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후반
10월 7일 화요일.
전날 4시 좀 안 돼서 잠자리에 들었다. 집에 새벽 3시에 도착해서 정리하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오늘 아침 깨어보니 오전 10시!! 연휴에 하고 싶었던 일 중에 하나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10시에 일어나는 것은 기분이 영 좋지 않다.
오늘의 할 일은 애들이 용돈으로 받은 현금을 각자 계좌에 넣기, 아이들 주식 계좌 인증서 재발급받고 내 핸드폰에 옮기기, 증여세 알아보기 등이다. 운동, 독서, 청소도 기본 루틴에 들어간다. 휴일이라고 마냥 늘어져 있는 것은 찜찜하다. 조금 또는 대충 하더라도 운동, 독서, 청소는 하고 싶다. 그러나 이날은 늦게 일어나서 운동하고 밥 먹고 나니 하루가 거의 끝나 있었다...
10월 8일 수요일.
첫째 빼고, 둘셋째랑 동네 신한은행을 찾아갔다. 가까운 ATM이 없어져서 30분 가까이 걸어갔던 것인데...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로 지점을 옮겼다고 한다. 걷기 운동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걸어가는데 못 찾아서 좀 헤맸다. 막내가 힘들다고 찡찡대는 와중에 건물 2층의 ATM을 겨우 찾았다. 아이들 스스로 ATM 버튼을 터치하여 자기 계좌에 현금을 넣고 통장에 찍힌 돈을 확인했다. 뿌듯했다.
애들이 힘들어해서 근처 메가커피에 들어가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먹는 동안 나는 아이들 계좌를 열었다. 너희들이 이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고, 수익률은 이만큼이라고 보여주었다. 나도 비슷한 시기에 계좌를 만들었는데 아이들 수익이 나보다 높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자주 가는 카페 글을 봤는데 그분들 아이들 주식 수익률은 100%라고 한다! 아이고 배야... 우리 아이들 수익률은 30% 좀 넘는 정도다.
10월 9일 목요일.
오늘도 늦잠을 잤다. 또 10시쯤 일어난 것이다. 오늘까지만 늦잠을 잘 것이다! 연휴도 거의 후반부에 접어들고 있다. 이상하게 휴일이 줄어드는데 조급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학교 가고 출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집에 있는 것도 좋지만 직장에 나가고 일을 하고 가족 외 사람들을 만나고 규칙적인 일상을 사는 것도 좋다.
쉬니까 좋은 것 중에 하나는, 사람 없는 시간에 체육관에 갈 수 있고 그래서 더 여유 있게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은 케틀벨데드리프트 30개씩 7세트, 케틀벨스윙 20개씩 3세트 + 25개씩 3세트, 결말포함 영화리뷰 보면서 30분 걷기를 했다.
10월 10일 금요일.
남편과 첫째는 7시에 나갔다. 첫째는 학교 쉬는 날이지만 연습과 레슨이 있고 남편은 출근했다. 나와 둘셋째는 재량휴업일이라 오늘도 쉰다. 남편과 첫째가 문 여는 소리에 깼다.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며 이불속에서 버티다가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못했다. 미안했다. 남편은 힘들게 돈 벌러 가고, 아이는 비 오는 아침에 무겁게 가방 메고 학교 가는데 아내이자 엄마라는 사람이 자고 있다니... 이런...
첫째가 밉고 답답할 때가 많지만 오늘 같은 날은 안쓰럽다. 첫째는 저녁 8시에 집에 왔다. 비 오는 날 밤에 혼자서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걸어서 집에 왔다.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미안하다면서 엄마가 왜 데리러 가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다. 그 역사를 말하자면 너무 길다. 우리 집 애 욕하는 것이자 내 얼굴에 침 뱉는 행위이므로 자세히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최대한 첫째와 내가 안 만나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만 전하기로 하겠다.
이날은 골반교정 스트레칭 20분, 저녁 요가 25 분하고 유산소와 근력운동은 하지 않았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김영익 교수의 <금리와 환율 알고 갑시다>를 그저께부터 읽기 시작했다.
10월 11일 토요일.
6시 30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유튜브 쇼츠를 한참 봤다. 나는 유튜브 쇼츠 같은 것은 안 본다고 했는데 요즘은 나도 쇼츠 중독인 것 같다. 공원으로 걸으러 나갔다. 오늘은 비도 올듯하고 날도 추워지니 뛰는 사람들 좀 없을라나 했는데... 웬걸! 역시나 준마라톤대회 수준으로 많은 사람들이 뛰고 있었다. 오늘은 앞뒤로 뛰어 오는 사람들 피해 다니느라 좀 짜증이 났다. 러닝크루들 대여섯 명, 또는 그 이상이 뛰어다닐 때는 길을 다 막는다. 어떤 아저씨는 뒤에서 달려오며 내 팔을 치고 갔다. 공원이 너무 북적여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아 졌다. 그렇다고 막상 갈 곳도 없는데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걷기가 끝나고 집 근처 스벅에 들렀다. 주말 하루 중 내 루틴이다. 오늘은 사이즈업 쿠폰이 있어서 따뜻한 라떼 톨 사이즈를 숏 사이즈 가격으로 먹었다. 앉아서 거의 1시간 30분 동안 유튜브를 봤다. 초반 15분 정도는 법륜스님 즉문즉설을 들었다. 아이 키우는 엄마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과거에 왜 그랬을까'하는 후회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시 또 과거로 돌아가 그때 그러지 말걸,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가버렸다. 지금이라도 아이에게 상처 주지 말자, 아이에게 바라지 말고 내가 변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자, 더 이상 과거에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
최명기 정신과의사가 유튜브 쇼츠에서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멘탈이 강한 사람은 잘 잊어버리는 사람, 빨리빨리 생각이 옮겨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잠을 자고, 맛있는 것을 먹고, 루틴을 이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빨리 바꾸는 데는 유튜브 만한 것이 없다. 나중에 볼 영상에 추가해 놓은 부동산, 결말포함 영화리뷰, 미국동생들의 productive days, mindset, healthy habits 같은 영상을 1시간 넘게 봤다. 이 시간이 제일 좋다. 내일도 이렇게 해야지. 걷고 나서 스타벅스. 근데 내일은 어디를 걷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