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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Sep 12. 2024

스티브잡스처럼, 마크저커버그처럼

요즘엔 젠슨황도 유력해 보임

  ‘오늘 뭐 입지?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네.’ 출근하는 아침마다 옷장을 뒤적이며 한참 시간을 보내던 때가 있었다. 막 발령받은 초기에는 스커트에 스타킹 신고 뾰족구두 신고 재킷 입고 딱 갖추어진 복장으로 출근했었다. 그렇게 입으려면 옷이 많아야 했다. 캐주얼하게 입더라도 옷을 사들이고 신경 쓰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충 입고 가더라도 옷은 많이 필요했다. 주말마다 옷 쇼핑을 다녔고 쇼핑몰에 갈 수 없을 때는 온라인으로 끊임없이 옷을 샀다. 그러면서도 매일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냐고 한숨을 푹푹 쉬며 옷들을 헤집어 놨다. 입을 옷을 고르느라 소중한 아침 시간을 보냈다. 옷이 많으면 많은 데로, 없으면 없는 데로 그랬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하는 분주한 아침에도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는 일은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복장은 대표적인 형식의 표현이다. 그 형식은 마음가짐이나 정신 상태에도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교복이나 제복을 입는 것일 테다. 집에서 편하게 입고 있다가 직장에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일은 일종의 의식이다. 여자 연예인들의 입금 전후 모습을 비교하는 사진이 있던데 나는 출근 전후의 모습이 그런 것 같다. 이왕 입는 거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애 엄마 같지 않다는 소리도 듣고 싶었다. 그렇게 옷을 사도 입을 옷은 없고 아침마다 뭐 입지? 하는 고민은 계속됐다. 즐기는 만큼 짜증도 났다. 


  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후,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부터는 출근 복장이 많이 달려졌다. 아침마다 뭐 입을까 고민도 거의 하지 않는다. 옷을 어떻게 매치해야 할지, 어떻게 입어야 좀 더 나을지 고심하느라 옷장 앞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그럴 때도 있긴 하지만 어쩌다 한 번이고 그 고민의 시간도 확 줄었다. 뭘 입을까 고민을 한다면 약 2초. 입을 옷을 고민하느라 옷을 뒤적일 시간에 둘째가 푼 수학문제집 채점을 해주고, 아이들 아침밥을 차려주고, 출근하러 나가는 길에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 


  출근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등교하는 아침은 상당히 정신 사납다. 그런데 나까지 출근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할 일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어야 했다. 옷차림에 신경 쓰는 것을 1순위로 뺐다. 그래서 우울하거나 아쉬웠냐 하면 전혀 아니다. 편하고 좋았다. 단순한 색깔과 디자인의 옷을 꼭 필요한 만큼만 구입했다. 비싸고 좋은 옷, 활동하기에 불편한 옷은 사지 않았다. 전에도 아주 비싼 옷은 입지 않았지만 옷에 쓰는 돈을 더 줄였다. 육아휴직 중에 좋았던 것 중에 하나가 옷을 아무렇게나 입어도 되는 것이었다. 옷도 거의 사지 않았다. 


  옷 구입과 착장에 꽤 신경 쓰며 스트레스받던 시절, 옷을 입는 재미도 있었지만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유도 상당히 컸다. 그런데 이제는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옷을 사는 돈, 옷을 어떻게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옷과 옷차림, 소비에 대한 내 생각이 아이를 키우고, 집안의 경제를 꾸려가면서 크게 바뀌었다. 가정경제의 책임자가 되면서 어떤 것이 합리적인 소비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시선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옷을 사는 행위, 옷을 입고 벗고, 보관하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 노력에 최소한만 쓰고 싶다. 옷을 사다 보면 싫증이 나서, 유행이 지나서, 그냥 손이 잘 안 가서 안 입고 버리는 옷도 많다. 옷을 상당히 줄인 지금도 여전히 안 입는 옷들이 있다. 그런 옷들은 결국 다 쓰레기로 쌓여 환경오염이 된다. 옷의 구입, 보관, 착용까지 커다란 낭비라고 생각하게 됐다. 남에게 예쁘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서 상당한 자원을 낭비하며 환경오염까지 시킬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옷을 아무렇게나 입겠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옷을 잘 입고 싶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들에게 멋스럽게 보이고 싶다. 엄밀히 말하면 옷차림이나 가방, 신발이 문제가 아니다. 몸에 군살이 없고 머릿결이 좋고 피부가 깨끗하고 자세가 곧으면, 아무거나 입어도 웬만하면 괜찮아 보인다.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툭 튀어나온 아랫배와 칙칙한 피부, 거친 머릿결, 굽은 등과 말린 어깨가 문제다. 세련되게 보이고 싶기는 한데 옷은 아무거나 잡히는 데로 입고 싶다. 그런데 뱃살이 출렁이게 되면 그냥 망하는 거다. 소비를 통해 치장하는 대신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자외선을 피하고, 음식을 절제하며 먹는 것이 여러모로 훨씬 효과가 좋다. 


  그래서 당신은 매일 직장에 무엇을 입고 다니는가? 물으신다면, 나의 출퇴근 복장은 사계절 무채색을 기반으로 한다. 단순하지만 여기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상의는 검정, 남색이고 하의는 상의와 같은 색 계열의 바지를 주로 입어 ‘깔맞춤’한다. 하의에는 흰색이나 베이지, 카키색 등으로 종종 변화를 주기도 한다. 무채색 옷만 사는 이유는 그런 색깔이 다른 옷과 조화가 잘 되기 때문이다. 옷을 잘 못 입으니까 최대한 단순하게 입는다.


  매일 똑같은 무채색 옷만 입어도 충분히 멋있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옷, 신발, 가방 등 외모에 지나친 자원을 쓰지 않고, 내가 입고 싶은 데로, 매일 똑같은 옷만 대충 입는 것 자체가 멋이라고 생각한다. 고만고만한 옷과 스타일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그저 그런 옷을 생각 없이 사고, 뭘 입을까 고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패션의 완성은 자신감이다.’ 2만 원짜리 티셔츠도 자신감 있게 입으면 된다. 나는 합리적 소비를 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계속해서 옷을 사고 바꿔 입는 것도 의미가 없지만 학교는 멋진 옷, 예쁜 옷, 각 잡힌 옷과 그런 옷을 매일 바꿔 입고 오는 행위가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아이들과 몸으로 부대껴야 하는 곳이다. 교실에는 먼지가 정말 많다. 뭉실뭉실한 회색먼지가 매일 생산되는 곳이다. 교실 청소도 내가 해야 한다. 위아래, 저렴하고 편한 옷을 입어야 아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저학년 담임이라면 쭈그리고 앉아야 하는 일이 많다. 아이가 토하면(의외로 자주 있는 일이다) 바닥에 퍼진 토사물을 닦아야 한다. 한 번은 우리 반 아이가 소화기를 잘못 건들어서 소화기 분말이 밖으로 분사된 적이 있다. 쭈그리고 앉아서 30분 이상 닦아야 했다. 급식실 바닥에 떨어뜨린 국물과 반찬도 닦아야 한다. 복잡한 급식실에서 식판을 들고 딴 데를 쳐다보며 걷거나 뛰는 녀석들도 있는데 이럴 때 부딪히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옷에 밥풀이나 고춧가루를 묻히고 다닐 수 있다. 각 과목에서 재료를 가지고 만들거나 조작하는 활동을 많이 한다. 과학시간에는 실험을 하고 미술시간에는 물감이나 찰흙을 쓴다. 지도하면서 옷에 재료가 묻을 수 있다. 교실 뒤판을 아이들 활동 작품으로 바꿔주려면 사물함 위로 올라가야 한다. 재료를 찾아 주거나 함께 만들고 어려워하는 것을 가르쳐줄 때 허리를 많이 숙인다. 이때도 쭈그리고 앉을 때가 많다. 아이들 앞에 서는 데 옷이 몸에 붙는 것도 불편하다. 쭈그리고 앉을 때 속살이나 속옷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체육 수업이 있는 날에는 가능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출근한다. 활동도 편하고 옷 갈아입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에게는 옷차림이나 겉모습보다는 교과 내용을 잘 가르치는 것, 친절함, 공정함 등으로 인정받고 싶다.  

     

   어떤 사람과 나를 스스로 비교하면서 그 사람보다 더 고급스럽고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저 사람은 매일 똑같은 옷만 입고 오네. 옷이 없나? 돈이 없나? 옷을 빨지 않는 건가?’ 하며 내 위생 상태에 대한 의심을 받을까 봐, 나의 경제 상황을 얕잡아 볼까 봐 주저하는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매일 비슷하게 편한 복장을 했을 때 이점이 훨씬 크다. 남을 의식하는 일에 귀한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입고 싶지 않다. 나의 시간, 돈, 에너지라는 한정된 가치를 훨씬 쓸모 있는 곳에 가치 있게 쓰고 싶다. 출근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보다 옷 잘 입고 예쁘고 잘난 사람은 무한히 많고 소비는 끝이 없다. 그 소모전에서 이길 자신도 없다. 매일 무채색으로 비슷한 옷, 같은 옷만 입는 것을 나의 콘셉트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패션의 완성은 자신감이니까 자신감 있게 밀고 나가면 된다. 스티브 잡스나 마크 저커버그처럼 말이다(실제 그들의 옷은 비싸겠지만). 요즘은 젠슨 황도 괜찮아 보인다. 나의 패션아이콘으로 추가해야겠다. 오늘도 나는 검은색 티셔츠, 남색 면바지, 흰 운동화를 신고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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