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순례길 3일 차: 거꾸로 가는 길

이것이 바로 동지애?

by 탱탱볼에세이

거꾸로 가는 길은 외롭다. 다들 나와 반대로 가서 걸으면서 대화할 사람이 없다. 가끔 마주치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반가운 이유다.


중간에 할아버지를 찍어주는 할머니를 보고 같이 사진 찍어드릴지 먼저 물었다. 혼자 셀카를 힘들게 찍고 있거나 서로 사진 찍어주고 있으면 먼저 가서 도와주고 싶다. 내가 그런 적이 많은데, 누구에게 사진 부탁하고 싶은데 그 부탁이 어려워서 그냥 혼자 찍거나 서로를 찍어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대화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2018년에 똑같이 프랑스길 걷고 나처럼 산티아고에서 포르투까지 걸어갔다고 했다. 반가웠다. 나 같은 경험을 이미 하셨다니. 한국인들은 보통 그룹으로 다니는데 혼자서 다니는 게 대견하다고 칭찬하셨다. 덕분에 힘을 얻었다.


혼자 다른 방향으로 걷는 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모두가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크게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인사한다. 선방이 중요하니까. 그러면 보통 아무 말도 걸지 않고 똑같이 인사만 하고 각자 갈길 간다.


그러다 걔 중 몇몇이 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굳이 굳이 짚어준다. 나도 안다 하고 받아친다. 이미 그 말 한마디에 기운이 다 빠지지만.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뿐인 것을. 남의 상황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더라.


아무리 산티아고를 향하는 순례길이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간다. 배낭을 배달해서 가볍게 몸만 다니는 사람도 있고 모든 일정을 다 정해놓고 숙소를 예약해서 잠자리 걱정 없이 다니는 사람도 있듯이. 나도 그런 것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하소연할수록 내가 불리해지는 기분이다.


반대로 걸어서 그런지 에너지가 두 배로 든다. 모든 순례자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게 되니 말이다. 같은 방향으로 걸을 땐 걸음이 느려서 마주치는 사람이 적었다. 다른 방향으로 가니 아침부터 숙소 도착할 때까지 길 위의 모든 사람을 마주한다. 같은 방향이면 인사를 적게 하는데, 다른 방향이니 인사를 참 많이 한다. 거꾸로 걷기 전엔 몰랐다.


거꾸로 다니는 순례길에 단점만 있는 건 아니다. 장점도 있다. 모든 순례자가 걸어 다니는 화살표가 돼준다. 두 갈래 길을 마주치면 순례자가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면 된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가끔 아무 방향이나 택해서 걷다가 길을 잃고 말지만. 다행히 부엔까미노앱에서 실시간 위치를 잘 파악해 줘서 정신줄 잡고 금방 순례길을 찾는다.


8km쯤 남은 지점에서 쉬고 있는 여자애 두 명이 있더라. 남들과 똑같이 인사했다. 그랬더니 자기들도 같은 방향이란다. 너무 놀랐다. 나랑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파티마도 아니고 똑같이 포르투를 간단다. 산티아고에서 시작했단다.


너무 반가워서 3일 내내 시달린 판단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공감해 줬는데 얼마나 든든하던지. 둘은 친구라 같이 붙어 다니면서 대화라도 하는데 난 혼자라 힘들 것 같다고 위로해 줬다. 혼잣말이라도 마구 하라며 그러면 정신이 이상한 줄 알고 더 이상 말을 안 걸 거라고 팁을 줬다. 같은 방향으로 오는 친구들 덕분에 금방 폰테베드라에 왔다.


난 알베르게 침대가 다 찰까 봐 서둘러 친구들과 헤어졌다. 친구들은 휴가 내고 온 거라 정해진 일정이 있어서 매일 30km 이상씩 걷는단다. 텐트를 짊어지고 다니기 때문에 숙소도 구할 필요가 없다. 숙소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걷는 게 부럽더라. 아쉽게도 다시 길에서 볼 수 없겠다 싶었다.


숙소 오픈시간보다 15분 늦게 갔는데 10명 정도가 줄 서 있었다. 포르투갈길의 인기를 실감했다. 8년 전엔 하루에 10명도 볼까 말까 했는데. 언제 이렇게 소문이 다 났는지. 포르투갈길(포르투나 뚜이에서 시작) 길이가 2주 정도로 기간도 짧게 걸리고 길도 높낮이가 평이해서 많은 사람들이 휴가 내고 걷는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례길 오려면 아예 퇴사 또는 은퇴하고 큰 맘 먹고 와야 하는데. 유럽인들의 순례길 접근성이 다시 한번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알베르게에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재밌게 어울렸다. 친구들을 사귀어도 다른 방향으로 걸어서 더 친해질 수 없는 게 아쉽다. 하지만 그것마저 내가 선택한 길이니 또 다른 동지가 나타나길 바라본다. 그나저나 오늘 한국인 총 세 명 봤다. 신기하다 어제도 두 명 봤는데. 한국인 분들에게도 이제 포르투갈길이 소문났나 보다. 저랑 같이 거꾸로 걸으실 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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