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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꽃 Sep 17. 2024

내 아이 가르치기는 가능한가

화내지 않고 가르치는 것이 가능한가

  엄마가 선생님이면 아이들이 좋겠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직접 학습지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잘 가르칠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 엄마교사들은 직장에 다니고 집안일을 하는 것만 해도 쓰러질 지경이다. 그래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자식들에게 시간을 내어 같이 문제집을 풀고 틀린 것을 꼼꼼하게 봐주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 엄마표 영어로 아이가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하게 된 경우를 종종 봤다. 외국 영화를 볼 때 우리말 자막이 있는 게 불편해서 오히려 자막을 끄고 보거나 없는 것만 골라본다는 아이들도 있다. 그럴 땐 솔직히 부럽다. 엄청나게 부럽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이들의 학습지도를 잘하는 엄마가 아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겁다. 퇴근 후 자신의 아이들에게 시간과 노력을 쏟는 선생님들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 그저 놀랍다. 


  나의 경우, 집에 들어오면 밥 차리기와 부엌일부터 한다.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후로는 최소한 1시간은 운동을 위해 확보하려고 간단하게 집안을 정리하고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로 간다. 운동 후 집에 와서 재빠르게 샤워하고 밥을 차린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일을 하려고 한다. ‘한다’가 아니라 ‘하려고 한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딱히 ‘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안일하다 보면 금방 8시, 9시가 된다. 통으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 채 안 된다. 이 소중한 시간을 아이들 공부를 돕는 용도로 쓰고 싶지가 않다. 내가 너무 이기적인 엄마인가? 엄마답지 못한가? 그래도 상관없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도 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다. 각자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느냐가 다르겠지만 일단 나에게 아이들의 공부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자기들이 할 일이지. 수학문제집 채점을 하고 틀린 것을 봐주는 등 하기는 한다. 새롭고 어려운 내용을 조금씩 가르쳐 주기는 하지만 일단 ‘네가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이 기본이다. 


  나를 위한 시간을 할애하여 아이에게 수학문제를 설명해 주는데 못 알아듣는다? 하아……. 슬슬 짜증과 화가 올라온다. 나의 인내심은 매우 미천하기 때문에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내 입에서 해서는 안 될 말들이 나온다. 수학문제 푸느라 서로 기분 상하느니 차라리 내 할 일이나 제대로 하는 것이 낫지. 게다가 아이들이 엄마가 애쓰는 것에 고마운 마음을 가질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엄마가 바쁜 시간을 쪼개어 피곤해도 나의 공부를 가르쳐준다고 생각할까? 아닐 것 같다. 공부가 더 하기 싫어질 수도 있고 엄마가 싫어질 수도 있다. 둘 다 싫어지거나. 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 거의 항상 화를 낸다. 아이 학습지도를 꾸준히 하는 엄마들을 보면 정말 궁금하다.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만약 화내지 않고 가르친다면 정말 존경스럽다(이 경우 아이가 한 번 설명하면 척 알아듣는 경우일 확률일 높다고 보기는 하지만). 


   아이들 공부에 내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깝기도 하지만 내가 내 아이들에게 수학이나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다. 내 자식을 가르친다는 것은 매 순간이 인내심 테스트다. 기본적인 것이고 분명히 어렵지 않은 개념인데 몇 번을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 못할 때 가슴은 답답해지고 얼굴은 뜨거워진다. 솔직히 말해 공부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아이는 한 번 설명하면 알아듣는다. 최소한 두세 번 설명하면 다 알아듣는다. 화를 낼 단계까지 가지 않는다. 몇 번을 설명해 줘도 엉뚱한 소리만 하면 ‘미치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아니 왜 이걸 못 알아 듣냐고오오오오. 보통은 '엄마가 똑똑한 머리를 물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나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며 한탄하다가 결국 화살은 남편에게 돌아간다. “당신 중학교 때 아이큐 150이었다며? 다 거짓말이지? 어휴, 사기결혼 당했네!” 남편은 중학교 때 자신의 아이큐가 150이었다고 은근히 자랑을 했지만 공부를 그리 잘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공부를 잘하지 못한 이유는 ‘사춘기’라고 한다. 평소에는 그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가 미워진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무척이나 못난 사람이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수학문제를 가르쳐주면서 또 한 번 깨닫는다. 아, 나는 그보다 더 못난 사람이었구나. 


  교대에 다닐 때 나는 자칭타칭 ‘과외의 여왕’이었다. 잘 가르친다는 말도 좀 듣고 소개를 통해 계속 과외를 이어나갔다. 나중에는 들어오는 과외를 다 받을 수가 없어서 거절할 정도였다. 대학생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수업 중에 화를 낸 적도 있긴 있다. 부모님이 힘들게 일하셔서 그 돈으로 비싼 과외비를 내주시는 데 공부를 전혀 하지 않거나 1초 전에 알려준 영어단어 뜻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한숨을 팍팍 쉬거나 열을 뿜어내기도 했다. 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1초 전에 알려준 단어다. 1초 전에 배운 단어를 보면서도 그 뜻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때 나는 충분히 감정을 자제할 수 있었다. 왜냐, 남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보충 학습이 필요한 아이들을 따로 가르치면서도 한숨이 나온 적이 있지만 나는 그들에게 정말로 친절했다. 하지만 내가 내 자식 가르치는 것은 남의 자식을 가르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를 대할 때, 썸 타는 남자와 결혼 15년 된 남자를 대할 때만큼 다르다고 보면 된다. 내 아이가 수학 문제를 아무리 설명해 줘도 못 알아들을 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 적어도 나는 그렇다. 화를 꾹 참는다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참, 앞에서 과외받던 학생이 1초 전에 알려준 영어단어 뜻을 몰라서 탓했다고 했는데, 내 자식은 더 했다. 1초 전에 알려준 한글을 읽지 못하더라. 


  보통 수학을 가르칠 때 이런 상황이 많이 생긴다. 학교에서 20문제로 단원평가를 볼 때 100점을 맞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 내가 낳은 아이들 말이다. 우리 집에 있는 내 아이들은 아주 잘했을 때 두세 개 틀리고, 보통은 서너 개 틀린다. 20문제 중에 10개 틀리는 일도 종종 있다. 내가 담임을 맡은 우리 반 아이들은 보통 다 맞거나 한두 개 틀린다. 대여섯 개 틀리는 애들은 거의 없다. 나랑 공부하고 그다음 날 시험을 봤는데 10개 중에 6개를 틀려온다. 한 번 들으면 딱 알아듣는 애들을 많이 봤는데 왜 내 아이는 그런 아이가 아니란 말인가. 학교에 우수한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하게 된다. 분명히 그 전날 시험 잘 보겠다고 큰 소리 떵떵 쳤는데……! 


  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 교사로서 나는 수학이나 국어 단원평가를 보고 채점을 하면서 솔직히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니, 이런 기본적인 것을 틀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내가 어렵게 설명했나? 5,60점 맞은 아이랑 짧게라도 상담을 해봐야겠다, 수학에서 뭐가 어려운지, 요즘 학교생활이 혹시 힘든지, 등등. 그때는 내 아이가 5,60점 맞는 아이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나 때는 ‘국민’ 학교였지만) 공부하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엄마나 아빠가 교과서 내용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다. 엄마가 수학을 가르쳐줄 때도 있었지만 가끔이었다. 그때 나의 엄마도 내가 설명을 잘 못 알아들으면 크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연필을 쥔 내 손등을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무서워서 연필을 쥘 힘이 없어지며 나는 자꾸 연필을 떨어뜨렸다. 그러면 엄마는 왜 연필도 똑바로 못 쥐냐고 또 화를 냈다. 온 힘을 다해 연필을 쥐고 문제를 풀었다. 그렇게 애써 연필을 잡고 글씨를 쓸 때는 바이킹을 타고 높은 곳에서 내려올 때 느껴지는, 내장이 쑥 빠지는 기분이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화내면서라도 같이 수학공부를 해야 하는가, 그냥 아이들에게 맡기고 모른 척해야 하는가. 이건 아직도 나에게 풀기 힘든 숙제이다. 사실은 이제 아이들이 먼저 피한다. 내가 수학문제 가르쳐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자기들이 못 알아들으면 내가 쉽게 화를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아이에게 수학문제 풀이를 알려주면서 나는 아이에게 심하게 화를 냈다. 그것도 꽤 자주. 너는 왜 이렇게 쉬운 것을 이해하지 못하냐고 크게 소리를 쳤다. 등짝이나 손등을 때리기도 했다. “내가 잘못이다, 아이고 내가 너를 이렇게 낳았으니 내 잘못이다 어휴.” 사실 상당히 순화된 표현으로 적은 것이다. 그렇게 첫째와 한 바탕하고 나면 심하게 우울했다. 


  그래서 둘째나 셋째와는 함께 공부하고 싶지 않다. 첫째에게 화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한 번 실수하면 됐지 두 번, 세 번 실수하고 싶지 않다. 첫째는 초등학생까지는 인터넷강의로 그럭저럭 따라가다가 중학교 들어가서부터는 수학학원에 다닌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옹졸하고 서투른지 알기에, 그로 인해 아이들과 나 자신에게 후회와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화를 내면서 모르는 것을 알려주기보다는 그냥 모른 척하고 잘한다고 응원하는 것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말로 칭찬하는 것은 돈도 들지 않고 아이들과 싸울 필요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열받고 흥분하며 수학공부를 같이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자든가,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읽든가, 부엌 정리를 하는 편이 훨씬 낫다.


  둘째는 비록 국어나 수학 단원평가를 5,60점 맞아 오지만(가끔 80점이나 90점을 맞아올 때도 있긴 있다) 평소에는 성실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동생과 사이좋게 놀고 학원 시간에 맞춰 딱딱 알아서 가방 챙겨 가고 영어나 수학 문제 풀 계획을 수첩에 적어 놓고 실행한다. 맛있는 게 있으면 꼭 내 입에 넣어준다. “엄마, 이거 먹었어요? 먹어봐요.”하면서. 비록 아직도 like라는 단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문장제 수학은 거의 다  틀리지만. 셋째는 초등학교 1학년인데 이 아이는 아직 공부하는 학생 취급하기에는 강아지 또는 고양이에 가깝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그래서 수학 문제를 가르치면서 이제는 화를 내지 않는다,라고 하면 좋겠지만 여전히 화를 낸다. 나도 괴롭다. 아이들 공부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하루에 10분 정도 수학문제 채점은 한다. 영어는 하라고 말만 한다. 그냥 수학 문제 채점이나 하고 지금처럼 내버려 두려고 한다. 공부는 혼자 하는 거라고 굳게 믿고 싶다. 화내면서 가르치고 모녀관계 끝장나느니 모녀 관계 좋고 공부 좀 못 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되뇌어 본다. 이럴 때는 셀프가스라이팅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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