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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Sep 17. 2024

복직 후 첫 월급

나에게 월급이란

  이제야 겨우 느끼게 되었다. 월급이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것임을. 나는 생계형 교사다. 직장인 중에 생계형이 아닌 사람이 없겠지만 선생님들끼리 자조적인 의미로 '생계형 교사'라는 말을 쓴다. 어찌 됐든 나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직업이 있음에 감사하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교사 월급은 많지 않다. 어디 가서 말하기 조금 부끄러운 수준이다. 한 달에 천만 원 이상 주는 직장도 많고 소득이 그 이상 높은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하다. 그렇더라도 나는 일정하게 직장에 나가서 일정한 날 월급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하다.


  교사는 돈을 보고 하는 직업이 아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직업이다, 어디서 품위 없게 ‘돈’을 말하는가, 월급을 적게 받아도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교육자인데 월급 받기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교사는 모름지기 가르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줘야 하는 것이다, 월급이라는 것은 그에 대한 부록으로 따라오는 것이지 그 목적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생각이 일부 교사와 교사 지망생, 교사가 아닌 사람들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위와 같은 직업의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교사도 엄연한 직장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또한 교사 내부와 외부에서 교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뀌었다.  


  나는 지금까지 육아휴직을 7년 했다. 5년 휴직하고 복직해서 잠깐 다니다 다시 2년 동안 휴직을 했다. 2년의 휴직을 마치고 올해 복직했다. 복직을 하면서 좋은 것 중에 하나가 월급을 받는 것이다. 복직 후 첫 월급을 받으면 어떻게 쓸 것인지 이미 몇 달 전부터 계획을 세워놓았다. 이리저리 쪼개어 보낼 곳을 적어놓고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나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짠순이다. 그런 짠순이답게 저축과 투자에 ‘몰빵’한다. 한 달 동안 고생해서 번 돈인데 허투루 쓸 수는 없다. 소비는 나의 ‘월급 보낼 곳 목록’ 우선순위에 있지 않다. 대략 6위 내지는 7위에 해당한다. 나의 작고 귀여운 월급은 적금, 퇴직을 위한 장기저축, 주택청약종합저축, 연금저축(주식형), IRP, ISA, 미국주식 등으로 잘게 쪼개어져 보내진다. 울트라파워 J답게 계획하는 것이 즐겁고 차곡차곡 저축하는 것이 매우 뿌듯하다. 어차피 지난 육아휴직 중에 남편의 월급만으로 아이 셋, 5인 가정이 살아왔기에 내 월급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저축에 힘쓴다.   


   일을 하고 월급을 받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사실 나는 이 감사함을 요즘 처음 느낀다. 발령 18년째가 되어서야. 막 발령받았을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닌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월급은 그냥 당연히 받는 것이고 월급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연금이나 건강보험, 세금이 얼마나 떼어져 나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직장은 성인이라면 당연히 다녀야 하는 것이고 월급이 많고 적은 것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냥 정해진 수순대로 교사라는 직장을 얻었고 출근을 했고 월급을 받았다. 그 일련의 과정에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 직장이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곳이라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때 다소 충격이었다. 아, 내가 돈을 벌러 직장을 다니는 거였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기 위해 휴직을 했다. 휴직을 하면서 내 월급이 없어져서 아쉬웠고 내가 어떻게든 벌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주식을 시작했는데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을 때쯤 주식이 대박을 터트렸다(동물들도 돈을 벌었다는 그 시기다). 주식으로 버는 돈에 비하면 월급이 우스웠다. 들어오는지 어쩐지 티도 안 났다. 코로나 폭락을 이겨내고 나니 몇 년 치 월급을 몇 개월 만에 벌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 월급? 선배교사들은 겨우 이거 받으면서 학교 다녔구나, 하는 시건방진 바람이 팽팽하게 들어 있었다. 학교 업무도 하기 싫었다. 이까짓 월급 주면서 별 걸 다 시킨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 자신이 황당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 당시 주식으로 제대로 돈을 번 사람들은 내가 번 돈의 최소 두 배, 세 배는 더 벌었고 많게는 열 배도 넘었다. 까놓고 비교해 보자면 나의 수익은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나중에 제정신으로 돌아와 손익통산을 해보니 주식으로 번 절대 액수가 그렇게 큰돈도 아니었다. 그러다 다시 휴직을 했다. 수입원 2개 중에 하나가 줄었고 주식은 폭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집 첫째는 무용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어 돈을 티슈 뽑아 쓰듯 썼다. 나의  주식계좌는 심각한 손실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결국 나는 고급 중형 수입차 한 대 값을 손절했다. 손실을 확정 짓기까지 너무도 괴로웠다. 돈을 잃는 고통이 이런 것이구나! 2년 동안 남편의 월급이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꼭 필요한 소비만 하는데도 아이 셋 5인 가정의 한 달 생활비는 나를 불안하게 했다. 아이들이 과일을 좋아하는데도 비싼 과일 앞에서 한참 망설였다. 남편과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는 괜찮아~'하면서 아이들이 샤인머스캣 먹는 걸 구경만 한 적도 있다(아니 왜 하필 비싼 과일이 먹고 싶다고 하는 거야). 10만 원이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100만 원이라도 정기적으로 나오는 곳이 있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라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돈에 대해 나는 매우 겸손해졌다. 잘 나갈 때는 못 나갈 때를 대비하여 절제하고, 못 나갈 때는 다시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들었다. 이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물론 투자해서 몇 억씩 버는 것도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투자이고 자본소득이다. 그런데 그전에, 작은 돈도 소중히 해야 한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감사하게 받고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내가 일해서 버는 돈을 절대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여기저기서 얻어터지고 깨지며 겨우 깨닫게 되었다. 


  최근 복직 한 후 맞이하는 첫 월급날을 달력과 다이어리에 동그라미 쳐놓았다. 월급날이 이렇게 설레는 것이구나! 각종 저축과 투자 통장으로 돈을 보내놓고 나면 2,3만 원쯤 남을 것 같다. 그 돈으로 나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떠올려본다. 이 돈을 카페에서 쓴다면, 5천 원짜리 음료를 주문하고 적어도 2,3시간 동안 조용하게 혼자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니면 곧 햇빛이 강해질 테니 선크림을 살까, 조금 더 보태서 학부모총회 및 공개수업 용 오버핏블랙재킷이나 슬림일자와이드슬랙스를 살까. 아니다. 역시 배당주에 투자하는 것이 최고다. 아아, 월급이란 얼마나 좋은 것이냐. 나에게 이렇게 즐거운 상상과 선택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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