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무원으로서 업무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후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 엄마가 아이 키우느라 힘들어하면 아이도 그런 엄마의 영향을 받아 행복하게 자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엄마가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조금 쉬기도 하면서 마음 편히 아이를 키우자는 뜻이다. 이것을 학교 현장에 대입해 보면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고 하겠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듯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 그런데 교사가 학교에서 행복하기란 여러 가지 이유로 참…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래도 학교에서 기분이 좋고 웃을 일이 있긴 있다. 대체로 두 가지 경우인데 첫째는 동료교사와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공감할 때이다. 두 번째는 내가 맡은 아이들 덕분이다. 웃기려고 일부러 ‘방구’라는 단어를 썼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이 웃어줄 때, 아침에 버스 안 놓치려고 뛰다 겨우 버스를 탔는데 버스를 잘못 탄 거였다고 하니 반 아이들이 함께 탄식해 줄 때, 편의점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했더니 같이 걱정해 줄 때, 지갑을 찾았다고 했더니 같이 기뻐해줄 때, 열심히 준비한 점대칭 도형과 선대칭 도형에 관한 수업을 아이들이 집중해서 따라와 줄 때 기분이 좋다. 실제 생긴 것보다 예쁘게 내 모습을 그려 선생님이라고 내미는 아이의 두 손을 볼 때, 방과후 수업시간에 만든 찰흙 인형을 선생님에게 주고 싶다고 교실 문을 살며시 열며 수줍게 다가오는 아이의 발걸음을 볼 때 내 얼굴에는 엄마미소가 떠오르고 마음은 몽글몽글 해진다. 몸이 안 좋아 며칠 쉬고 출근했더니 평소 수업 시간에 집중도 안 하고 말도 거칠게 하던 아이가 “선생님, 이제 괜찮으십니까? 걱정했습니다.”라고 말해줄 때는 감동받아 눈물이 날 뻔했다.
이렇게 교사가 행복하려면 교사에게 여유가 좀 있어야 한다. 아이들과 눈을 맞출 시간, 아이들을 관찰할 시간, 쉬는 시간에 혼자 있는 아이와 대화를 나눌 시간, 수업을 준비할 시간 말이다. 그런데 현실교사에게는 이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고객이 은행에 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의 업무가 끝나고 나면 은행의 진짜 업무가 시작된다고 한다. 교사도 그렇다. 어느 직업이든 그렇겠지만 그 업계에 실제로 들어가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하게 된다. ‘이런 일을 한다고?’ ‘이런 것까지 한다고?’ 싶은 것들이 많다. 겉에서 보는 것과 안으로 들어와 실무를 하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8시 30분부터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 교사의 업무는 학생의 학습과 생활지도이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뒤부터는 교사들의 새로운 업무가 시작된다. 각 교사들에게 배정된 행정업무다. 학교마다 그 업무의 양과 종류가 다르기는 하나 모든 교사들이 행정업무를 맡는다. 예를 들면, 체육 물품 구입 및 관리, 방과후학교 운영과 강사 채용 및 지원, 과학 및 정보 기기 구입 및 관리, 졸업앨범 제작, 외부 기관과 협력하여 수업 조직 및 학생 학습 지원, 인근 소방서와 협력하여 안전교육 및 대피훈련, 감사자료 관리 및 검토, 학생‧ 학부모‧교사를 대상으로 한 연수 기획 및 강사 섭외, 강사 급여 지급, 체험학습 기획 및 운영 등, 목록은 계속된다. 학교라는 조직이 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업무를 교사들이 맡는다. 교무실에서 근무하며 업무를 지원해 주는 공무직 직원이 있지만 이상하게 교사의 업무는 줄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업무가 늘어나는 것 같다. 지역사회에서 맡아야 할 일, 각 분야 전문가가 맡아야 할 일이 학교로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집안에서 엄마가 청소, 빨래, 장보기, 식사준비, 설거지 등의 온갖 집안일을 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고 아이들 공부와 건강 챙기고, 학원 일정 조정하고 데려다주고 데려오기를 다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피곤하고 짜증이 나서 정작 아이를 바라보는 일,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일을 못한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이거 내라 저거 내라 하는 학교와 교육청의 요구를 들어주고 공문 찾아보고 각종 연수받고 다시 각종 회의를 하다 보면 수업준비를 제대로 할 시간이 없을 때도 있다. 교사에게 제일 중요한 업무가 수업준비인데 말이다. 학교에서 해야 할 업무가 많을 때는 수업준비도 힘들고 수업할 때도 '끝나고 그거 해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수학문제를 여러 번 설명해도 아이들이 못 알아들으면 한숨이 난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우리 반 아이를 주의 깊게 바라보기 힘들다. 거기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떠들고 집중을 안 한다면? 그것까지도 좋다. 아이들은 원래 그러니까. 그런데 교사에게 버릇없이 한다면? 여기서부터는 교사가 여유 있는 마음으로 대응하기 힘들다. 교사에게 원하는 것이 보살인 건가? 설마 부처는 아니겠지?
아이들과 관계가 멀어지고 불만이 쌓이면서 학부모 민원도 발생하는 것 같다. 대체로 학생과 교사의 사이가 좋으면 학부모 민원도 줄어든다. 교사가 업무에 치여 정신이 없고 피곤할 때, 세밀한 부분을 챙기지 못하고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교사 개인에게 돌아간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간에 발생하는 문제의 원인이 다양하겠지만 교사에게 주어지는 과중한 업무도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공감 공감, 소통 소통하라고 하던데 시간이 있어야 공감을 하든지 소통을 하든지 할 게 아닌가. 앉아서 듣기 좋은 이론을 말하는 것은 쉽다. 30명 가까운 아이들과 현장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업무까지 하다 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 것이다.
업무경감은 꼭 해결해야 하는 숙제로써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말만 업무경감이지 정신건강의학과, 주민 센터, 경찰서에서 할 일들이 학교로 들어왔다. 어떤 일이 나가면 다른 일이 들어온다. 나가는 일이나(실제적으로 거의 없다) 들어오는 일이나 각 분야 전문가와 담당기관이 있는데 왜 다 학교로 들어오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가정, 사회에서 더 큰 원인 제공을 하는 문제들이 있다. 그런 문제가 생기면 학교에 업무를 누더기식으로 덕지덕지 하나씩 갖다 붙인다. 정책입안자들이 정말로 교육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이러면 안 될 텐데……. 높으신 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업무도 척척 처리하고 학부모 민원도 안 들어오게 하고 교실 청소도 깔끔하게 하고 아이들의 예의 없는 언행에도 침착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하는데 일단 그럴 환경을 좀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난 후 요구를 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싶다. 교사를 행복하게 해 달라는 얼토당토않은 요구는 하지 않겠다. 다만 교사는 주 업무인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일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부분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교사들은 양질의 수업을 만들어 낸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마음 깊이 흐르고 있다. 이러한 고급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 모로 손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