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꽃 Sep 15. 2024

교대에 지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저의 지원 동기는 이렇습니다만

  나는 점수에 맞춰서 교대에 지원했다. 그해 나의 수능점수는 내가 다녔던 교대에 들어가고도 한참 남는 점수였다. 삼수까지 했으니 안정적으로 지원해야 했다. 부모님도 내게 교대에 가면 좋겠다고 권하셨다. 나도 뭐 교대에 가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가 되고 싶다거나 교대에 가고 싶었다는 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교사를 우습게 보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부부교사’였고 내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그러니까 초등학교 선생밖에 못 됐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내가 정말 그랬다고? 혹시 꿈속에서 그런 거 아니야?’싶은 말이다. 하지만 꿈에서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엄마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분이었는가를 알게 됐지만 그때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쨌든 나는 그때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아마 그때 나는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외모는 미스코리아고 학벌은 하버드 정도 되고 직업은 네이버 대표나 신라호텔 사장 정도 될 줄 알았었나 보다. 


  고등학교 때 담임교사와 상담하면서 나는 기자나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담임교사가 “그거 안 되면 어떡할래?”라고 물었다. “그럼 학교 선생님 하죠. 뭐”라고 말했었다. 내 대답에 담임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 되는 것은 쉬운 줄 아냐고 했다. 나는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다고 응수했다. 내가 기자나 아나운서가 되지 못할 것처럼 말했던 담임교사에게 반항하는 의미로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반항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진짜로 기자나 아나운서가 되어 그분 코를 납작하게 해드렸어야 했는데 나는 정말 학교 선생이 되었다. 분명한 것은 나는 학교 선생님을 좀 무시했었다.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것도 내가 다 아는 내용 같았다. 실제로 전혀 그렇지 않았고 내가 공부를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 오만방자한 생각을 했으니 운동장 50바퀴를 돌고 10킬로 덤벨을 50번 들었다 놨다 하라고 하면 군소리 없이 할 것이다.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던 이유 중에 나의 오만함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때 나는 선생님들이 너무 안 돼 보였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예의가 너무 없었다. 선생님들은 열심히 가르치시는데 반 아이들은 엎드려 자거나 떠들었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 치더라도, 몸을 의자에 비스듬하게 기대거나 다리 하나를 의자 위에 올리고 비딱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교사가 그런 태도를 지적하면 ‘어쩌라고’ 같은 표정으로 대충 몸을 고쳐 앉았다. ‘어쩌라고’는 양반이고 ‘아이씨’ 같은 표정을 짓는 아이들도 있었다. 실제 그 말을 내뱉기도 했는데 그때는 내가 다 화가 났다. 한마디로 아이들이 선생님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아무리 수업이 지루해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켜야 할 텐데, 그래도 선생님인데,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이 불쌍했다. 무서운 선생님 앞에서는 태도가 확 변하는 것도 싫었다. 차라리 일관되게 버르장머리 없든가. 사람 봐가면서 저게 뭔가. 내가 교사가 된다면 그런 아이들에게 만만하게 보이고 무시당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더욱 교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저렇게 무시당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정말 선생님은 되고 싶지 않았다. 


  교대에 진학할 당시 나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선생이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몇 년 뒤처졌으니 초등 임용고시만 합격하면 취직 걱정하지 않고 얼마나 좋냐’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셨으리라. 아빠는 내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는데 의사가 될 성적은 안 되자 ‘역시 선생이 최고’라며 교대가기를 권하셨다. 의사는 못 되더라도 최소한 부모님이 하라는 일을 거스르고 싶지는 않았다. 삼수를 한 데다 삼수하는 중에 연애까지 한 나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 몹시 켕겼다. 그래서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라는 뜻을 강하게 밀고 나가지 못했다. 게다가 엄마가 다른 지역 교대로 가지 않고 집에서 교대를 다니면 비용이 적게 들어갈 테니 아껴지는 비용을 고스란히 용돈으로 준다고 하셨다. 용돈을 백만 원 단위로 주겠다는 합리적(?)이고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그 당시에는 위와 같은 이유로 교대에도 가고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생겼던 것 같다. 또래에 비해 내가 시간적으로 뒤처지지 않았나, 하고 부모님과 나 모두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니 '안전제일'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현재 교사는 '안전제일'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긴 고민 없이 집 근처에서 다닐 수 있는 교대에 다닐 것을 결심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게 정말 잘한 건가 싶었다. 그해 남동생도 나와 함께 수능을 보았었다. 부모님은 나보다 수능 점수가 낮았던 남동생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보내주었다. 당시 부모님이 나에게 말씀은 안 하셨지만 두 분의 큰 그림 안에 ‘저 녀석은 딸이니까 결혼해서 애 낳고 직장에 다니려면 교대 가는 게 좋겠지’라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정말 그렇다면 나는 그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최소한 효도는 하고 있는 것이겠지. 


  나의 결정을 뒷받침해 준 이유들이 더 있다. 공무원이 안정적이라고 하니까, 교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나쁜 것 같지는 않으니까, 등이었다. 교대에 지원할 당시와 교대를 다니는 동안, 발령받고 결혼하기 전까지 많이 들은 말이 있다. ‘여자직업으로는 선생이 최고다’, ‘최고의 신붓감’, ‘여교사는 시집 잘 간다’ 등이었다. 내가 정말 교대 가기를 원하나? 선생님이 되고 싶나? 하는 불안과 의심이 들 때마다 ‘여자직업으로 선생이 최고라잖아’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른들이 인정해 주는 직업이니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게 진짜 인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사가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누군가의 계획과 사회의 바람대로 알아서 척척 올바른 선택을 해오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누구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해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불평하고 싶지는 않다. 나이 40이 넘어서까지 누군가를 탓하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결국은 내가 최종 선택을 했기에 이 직업에 아쉬움이 느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 아빠의 권유나 엄마의 유혹이나 다 두려움과 불안에 대한 핑계다. 알 수 없는 미래와 실패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렇다고 내가 교사가 된 것을 크게 후회한다거나 직업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안정적이고 사회적 대우가 크게 나쁜 직업도 아니다(라고 쓰고 싶지만 요즘은 아닌 것 같다). 교사라는 집단은, 특히 여교사라는 집단은 성실성, 책임감, 도덕성, 이 세 가지 영역을 점수로 합산한다면 대한민국 1%라고 생각한다. 지적이고 상식적이며 예의 바른 사람들의 집단이다. 이러한 집단의 일원으로 함께 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 어느 직장이든 힘들지 않은 곳이 없고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집단은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 있더라도 그 강도가 약하고 옆 반이나 동학년에서 만날 확률이 상당히 떨어진다. 회사원인 남편 말을 들어보면 매년 업그레이드되고 진화되는 또라이가 나타나던데 나는 딱히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한다. 어느 집단이나 또라이가 있는데 그곳에 또라이가 없다면 그것은 바로 너!라는 말이 있다. 혹시 내가 그 또라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직장 동료들은 훌륭하다. 종종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런 것이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교사는 분명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아무리 교권이 추락하고 연금도 줄어들고 학부모 민원에 벌벌 떤다고 해도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자부심을 가질만한 가치 있는 일이다. 미약하지만 학생과 학부모에게 영향력도 있으며 우리 반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를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좋아해 준다. 


  가끔 다른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직장인이라면, 아니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하게 된 이유와 이 직업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의미를 찬찬히 살펴본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교사라는 직업은 요즘 어떻게 해석되는지 궁금하다. 내가 교대를 선택했던 나이 20대 초반의 요즘 사람들은 어떤 이유나 동기로 교대에 들어왔는지 알고 싶다. 나처럼 교대를 선택했을까? 당신은 왜 교대에 지원했나요? 

이전 09화 내 아이 가르치기는 가능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