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순례길 16일 차: 한번더 포르투

인생에 여러 번이고 오고싶은 곳

by 탱탱볼에세이

지난 금요일(2일 전)에 포르투에 도착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마지막까지 순례길에 충실하고 싶어서 쭉 해변을 따라서 루이스 다리에 도착했다.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프 에펠 제자가 설계한 다리에 다시 오다니. 8년 만이었다. 루이스 다리 주변으로 관광객이 가득 찼다. 엄청난 인기에 압도되었다. 더이상 나만의 포르투가 아니었다. 8년이란 시간 사이에 어느새 만인의 포르투가 되어있더라.


순례길은 포르투 대성당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언덕을 올라갔다. 산티아고를 향한 누군가의 시작점에서 나는 50일간의 순례길을 마무리했다. 어찌 보면 8년 전 포르투갈 내륙길의 시작을 했던 곳에서 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포르투갈길을 매듭지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개운했다. 오랫동안 미뤄둔 방학숙제를 끝낸 느낌이랄까.


계획대로 미리 예약한 포르투 공립알베르게에서 3일을 머무른다. 숙소 걱정에서 드디어 해방이다. 해 질 녘이 아름다운 이 도시에 1박에 15유로에 숙박할 수 있는 것이 순례자의 특권이 아닐까. 숙소에서 한국분들을 세 분이나 만났다. 다들 프랑스길을 걷고 오셨더라. 한국분들은 어디서 봐도 반갑다.


지친 얼굴로 숙소에 들어서서 그런지 한국분들이 많이 챙겨주셨다. 덕분에 밥을 얻어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밥이라 더욱 든든했다. 한식이 그리웠는데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순례길을 끝냈다는 성취감과 포르투에 다시 왔다는 반가움에 그저 첫날은 숙소에서 보냈다. 어제는 비고에서 만난 순례자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저녁엔 루이스다리를 건너 모루공원에서 석양을 보았다. 비긴어게인을 촬영하고 더 인기 있어진 포르투는 실제로 버스킹이 곳곳에서 진행되더라. 덕분에 BGM을 자동으로 깔린 것 같은 느낌으로 한강시민공원 같은 곳에서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했다.


포르투에 다시 오게 될 줄 몰랐다. 그것도 순례길을 걸어서는 더더욱. 하지만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대로 매번 흘러가기 때문에 때때로 어렵고 더 재밌다. 숙소에서 대만친구 둘이서 첫 순례길을 떠나는 것을 알게 됐다. 희라랑 같이 포르투갈길을 걸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순례길은 타투 같은 거라서 한번 중독되면 무조건 한 번 더 언젠가 순례를 하게 돼있다고 말했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좋은 풍경이 보이면 멈추고 즐겼다가 힘들면 버스도 타면서 쉬엄쉬엄하라고 했다.


순례길을 오롯이 걸었던 사람이라 사실은 버스 타고 배낭을 동키로 붙이고 이런 것들이 죄악시 느껴졌었다. 하지만 여긴 병영캠프도 아니고 내가 자발적으로 와서 내가 맞는 방법대로 즐겨야 한다. 괜히 남 눈치 본다고 몸 아파가면서 이고 지고 감내할 필요는 없다. 그러다 진짜 크게 다치면 회복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순례길 완주도 못하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


내 수준을 잘 알고 나에게 너무 무리하고 과도한 방식이 아닌지 항상 내 몸의 소리를 잘 듣는 것. 그것이 내가 이번 순례길에서 배운 점이다. 아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기 때문에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


오늘은 아침에 갑자기 모든 짐을 빨래 돌리고 싶었다. 옷을 가장 간단하게 챙겨 입고 가지고 있는 옷 일체를 숙소 근처 빨래방에 가져갔다. 성능 좋은 세탁기와 건조기에 5유로에 빨래를 의뢰한 것이다. 든든했다. 건조까지 80도로 살균되게 말끔히 그간의 먼지를 털어냈다. 배낭이 아무래도 등에 땀이 많이 차고 여기저기 아무 데나 땅바닥에 벗어던져서 특히 묵은 때가 심했다. 산티아고에서 한번 돌리고 포르투에서 두 번 돌리니 세상 개운하더라.


숙소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는 청소를 해서 출입이 불가하다. 그래서 빨래한 짐을 배낭에 메고 들고 동네마트에 갔다. 내일이면 또 도시를 이동하기 때문에 간단한 먹거리와 세면도구를 장만했다.


계산대 줄을 기다리는데 옆줄에 있는 아시아인 아주머니가 말을 거셨다. 십 대 따님과 함께 장 보러 오신 듯했다. 딸이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데도 엄마한테 찰싹 붙어있어서 칭얼거려서 눈에 띄었다. 근데 나도 그들에게 눈에 띄었나 보다. 크록스 신고 배낭 메고 있으니 여행 중이냐고 물어보셨다. 혼자서 6개월 동안 여행 중이라 말했다. 그랬더니 놀라시며 대단하다고 여행 잘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내 계산 차례가 돼서 계산하려 하는데 갑자기 아주머니가 본인이 계산해 주겠단다. 어머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머리가 계산이 안 됐다. 넙죽 계산해 주시는 걸 받았다. 아주머니는 인생에 한 번뿐인 중요한 순간(원스 인 어 라이프타임)인데 계산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마트를 나오는데 뭔가 민망하더라.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도 하고 본 지 1분도 안 됐는데 선뜻 10유로를 계산하시다니. 금액의 크기보다 짧은 시간 전해진 마음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1.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그때가 생각난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때 도움을 받았었는데 이젠 그런 어른이 되었으니 응원해주고 싶다.

2. 나는 저러고 싶었는데 사느라 바빠서 그러지 못했는데 대견하다. 응원해주고 싶다.

3. 얼굴이 새까맣게 타고 배낭 메고 크록스 신고 있는 행색이 많이 고생했나 보네. 힘들 텐데 응원해주고 싶다.

4. 우리 딸 같네. 나중에 우리 딸도 저렇게 여행할 수 있겠지. 이 여행자 친구에게 베풀어야지.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돈 쓰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돈이 없었다면 아마 같은 상황에서 서글퍼서 울어버렸을 것 같다. 의도치 않게 동정받은 기분이라서. 나 스스로 꼿꼿하게 여행할 수 있는 상황이라 다행이다. 순수하게 격려의 말 한마디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금전적으로 응원해 주신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아주머니의 입장이 되었어도 나 같은 상황의 배낭여행자 누군가에게 초면에 이렇게 선뜻 돈을 디불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당연히 아니다. 남한테 큰 관심도 없고 나 하나 지탱하는데 벅차기 때문이다. 남까지 품을 능력이 없다. 정이 없네, 인간미 없네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좋은 점은 남에게 큰 기대도 없다. 내가 준 게 없어서 남에게 받은 것도 어색하다. 그래서 먼저 품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러움이 크다. 왜냐면 나도 모르게 지는 빚 같아서. 이런 것이 정말 당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례길이 끝나고 깜짝 선물 받은 걸까. 당분간 이 빚진 기분이 유지될 것 같다. 사주신 물건들을 쓸 때마다 되뇌게 될 테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실 이런 어른이 되면 나처럼 부담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아주머니가 나의 6개월 배낭여행 인생에 한 번뿐인 순간이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 내 인생은 여러 번 이렇게 살 거라고 반박하고 싶더라. 이런 거 보면 난 분명 욕심쟁이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소중하니 맘껏 즐기란 응원으로 이해했다. 전 이런 순간을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만들고 싶고요. 이 경험 덕분에 숨겨왔던 야망이 불탄다.


돈을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마약이나 담배나 술에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정부에서 음식이나 숙소는 충분하게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에 정말 배가 고파서 구걸한다고 하면 음식을 주는 게 더 낫다는 스페인친구 환의 생각을 들었을 때 정말 동의했다. 누구든 돈을 구걸할 때 일회성이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 외면해 왔다. 누군가를 도울 마음이 나에겐 없었기 때문에 저런 깊은 생각도 못했다. 저런 스스로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돕지 않는데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울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를 돕는 마음이 사실은 나를 위해서일 수 있다. 도왔을 때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움 받은 사람들은 정말 그 도움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누군가를 또 돕기 위해 자립하려 노력을 할까? 복잡하다.


다들 자기만의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 세상을 흐릿하게 볼지 뚜렷하게 볼지 햇빛을 가릴지 선택하며 산다. 난 아웃포커싱한 것처럼 내 길은 뚜렷하게 보며 남들은 흐릿하게 보는 것 같다. 정답은 없다. 다만 가끔씩 안경알 깨지는 이런 경험들을 하면서 조금씩 시각이 넓어지는 기분이다. 내게 맞는 안경알을 다시 맞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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