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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Oct 10. 2024

어느 교사의 하루

무탈한 하루 


  출근부터 아이들 하교까지


  현재 내가 다니는 학교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다. 집에서 7시 40분쯤 나와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으면 학교 안에 들어간다.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가 어두컴컴한 복도에 불을 켠다. 자물쇠로 잠긴 문을 열고 신발을 실내화로 갈아 신는다. 교실로 들어오면 시간은 약 8시 5분에서 10분 사이다. 실내화는 편안한 것이 최고인데 집에서 신던 굽 높은 검은색 슬리퍼가 있어 새로 사지 않고 학교에서 신는다.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켠다. 환기를 위해 교실 문과 창문을 활짝 연다. 날이 더우나 추우나 환기는 필수다. 가방을 캐비닛에 넣고 책을 편다. 요즘은 전자책을 많이 보기 때문에 탭을 켠다.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조용히 책을 보는 나만의 독서시간이다.


  일찍 오는 아이는 8시 30분이면 교실에 들어온다. 이때부터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틈틈이 책을 본다. 아이들이 몰려오는 시간에는 책을 덮고 아이들을 맞이한다. 수업 시작하기 10분 전에 아이들은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교과서를 준비한다. 물론 대부분 떠들거나 장난을 친다. 나는 그 사이 전날과 아침에 쌓인 메신저 대화창과 쪽지를 확인한다. 대화와 메신저가 하나도 없는 날도 있는데 이런 날은 왠지 좀 서운하다. 대화와 메신저가 한두 개 정도 있으면 가장 좋고 많으면 부담스럽다. 수첩에 적어놓은 오늘의 할 일과 진도 나갈 교과서를 한 번 훑어본다. 


  수업 시간에 나는 나름대로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것 같다. 아이들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말하다 보면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고, 집중 안 하는 아이들을 집중하게 하고 싶고, 모르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어 진다. 좀 오버한다 싶을 땐 너무 앞서 가지 말자고 스스로를 멈춰 세운다. 이럴 때는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또는 아이들에게 발표나 교과서 쓰기 부분을 하게 한다. 매일 만나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매 수업시간이 즐거울 수는 없다. 교사가 항상 열정적으로 가르칠 수도 없고, 학생은 수업에 빈틈없이 집중하기 어렵다. 40분, 45분, 50분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하는 일은 성인에게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상과 이벤트 사이, 지루함과 몰입의 사이를 오가며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우리 1년 동안의 순항을 위해 필요하다.  


  쉬는 시간은 별일 없으면 메신저 쪽지와 대화를 확인하고 빨리 확인해서 보내줘야 할 것이 있으면 보내고 답해줘야 할 게 있으면 답한다. 여기서 별일은 아이들 간의 다툼이나 위험한 장난이다.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쳐서 쉬는 시간에 정말 신나게 논다.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종이접기를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열심히 논다.  저 녀석들은 피곤하지도 않나? 아이들의 넘치는 힘이 부럽다. 놀다 보면 다툼은 필수 코스다. 누가 때렸다, 쳤다, 욕을 했다, 뛴다, 내가 같이 놀자고 하는데 놀아주지 않는다, 너무 시끄럽다 등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 


  나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는 다툰 아이들을 불러서 얘기를 들어보고 중재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이게 한 두 번은 할 만한데 쉬는 시간마다 하거나 매일 두세건 하다 보면 상당히 지친다. 특히 자신은 잘못이 없고 상대만 잘못했다고 할 때, 놀다 보면 생길 수도 있는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에 시시비비를 가려달라고 할 때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들 마음은 또 다르니 잘 들어주고 다독여야 한다. 그러면 10분은 금방 지난다. 


  나를 포함하여 아이들에게도 소중하고 소중한,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점심시간이다. 나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은 칼같이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쳤는데도 열강을 하시는 선생님은 감사하지만 좋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쉬는 시간까지 수업을 이어나가야 할 때는 종 치기 2,3분 전에 예고를 한다. 설명 도중에 종이 치더라도 조금 더 하겠다고. 배가 고프면 공부고 뭐고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점심시간도 최대한 지킨다.  


  아이들에게 교실에서 벗어나 급식실로 가는 길은 체육시간 다음으로 신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먼저 식판에 밥을 받으면 나는 아이들을 자리로 안내한다. 아이들이 모두 앉으면 나도 식판에 밥을 받아 아이들 옆에 앉아서 먹는다. 5교시하는 날은 밥을 먹고 아이들이 알아서 하교하고 6교시하는 날은 점심 먹고 6교시까지 수업 후 하교한다. 점심시간과 하교시간은 학교, 학년의 교육과정에 따라 다르다. 아이들과 하교 인사를 하고 나면 이제야 한숨 돌린다. 전반전 끝. 


 아이들 하교 후 퇴근 전까지

     

  아이들이 하교하면 주어진 업무와 다음날 수업준비를 한다. 나는 그전에 먼저 청소를 한다. 다음날 아이들을 맞으려면 깨끗한 교실은 기본이다. 교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야 나 역시 정돈된 마음으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같이 쓰는 공간이니까 청소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혼자 조용히 바닥을 쓰는 시간이 좋아서 주로 혼자 한다. 바닥을 쓰는 동안은 마음이 차분해져서 좋고 청소가 끝난 후에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교실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청소 후에는 다음 날 공부할 교과서와 자료를 훑어본다. 지도 내용 중에 궁금한 부분은 지도서와 다른 참고자료를 찾아본다. 나는 울트라파워 J답게 계획하는 것을 좋아해서 수업준비 하는 것이 재밌다. 대단히 뭘 열심히 한다기보다는 내일 할 것을 미리 정하고 살펴보는 일인데 나는 이것이 즐겁다. 수업 준비를 위해 지도서 읽는 것도 재밌다. 하지만 업무를 위한 공문은 읽고 싶지 않다. 요즘 내가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사회과목 중 문화유산 부분이다. 제한시간을 두고 스피드퀴즈로 아이들에게 경복궁이나 광안대교, 수원화성을 설명하도록 하면 공부가 저절로 된다. 스피드퀴즈는 지루한 수업시간을 놀이시간으로 바꿔주는 마법과 같다. 스피드퀴즈는 내가 초등학생 때 인기 있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에서 하던 게임인데  <가족오락관>에서 했던 몇 가지 게임을 수업에서 활용하면 효과가 무척 좋다. 그런데 우리 반 아이들은 <가족오락관>이라는 프로그램을 모르겠지?  


  오후에는 보통 담당업무를 하고 그 외에 수업이나 학년 운영에 관한 회의를 한다. 틈틈이 연수도 들어야 한다. 나는 현재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데 작은 학교는 교사 수가 적기 때문에 한 사람 앞에 떨어지는 업무량이 상당하다. 우리 학교 모든 선생님은 할 일이 많다. 거기다 보직까지 맡고 있으면 업무량이 다시 한번 많아진다. 학기 초나 말에는 집에 가서도 해야 한다. 아이들이 가고 난 후 시간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 금방 흘러간다. 공문처리하고 업무계획서 쓰고 성적처리하고 행사준비 등, 할 일은 많다. 


  아이들을 보내고 같은 학년 선생님들끼리 모여 차 한 잔 마시며 숨 돌리는 시간이 있다. 바빠서 자주는 못하고 가끔 모이는데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하다. 오늘 아이들이 유난히 떠들어서 힘들었다, 과학 수업은 자석 실험을 했는데 이건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이들이 만든 캠페인 포스터 표어가 너무 웃겼다(‘대변보고 물을 꼭 내립시다’ 같은 것), 어떤 아이한테서 선생님을 집에 가서 이르겠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학부모님에게 투서 비슷한 메시지를 받았다, 등 얘깃거리는 많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쁘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동료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힘을 얻고 불편한 감정은 털어버린다. 나는 운이 좋아 주변에 항상 좋은 동료교사들이 있었다. 다행이고 감사하다. 


   퇴근시간 4시 30분은 금방 돌아온다. 급하게 처리할 업무가 없을 때는 퇴근 준비하며 여유가 생긴다. 요즘 유튜브에 자신의 일상을 올리는 블로그가 많은데 마치 나도 그런 유튜버인양 퇴근 준비를 한다. 사근사근한 노래나 재즈가 나오며 일상의 작은 동작까지 로맨틱하게 보여주는 영상들 있지 않나. 창문을 쓱 닫고 뒷문을 찰칵 잠그고 멀티탭을 탁 끈다. 칼퇴근하는 날은 발걸음이 가볍다. 바쁜 날에는 교실에서 한두 시간 더 일하고 집에 가서 밥하고 청소해야 하니 허겁지겁 퇴근하지만. 


 교실정리를 하고 백팩에 물통과 탭을 집어넣고 선글라스를 쓴다. 앞문 자물쇠를 잠그고 신발을 슬리퍼로 갈아 신고 계단을 내려온다.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햇살이 따뜻하면 '이런 게 행복인가?'싶다. 맑지 않은 날도 괜찮다. 별 탈 없이 직장에서 하루를 마무리했음이 감사하다.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학교를 걸어 나오며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고 마음을 달랜다. 대부분의 퇴근길에 뿌듯함을 느끼고 가끔은 우울하고 지친다. 그래도 이 직업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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