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꽃 Oct 03. 2024

옆 반 선생님과 비교하는 나

비교가 본능일지라도

  복직하고 2년째 되던 해, 학급과 학년 업무를 하면서 실수를 많이 했다. 매뉴얼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대충 했던 것이다. 내가 한 실수들로 같은 학년 선생님들과 학년부장을 번거롭게 했다. 한두 번 그럴 수는 있지만 자꾸 그런 실수가 나오니 스스로도 부끄러웠다. 한두 번이어야 실수지 계속해서 한다면 그건 그냥 그 사람 실력이고 일에 대한 태도가 잘못된 것이다. 


  복직을 한 후 학교에서 하는 업무와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을 보며 ‘굳이 이걸 해야 하나?’ ‘꼭 이렇게 해야 하나?’하고 불만을 품었었다. 요즘 일부 직장인들이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고 한다는데 내가 그랬던 것 같다. 로마에 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고 내 실수로 인해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한다. 그때 나는 여기저기서 실수를 하고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바로잡아야 했다. 그것은 꽤 염치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에 대한 태도도 문제지만 그냥 내가 무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은 옆 반 선생님과 나를 비교하는 일이었다. 옆 반 선생님뿐 아니라 학교 전체 선생님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떠올리며 나는 왜 저들보다 못한 거냐며 좌절했다. 좌절했으면 정신 바짝 차리고 일을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인데 그러지도 않았다. 대신 나는 그들을 시기했다. 거기다 자기 합리화까지 했다. 휴직을 오래 하고 복직해서 그렇다고 내 무능함과 실수에 대해 굳이 이유를 갖다 붙였다. 하지만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나는 학교에서 일도 대충 하고 집에서는 애 셋 육아와 집안일에 허덕이는 1인일 뿐이었다. 


  몇 년 전, 같은 학년의 옆반 선생님을 유심히 지켜봤다. 한 사람을 콕 찍어 지켜본 이유는 그분도 휴직 후 5년 만에 복직했기 때문이다. 일을 잘하나 못 하나, 나보다 잘하나 못하나, 뭐 실수하는 건 없나 촉을 세우고 있었다. 잘한다. 나보다 훨씬 잘하고 차분하다. 나는 실수를 많이 했는데 그분은 그렇지 않았다. 나처럼 불평도 하지 않고 조용히 주어진 일을 했다. 이런 식이라면 내가 5년 휴직해서 일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변명도 할 수 없다. 게다가 나는 나이도 그 선생님보다 많았다. 내 또래 교사들은 부장도 하고 동료들의 신뢰를 받으며 맡은 일을 척척 해내는데 나는 존재감 무(無)에 무슨 일을 맡기기에는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 같았다. 나이만 먹고 일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전 해에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선생님 M을 질투했다. 키도 크고 날씬하고 예쁜데 심지어 집도 부자였다. 물론 성격도 좋고 학교에서 일도 잘했으며 선생님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질투와 비교의 화신인 나는 잘난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든 나보다 못한 점이나 흠집을 찾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M선생님은 깎아내릴만한 게 없었다. M은 나에게도 잘해주었다. 우리 집 땡글이가 발레콩쿠르에 나갈 때 힘내라며 예쁘고 맛있는 초콜릿을 선물해 주었다. 나한테도 잘해주는데 내 딸까지 챙겨주다니!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난 것인가.   


  주변에 보이는 선생님들은 다 지성과 미모를 겸비했다. 나만 빼고. 나는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해서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것 같다. 업무를 할 때는 이걸 왜 하는 건가 싶은 일도 있다. 나는 겨우겨우 읽어보고 물어가며 하는데 옆 반 선생님은 척 보고 딱 해내는 것 같다. 요즘 20대 교사들은 똑똑하게 코딩과 AI까지 활용하고 영어는 기본으로 잘한다. 게다가 그들은 다리도 길다! 나는 학교의 기본적인 업무처리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저절로 쭈구리가 된다. 


  선생님들은 말도 정말 잘한다. 정말 다 하나같이 잘한다. 나도 한 때는 말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목소리 좋다는 말도 가끔 듣고 내 의견을 말할 기회가 오거나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술술 말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들 앞에서는 기가 죽는다. 게다가 나는 남들이 나를 쳐다본다고 생각하면 그 순간부터 갑자기 뒷목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긴장이 된다. 누가 내 그런 모습을 알아챌까 봐 더 긴장이 된다. 그러면 뒷목이 더 덜덜거리게 된다. 그리고 또 더 긴장하게 되고……. 그런데 선생님들은 발음까지 정확하게 조목조목 매끄럽게 말한다. 그런 선생님들을 보며 나는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비록 내 말에 반박하는 말을 할지라도 속으로는 ‘저 사람 말 참 잘하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달 행사, 평가내용과 방법, 학폭 업무 매뉴얼 등을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전달한다. 그 모습이 부럽고 신기하다. 동시에 나는 더욱 주눅이 들었다.   


  일 많이 한다고 월급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승진할 것도 아니면서 괜히 학교일에 시간과 노력을 쓸 필요가 없다, 고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유능한 선생님들 사이에서 내 모습이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우리 반 아이들이랑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니냐고 위안을 삼아보려 하지만, 옆 반 선생님은 아이들이랑 알콩달콩 더 잘 지내는 것 같다.   


  이렇게 위축될 때면 나는 정치인들을 떠올린다. 신문에 자주 나오는 정치인들을 보면 명백한 잘못을 해놓고도 아주 떳떳하지 않은가. 신문, 방송, SNS에 부정적인 기사가 뜨고 비판이 드세도 멀쩡하게 잘만 다닌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것 같다. 이럴 땐 그런 분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최소한 나는 못하는 일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더 잘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니 정치인들의 ‘당당함’을 본받아 스스로 너무 깎아내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너무 위축될 필요가 없다!


  인간이기에 비교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보기에 완벽한 사람들도 다 비교를 하고 있었다. 힙한 MZ 대표 이슬아 작가는 나는 왜 김연아가 아닌가를 한탄했다. 누가 봐도 성공한 뮤지션이고 무려 서울대를 나온 장기하도 턱선이나 허리의 군살 같은 것으로 남과 자신을 5분 주기로 비교한다고 했다. 내가 요즘 자주 보는 젊고 영어도 잘하고 돈도 많이 버는 회사에 다녔던 한 일본인 유튜버는 자신은 왜 남들처럼 완벽하지 못하냐고 비교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다들 완벽해 보이는구만.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는 일이 신기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음... 저들도 비교하는데 나야 뭐...' 그러고 보면 송혜교도 비교하려고 치면 한없이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어리고 예쁘고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계속 나오지 않는가. 한소희나 김고은 같은. 이러한 원리를 대입해 보면 비교하고 비교당할 사람들을 끝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이미 멋지고 남부러울 거 없는 사람들이 속으로는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별로 보기 좋지는 않다. '너도 별 수 없구나' 하며 안심과 위로를 얻기도 하지만 남하고 비교할 필요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왜 저러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그러면서 나 자신도 돌아본다. 나를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하고 주눅 들어 있는 나는 어떤가? 역시 보기 좋지 않다. 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 저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으냐 싶다. 


   정신승리를 하든 뭘 하든 자신을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괴롭힐 필요는 없다. 실제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났다고 해도 괴로워할 시간에 업무파악을 더 하든지, 수업준비를 더 하든지, 아니면 재테크 공부를 하면 된다. 시간 아깝게 비교로 인해 괴로워할 게 아니라 뭐라도 해야 될 것 같다. 뭘 하지 않더라도 귀한 시간을 남과 비교하는데 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다. 낮잠을 자는 것이 백배 낫다.  


  비교는 본능이다. 안 할 수는 없다. 대신 심하게는 하지 않고 잠깐만 하겠다. 생각할수록 시간이 아깝다. 매일 옆 반 선생님만 부러워할 수는 없지 않나. 오늘 나를 바라보는 우리 반 아이와 눈을 맞추고 한 시간이라도 재밌게 수업을 해보자. 주어진 업무를 찬찬히 파악해서 정확하게 하자. 너무 잘하려고도 하지 말고. 말이 쉽지 막상 실천하기는 어렵다. 아마 나도 5분 후에 다시 똑같은 생각을 곱씹으며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해봐야지. 차근차근, 하나씩, 하나씩.      




작가의 이전글 제시카와 라이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