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전반
10월 3일 금요일 연휴 첫날, 오전 9시에 일어났다. 이날은 늦게 일어나고 싶었다. 전날 <지옥에서 온 판사>를 남편, 첫째 아이와 12시까지 보고 잤다. 늦게 일어났지만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다. 늦게 일어난 것도 잘했고, 조급하지 않았던 것도 잘했다. 그런 나를 칭찬해. 운동 갔다 오고, 부동산 강의 자료 하나 읽고, 빨간 머리 앤 필사도 했다.
10월 4일 토요일 오전 8시경, 고향 앞으로 출발~
시댁에서 2박 하고 우리 집에서 1박 할 예정이다. 시댁은 옛날 아파트라 방 3개에 화장실 1개다. 그나마 방방마다 짐이 가득 차 있고, 하나 있는 욕실은 좁고 불편하다. 문을 열고 나오면 아버님이 소파에 앉아계신다. 나도 그렇고 애들 셋 모두 불편해한다. 남편도 그렇다. 내 친정은 그나마 좀 나은데 그래도 불편하다. 우리 모두 '미션 임파서블'을 외치며 집을 나섰다. 막히는 길을 뚫고 차를 약 5시간 타고 불편한 집에서 2박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서로 파이팅 해 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댁에서 2박이나 하는 이유는 시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무척 보고 싶어 하시기 때문이다. 1년에 아이들을 두 번 정도 보시는 것 같다. 땡글이는 1년에 한 번 보시는 것 같다. 양가 어르신들 모두 연로하셔서 기회가 되면 이제 최대한 가려고 한다. 이번 연휴는 길기도 하니 안 갈 수가 없다.
실은 시댁에서 자는 것이 불편해서 호텔을 알아봤는데... 헉!! 너무 비싸다. 하룻밤 자는데 50만 원!! 불편해도 꾹 참고 시댁에서 자기로 했다.
연휴 끝나면 바로 첫째 중간고사라 첫째와 나는 같이 남원시립도서관에 갔다. 아담하고 깔끔하고 쾌적한 곳이었다. 여기서 '학생생활교육위원회' 및 '학교폭력' 업무 운영 절차와 매뉴얼을 쭉 읽고 정리했다. 여기서 5시간 정도를 보냈다. 또 오고 싶은 곳이다.
10월 5일 일요일. 잘 준비할 때, 아침에 일어나서 욕실 사용할 때가 가장 불편하다. 그래도 잘 참고 하루 시작. 아침밥 먹고 애들이랑 인형 뽑기하고 나만 혼자 다시 나왔다. 시댁에서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집안에 생선 구운 냄새가 가득해서 답답하다. 생선은 내가 가장 맛있게 먹고 많이 먹지만 짭짤한 냄새는 진하고 오래간다.
시골 동네에 커피집이 의외로 많아서 걸으면서 구경했다. 한 군데 빼고 다 문을 닫았다. 가장 처음 봤고, 가장 마음에 들었고, 유일하게 문을 연 커피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혼자 있으면 오래 앉아 있기 부담스럽다. 그래서 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 가족이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다.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카페인을 되도록 안 먹으려고 한다. 그래도 이런데 오면 맛있고 예뻐 보이는 커피를 주문하게 된다. 오늘 나의 픽은 여기 시그니처라는 아인슈페너.
혼자 앉아서 빨간 머리 앤 필사하고 유튜브를 봤다. 한 시간 반 정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좋아하는 시간 중에 하나다. 서너 시간 앉아 있는 것도 좋지만 잠깐 앉아서(한 시간 반 동안 이것저것 하다 보면 시간 정말 빨리 간다) 좋아하는 일들을 조금씩 하는 시간이 정말 좋다.
시댁으로 돌아온 후 아이들과 김병종 미술관에 갈까 했지만 둘째 빼고 반응이 좋지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김병종미술관 건물이 멋있다. 다음에 꼭 가봐야겠다. 대신 애들이랑 동네 이디야에 갔다. 아이들은 그림 그리고 문제집 풀고 나는 영어 필사를 하고 업무 매뉴얼 책을 봤다. 여기서 약 3시간 정도 보냈다.
시댁 욕실에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우리 식구 모두 냉수마찰로 샤워하고 머리도 감았다. 찬물로라도 샤워를 하니 그나마 좀 나았다.
남원에서 전주로 이동. 친정에 와서 낮잠을 잤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깨우셨다. 나는 밥 먹는 것보다 자는 게 훨씬 중요하다. 그런데 엄마들은 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엄마로서 나는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 밥 먹으라고 깨우지 않는다.
요양원으로 아빠 면회를 갔다. 아빠는 오늘 할 일이 있다고 얼른 일어나셨다. 우리가 '지금 가면 돈 못 받는다, 아빠 보고 싶어서 왔다'라고 했지만 아빠는 사람을 잘못 찾아온 것 같다고 하시며 뿌리치고 들어가 버리셨다. 사람 일은 모른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셋 낳을지도, 첫째가 무용을 할지도, 아이가 이렇게도 속을 썩일지도, 부끄러워서 어디 말할 수도 없는 일을 벌일지도 몰랐다. 전혀.
하루도 운동을 빼놓지 않고, 매일 신문과 책을 읽으시던 아빠가 치매에 걸리실 줄은 가족 중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니 알 수 없는 미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친정에서 자고 싶지 않아 밤 10시에 출발해서 집에 새벽 3시에 도착했다. 연휴가 길어서 교통이 분산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털썩...... 분산돼서 그나마 이렇게 집에 올 수 있었나? 안 그랬으면 7시간 걸렸을지도... 다들 어디 갔다 어디로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