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날씨였다.
일교차가 커서 여름옷이 애매할 때도 있었지만 낮에는 여행하기 좋은 날들이 이어졌다. 쨍한 햇빛과 맑고 높은 하늘 덕분에 사진 찍기에도 좋았고 돌아다니기에도 편했다. 낮에는 흐린 날이 거의 없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우산은 햇빛 가리는 용도로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항상 좋았던 날씨였기 때문에 날씨 앱을 잘 확인하지 않았는데, 결국 비를 만나고 말았다. 하필이면 벙커에서 일몰을 보러 간 날에 말이다.
이전에 벙커에서 일출을 보고 크게 감동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일몰과 야경도 다시 보고 싶어 두 번째로 올라간 날이었다. 나름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있어서 기분 좋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8시 반쯤이 됐으려나.
처음 한두 방울로 시작했던 비가 갑작스럽게 퍼붓기 시작했을 때 야경을 보러 올라온 사람들 모두 내려가기 시작했고 나 역시 짐을 챙겨서 야경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내려오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 비 예보가 있긴 했더라. 어쨌든 생각도 못한 비 때문에 찍먹으로 슬쩍 보고 온 야경이 너무 아쉬웠고 우산이 없어서 바람막이를 뒤집어쓴 채 홀딱 젖어 내려왔다. 결국 이 비때문에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제일 속상한 건 이 날 입었던 옷들이 모두 전날 막 세탁했던 옷이라는 것이다.)
당장 며칠 뒤에 남부 여행을 떠나야 하는데 목감기 초기 증상을 보여 난감했다. 밤에는 여전히 춥고 주말이라 약국은 닫았고, 가져온 약 중에 감기약이 없어서 힘들었다. 따뜻한 국물이 간절했지만 가진 건 컵라면뿐이었기 때문에 목감기가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라면 국물과 국화차를 마시며 보냈다.
다음 날에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날씨 앱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비 예보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라면을 더 사다놓기 위해 가벼운 옷차림으로 한인마트를 찾아 나섰는데 또 비가 왔다. 이틀 연속으로 소나기처럼 퍼붓는 비가 갑작스럽게 내려 옷을 죄다 적시니 있는 대로 짜증이 난 상태로 집에 돌아와 다시 세탁을 하며 보냈다. 이틀 연속으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다보니 목감기는 더 심해졌다.
그치만 짜증난 내 상황과는 반대로, 내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이상하리만큼 예뻤다. 젖은 가로수, 빗물에 색이 짙어진 베이지색 건물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밖에서는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고 있었지만, 실내에서 바라본 풍경은 차분하고 고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밖에서 만나는 비는 불청객 같았는데, 창문 안쪽에서는 한 폭의 프레임 속 장면처럼 보였다.
정보 전달 목적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느낀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들을 아카이빙하는 지극히 사적이고 소소한 일상의 기록입니다. 당시에 느꼈던 모든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만족으로 작성하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