 보러 올라온 사람들 모두 내려가기 시작했고 우리 역시 짐을 챙겨서 야경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 비 예보가 있긴 했는데, 어쨌든 생각도 못한 비 때문에 찍먹으로 슬쩍 보고 온 야경이 너무 아쉬웠고 우산을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바람막이 뒤집어쓰고 홀딱 젖어서 내려오다 보니 이 날 결국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제일 속상한 건 이 날 입었던 옷들이 모두 전날 세탁한 옷들이다.) 


당장 며칠 뒤면 남부 여행을 하러 가야 하는데 목감기 초기 증상을 보여 난감했다. 밤에는 여전히 조금 춥고 주말이라 약국은 안하고 가지고 있던 약들 중에 감기 약은 없고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었는데 가진 건 컵라면 뿐이라 제발 목감기가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라면 국물과 국화차를 마시며 보냈다.

내 방에서 보이는 비 오는 바깥 풍경


다음 날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날씨 앱을  챙겨 보았다.  예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라면을 더 사다놓기 위해 가벼운 옷차림으로 한인마트를 찾아 나섰는데  비가 와서  비를 맞고 결국 목감기가 심해지고 말았다. 이틀 연속으로 소나기처럼 퍼붓는 비가 갑작스럽게 내려 옷을 죄다 적시니 있는 대로 짜증이  상태로 집에 돌아와 다시 세탁을 하며 보냈는데. 

내 상황과는 반대로,   창문으로 바라보는 비가 오는 풍경은 예쁘고 창문 밖 빗소리도 왠지 듣기 좋고. 물기를 머금은 가로수와 빗물이 스며 짙은 베이지 색으로 변한 건물들의 모습은   이리 청량하고 예쁜건지. 실상 밖에서는 천둥이 치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난리인데 거실에서 보는  내리는 풍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듯하여 마음에 들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몰라도 스페인에 있는 동안에는  맞을 일이 없을  알았는데 결국 비를 보고야 마는구나.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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