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와 학부모와 담임교사
교감과 교장은 학교의 관리자다. 평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운영하고 직원을 관리한다. 특히 교감은 관리자로서 교장과 평교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자리다. 지금까지 몇 명의 교감선생님(우리는 대체로 교감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그냥 ‘교감’이라고 칭하겠다)을 거쳐보았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역할을 수행하는 방법이나 스타일이 개인에 따라 다르다.
이건 그냥 순전히 개인적인 내 기준인데 평교사 입장에서 교감이나 교장에 대한 감정이나 입장이 확실히 결정되는 때는 학부모와 갈등이 있을 때다. 그 사이에서 얼마나 조율을 잘 해내느냐에 따라 괜찮은 관리자냐 아니냐가 판가름 난다. 쉽게 말하자면 교사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대변해 주느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교감은 교장이 되기 위해서, 교장은 무사히 퇴임하기 위해서 학교에 별일이 없어야 한다. 특히 학부모와 갈등으로 복잡해지면 골치가 아프고 불안해진다. 그래서 관리자들은 교사에게 ‘선생님이 이해하고 넘어가라’고 달래고 학부모 입장을 대변하는 쪽에 서기도 한다. 이럴 때 교사들은 힘들고 외롭다. 교사가 항상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상식적인 상황에서 명백하게 선을 넘는 학생과 학부모가 있다. 다짜고짜 짜증을 내거나 내 아이만 이해받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제삼자가 봐도 기본적인 예의가 없고 그냥 자신의 감정을 거친 말로 터트리는 학부모들이 간혹 있다. 교사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학부모도 보았다.
내가 2학년 담임 할 때 일이다. 담임인 나, 보건교사, 학생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서로 곤란한 적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반 아이 D가 보건실에 다녀온 후 수업 중에 갑자기 가방을 메고 교실 앞으로 나와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마치 원래 집에 가기로 교사, 학생, 학부모 사이에 미리 얘기가 된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부모님께서 일찍 집에 오라고 하신 거냐고 D에게 물어보니 조금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했다. 사전에 학부모에게 연락을 받지 않았는데 혹시 내가 연락을 놓쳤을지도 몰랐다. 갑작스레 아이가 집에 간다고 하니 D에게 잠깐 기다려 보라고 했다. 보건선생님과 연락이 되지 않아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D가 집에 가겠다고 하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D의 어머님이 버럭 화를 냈다. 학교에서 갑자기 오전 중에 전화를 하면 아이에게 무슨 큰일이 난 줄 알고 엄마인 내가 얼마나 걱정을 하겠냐고 격노했다. "학교 가기 싫다는 아이를 겨우 달래서 보내놨는데 선생님 왜 그러시냐, 정말! 선생님 때문에 아이 자존감이 떨어져서 얼마나 힘든 줄 아느냐"라고 분노와 짜증을 쏟아냈다.
D는 평소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목소리와 행동이 큰 아이였다. 친구들과 자주 다투었고 담임인 나에게 주의를 자주 들었다.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로 인해 어머님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 아이의 문제 행동으로 다른 아이들의 호소가 여러 번 있었기에 그동안 D의 어머님께 몇 차례 상담 전화를 드리기도 했다. 반복되는 일에 그 아이 어머님도 지쳐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돌발 행동으로 담임교사에게 갑자기 전화를 받으니 놀라고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다. 나 또한 학부모로서 그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수업 중인 교사에게 퍼붓는 것, 화를 절제하지 못하고 쏟아내는 것은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 나는 학급의 담임으로서 다른 아이들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 D의 어머니는 화를 내고 전화를 끊은 후에도 교실로 계속 전화를 했다.
수업시간이라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D의 어머님은 교감에게 전화하여 나에게 했던 그대로 하신 모양이다. 오후에 교감이 우리 교실로 찾아왔다. 교감에게 오전에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교감은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좋게 얘기하고 담임인 내가 D어머님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라고 했다. 내가 사과할 부분이 있으면 사과하겠다, 그런데 아이가 갑자기 가방 메고 집에 가겠다고 하는데 그것을 학부모에게 확인하지 누구에게 확인하냐고 교감에게 물었다. 그러자 일단 사과부터 하라고 한다. 교감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저한테 그 어머님이 화내고 짜증 낸 것은요? 그건 그 어머님이 잘못한 거 아닌가요?” 교감은 그것도 대충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한 마디로 나에게 최대한 저자세로 나가서 그 어머님의 화를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어머님을 더 화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아이에 관한 일이니 순간적으로 흥분할 수도 있고,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일을 해결해야 한다. 감정이 격해진 학부모를 더 화나게 하거나, 잘잘못을 따지거나, D의 어머님이 나에게 예의가 없었으니 나도 그렇게 하겠다거나, 아까 왜 나한테 화냈냐고 따질 생각은 없었다. 그 학부모의 반응에 대해서 나는 참고만 있어야 하냐고 교감에게 물었던 이유는 교감의 대답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교감에게 '그래, 너 많이 속상하겠다'라는 한 마디가 듣고 싶었다. 직원의 감정과 상황도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가 아는 교감은 그렇게 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교감의 반응은 실망스러웠다. 나도 속상하다. 나도 학부모에게 일방적으로 폭언을 들었다. 서운하고 기운이 빠졌다. 이제 와서 보니 바랄 것을 바라야지 싶다.
교감은 심지어 “네가 확인을 어떻게 한 거야? 네가 먼저 기분 나쁘게 말한 거 아니야?”라고 내게 말했다. 평소 그 아이의 학교생활을 물으시더니 “그럼 왜 그때 바로 얘기 안 했어?” 하며 나를 추궁했다. 교감 입장에서는 내가 교감의 말대로 순순히 처리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나의 잘못도 캐내어, 너도 잘한 것은 없으니 조용히 마무리 짓자는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지, 교감이 학교의 관리자라면 직원의 입장도 어느 정도 대변해 주기를 바랐다. 교사는 학교 직원이고 교감은 학교 직원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무엇이든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학부모와 얘기할 때는 학부모 편을 들더라도 교사와 얘기할 때는 교사의 관점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노골적으로 학부모 편에서만 말하는 것도 학교 관리자로서 보일 수 있는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보통의 교사들은 교감 귀에까지 이런 일이 들어가게 되면 스스로 면목 없고 무능한 교사처럼 느끼기도 한다. 각자 담임들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처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자신을 책망한다. ‘그래, 역시 내 잘못이야’라고 하면서 자책한다. 밀려오는 업무와 수업 준비, 학급 경영, 보호자와의 소통 모두 내가 ‘다 잘해야’ 하는 데 못했으니 내 잘못이라고. 담임교사의 말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처음부터 ‘네가 무조건 미안하다고 해라’, ‘너 왜 그랬어?’와 같은 말은 각자 교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교사들의 가슴을 찌른다. 일방적인 학부모 편들기는 안 그래도 떨어질 때로 떨어진 교사들의 사기와 교권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몸과 마음이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자식일에는 앞뒤 안 가리는 게 이 세상 부모니까 그럴 수 있다 해도 교감까지 꼭 그래야 했을까. 학부모의 폭언보다 교감의 추궁이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물론 이런 교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당하게 학부모에게 괴롭힘을 받을 때 내가 교사 대표이니 나를 통해서 얘기하라고 방패가 되어주는 교감도 있다. 담임교사가 학생과 수업에 전념하고 교실에 있는 다른 아이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힘써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책임을 다하는 분들을 뵙는 것은 쉽지 않다(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느라 교감 얘기만 했는데 교장도 다양한 분들이 계신다).
그래서 그때 나는 결국 그 어머님과 어떻게 했느냐. 크게 심호흡을 한 뒤 D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나는 D와 D의 어머님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얘기했고 D어머님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미안해하는 어조였다. 아까 내가 너무 심했다거나 흥분해서 그랬다거나 같은 말씀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D의 어머님처럼 평정심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 학부모도 많다. 전의를 더욱 불태우는 분들도 흔하기에 나는 오히려 D의 어머님께 감사했다. 전화로 얘기하면서 나와 D의 어머님은 D를 위해 서로 잘해보기로 했다.
이틀 후 복도를 지나다 교감을 마주쳤다. 교감은 그때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며 미안해하셨다. 나는 "교감선생님 말씀이 다 맞아요. 그리고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교감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먼저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니 서운했던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다. 결국 이 일은 나와 D의 어머님, 교감 모두 서로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로 매듭지어졌다. 그런데 나는 왜 굳이 이 일을 떠올리고 글까지 쓰게 된 걸까. 아마……내가 뒤끝이 좀 심해서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