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통증
내가 세수하는 뒷모습을 보고 엄마가 말했다. “이제는 무릎 구부리고 세수 안 하네?” “응, 이제는 안 그래. 매년 좋아지고 있어.”
십 년 전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허리를 크게 다쳤다. 졸업하고 첫해엔 허리 복대를 차고 아동미술 학원에서 강사 일을 했다. 세상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태어나 처음 알게 됐다. 죽고 싶다고 말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죽고 싶다고 되뇌며 잠을 잤다. 아이들을 가리키고 나면 진이 다 빠져 집에 오자마자 쥐 죽은 듯이 잠을 잤다.
흔들리는 전철을 타면 허리가 무너질 것 같아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유명하다는 병원을 여러 군데 다녀봤지만 별다른 수는 없었다. 애초에 병원의 잘못된 조처로 악화된 허리 통증이었기에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었다. 그러다 허리에 대해 공부하며 관련 자료를 숱하게 찾아보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을 수 없었다.
3년 동안 도수치료 센터를 내원하며 유튜브나 인터넷을 검색하고 운동 치료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환자가 곧 나이니 스스로 이 운동법이 맞나 실험해 보기도 좋았다. 검증되지 않은 운동 요법을 시도해 보다가 허리가 더 안 좋아질 때도 종종 있었다. 분명 척추가 뒤틀려 있긴 한데 워낙 안쪽 근육이라 손댈 수도 없고 잘못 건드리면 차디찬 바늘이 허리 신경을 찌르는 고통이 오니 늘 허리 어딘가 뒤틀린 기분으로 생활했다. 한창 사회에 나가 열정을 쏟아부을 나이에 할머니처럼 건강 관련 블로그만 보니 우울증은 기본이었고 상실감은 덤이었다.
심심할 때마다 인체 해부 그림을 보곤 했는데 어느 날 허리와 골반 주변으로 미세한 근육들이 붙어있는 게 마치 인체 조소를 연상케 했다. 인체 조소를 하기 전에는 석고와 두꺼운 철로 인체 골격과 유사하게 만들어 놓는다. 골반 역할을 하는 중심부를 가느다란 철끈으로 단단히 감은 다음 바로 끈을 덧대어 가슴과 팔 머리 순으로 철을 감아 나아 간다. 조소하는 사람마다 순서나 방법은 다양하지만 중요한 건 골반에 많은 양의 철이나 석고를 붙이는 데 있다. 순간 허리가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 결국 골반에서 비롯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통증의 원인이 허리가 아니라 골반이었던 거다.
손으로도 지압하기 힘든 이 골반 주위 근육들을 어떻게 다 펴 주고 이완시킬지 생각해 보았다. 엎드린 채 벽에 두 발바닥을 맞대어 두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다리를 조금씩 벌렸다. 발레리나가 스트레칭할 때 다리 찢기 하듯이.
그렇게 며칠을 했나. 도수 치료사 선생님의 감탄사와 함께 나는 도수치료를 중단했다. 치료사님이 아무리 내 허리 통증을 많이 낫게 해 주었다 하나 그동안 병원비로 날린 돈 때문에 난 고마움과 배신감이 뒤섞인 감정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혼자 공부해 보지 않았다면 평생 병원 신세를 지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간단히 다리 찢기만 잘해도 그렇게 다달이 몇십만 원씩 지출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다. 집에서 가벼운 체조와 함께 아침저녁으로 다리 찢기를 계속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늦어도 육 개월이면 180도로 필 수 있었겠지만 나는 다리를 찢는데 1년이 좀 넘게 걸렸다. 그렇게 병원 손을 떠나고 6년째 내 허리 건강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언니가 임신하고 허리가 많이 안 좋았는데 회사에서 일을 하다 허리 통증으로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은 적이 있었다. 다른 직원의 도움으로 바로 집에 오게 됐다. 보통은 병원에 갔겠지만 집으로 언니를 오게 한 뒤 병원 다니며 알음알음 익혔던 지압을 언니에게 정성스럽게 해 주었다. 내 허리 사정을 옆에서 줄곧 봐왔던 언니는 군말 없이 집에 와서 나에게 치료받았다. 일주일 뒤에 그렇게 언니는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했다. 이때 언니 상태는 꽤 심각했다. 허리가 왼쪽으로 많이 쏠렸다. 몸은 자연적으로 위험에 방어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척추 안에 관절액이 나오지 않도록 척추 주변 근육을 일시적으로 경직시키는데 이때 반동 작용으로 몸이 왼쪽으로 쏠린다. 인터넷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다.
3년 동안 도수 치료를 받고 돈을 날린 게 아니라 3년 동안 도수 치료 과정 수업을 들었다는 기분이 새삼 들었다. 그러고 보니 딱 서당 개 3년이다. 어깨너머로 익힌 기술이 제일 빛을 발할 때는 단연 명절이다. 명절 쇠고 엄마 몸이 돌처럼 굳어지면 지압으로 늘 엄마 몸을 풀어준다. 내 인생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통증으로 얻은 기술이 효도 상품이 된다니.
지금 내 또래는 허리 통증을 슬슬 겪기 시작한다. 병원에 다니는 모습도 보고 통증 주사를 맞으며 버티는 것을 본다. 그렇다고 허리 통증을 앓는 사람에게 굳이 내 운동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의사 말 믿지 말고 나를 믿으라는 거니 충분히 돌팔이 같아 보일 테니까. 뭔가 초능력을 숨기고 사는 엑스맨이 된 기분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한 일본 여성이 다리 찢기로 건강을 찾았다는 운동 서적을 서점에서 본 적이 있다. “내 운동법이 아예 신빙성 없는 건 아니었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삼십 대 중반 내 인생에서 가장 속도를 내는 시점이다. 많은 것들을 만회하고 싶다. 예전엔 남들보다 뒤처지는 듯해서 몸과 마음이 뒤틀린 채로 살아왔다. 그 지난 시간을 떠올릴 때마다 이십 대의 내가 우울한 얼굴로 거울을 보며 열등감을 꾸역꾸역 삼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생각난다. 지난 명절날 본가에 온 두 살 조카를 번쩍 안아 거울을 봤다. 굉장히 좋아하는 순간인데 이러면 조카의 따뜻한 체온도 느끼면서 조카 얼굴도 자세히 볼 수 있어서다. 사랑으로 가득한 두 얼굴이 거울 속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