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순례길 9일 차 : 걸어서 국경을 넘다

이 다리만 건너면

by 탱탱볼에세이

숙소에서 일어나 성벽 쪽으로 나섰다. 스페인 뚜이로 가는 순례길 경로다. 8년 만에 다시 찾은 성벽은 변함없이 푸르렀다. 성벽 안의 마을도 그대로였고.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포르투갈의 시간을 좀 더 즐겼다. 멋진 풍경을 보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왠지 더 좋아 보인다. 그리고 그 기억이 오래간다. 그런 의미에서 에그타르트를 두 개 산 것은 신의 한 수였다.


포르투갈 발렌카에서 스페인 뚜이로 향하는 다리에 도착했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시간이 한 시간 더해지며 포르투갈어에서 스페인어로 바뀐다. 따로 국경을 지키는 사람이나 신분증 검사를 하는 곳이 전혀 없다. 그저 두 발로 5분 정도 다리를 건너면 된다.


포르투갈 안내판에서 사진을 찍었다.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자 비가 조금 내렸다. 한동안 포르투갈 순례길 걸으면서 비를 맞은 적이 없었다. 모자를 쓰고 다리를 건너오니 스페인 안내판이 보인다. 빗줄기가 조금 굵어진다. 사진을 찍고 건물 밑으로 대피해서 배낭커버를 씌웠다.


국경마을에서 하루씩 머물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어제는 포르투갈 발렌카. 오늘은 스페인 뚜이. 다리 하나만 건너면 국가가 바뀌는 경험 너무 낭만적이지 않나. 8년 전에 포르투갈 순례길 내륙길을 걸으며 이미 해본 일이었지만 또 해도 여전히 설렜다.


스페인에 오자 1시간이 늘어났다. 뚜이 대성당을 향해서 걸어갔다. 뚜이 대성당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있더라. 8년 전에는 그냥 순례길로 지나가는 마을이었다. 하루 묵어보니 로마시대의 유적으로 마을 규모는 작지만 건물마다 영어로 설명이 잘 되어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기 쉽게 되어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알베르게와 숙소를 동시에 운영하는 카페에 먼저 들어가 오전 11시에 늦은 아침을 먹었다. 스페인에는 아침식사를 세트메뉴로 판매하는 곳이 많다. 스페인의 메뉴는 풍성한 구성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다. 든든하게 커피+오렌지주스+토스트를 주문했다. 특히 오렌지주스는 오렌지를 착즙 한 주스라 건강하고 달콤해서 아침식사 메뉴가 있으면 꼭 먹는다.


다 먹고 나와서 강가가 보이는 전망대로 향한다. 건너왔던 다리 쪽을 보니 어제 묵었던 포르투갈 발렌카가 보인다. 반대편엔 예쁜 강가가 펼쳐져있다. 저번에 왔을 땐 이런 구경 없이 다음 마을 걸어가기 바빴는데 말이다. 이곳을 두 번 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음 이 마을이 이리 좋은 지 충분히 모를 뻔했다.


숙소 체크인 시간에 맞춰 숙소 앞으로 갔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1등으로 체크인을 마치고 샤워도 빨래도 1등으로 했다. 빨래를 널고 넓은 옥상정원에서 햇빛을 쬐었다. 공립 알베르게가 좋은 이유가 유서 깊은 건물에 마을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아까 전망대에서 본 풍경을 숙소에서 더 높은 위치에서 볼 수 있더라. 멋진 풍경을 최대한 눈에 담았다.


숙소 근처에 메뉴를 먹으러 나섰다.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동네가 조그매서 그렇게 크게 안 돌아다녀도 돼서 좋았다. 두 번째 접시를 먹고 있을 때쯤 밖에서 비가 아주 세차게 내렸다. 아 내 빨래... 햇빛이 쨍쨍할 땐 언제고 오늘 날씨 심상찮다. 이미 내린 비에 빨래는 거나하게 젖었을 테고. 그냥 식사를 더 즐겼다. 따로 맥주나 와인은 포함되지 않은 구성이었지만 분명 10유로의 행복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역시 빨래를 살펴보니 새로 빨래한 듯 축축하게 젖었다. 내 빨래만 혼자 바람에 나부끼고 있더라. 다시 빨래해서 널었다. 이번엔 괜찮겠지?


서재에 앉아있는데 우르르 쾅쾅 천둥번개 소리가 들린다. 빨래들이 다 땅바닥으로 낙하했더라. 오늘은 안 걸어서 빨래도 몇 개 없는데 아무리 건조기가 2유로여도 돌리긴 아까웠다. 티셔츠 한 장만 말리면 되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또 빨래해서 다시 지붕 밑에 널어놓았다.


그러고도 수차례 비가 퍼붓더라. 오늘은 옷 건조를 포기하고 스포츠타월에 티셔츠를 감싸두었다. 내일 햇빛 좋은 곳에 다시 빨아서 말릴 것을 꿈꾸며. 5km 정도밖에 걷지 않았지만 행복한 휴식이었다. 내일은 힘내서 다시 해안길을 향해 걸을 것이다. 오늘 건너왔던 다리를 다시 넘어가서 포르투갈로 간다.


걸어서 국경 넘기 두 번 해도 세 번 해도 재밌다. 유심도 자꾸 주인이 스페인에 있다가 포르투갈에 있다가 스페인에 또 있다가 포르투갈 가려니 정신이 없다. 그래도 유럽전역에서 터지는 쓰리심으로 구매해서 걱정이 없다. 또 걸어서 국경을 넘을 생각에 설렌다. 특히 포르투갈은 1시간이 늦기 때문에 스페인에서 게으름 피운 1시간을 버는 느낌이다. 이렇게 나는 시간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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