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열등감은
엄마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여러 번 기워 입은 옷을 입고 다녔는데 어느 날은 옷에 구멍이 난지도 모르고 다니다 친구들에게 놀림받았댔다.
내 자식들은 그렇게 키우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셨는지 우리 삼 남매는 어린 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예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다녔다.
최근에 밑창이 덜렁거리는 신발을 신고 엄마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유독 전신을 명품으로 휘감은 여성 두 분과 탔는데 내 낯빛이 뜨거울 정도로 엄마가 내 덜렁거리는 신발을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신발 밑창이 돼지 본드로 단단히 붙여 있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개인이 가진 열등감이 어떤 식으로든 느껴진다. 크게 나이, 학력, 돈, 경력 등에서 오는 열등감인데 20대의 내 열등감은
경력이었다. 원하는 직업을 갖지 못해 오는 괴리감이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지만 내 작업 스타일을 나도 모르는데 누군가 써줄 리는 없지 않은가. 갈피를 못 잡고 그림스타일을 해마다 바꿨고 아동미술학원 강사 연차는 계속 쌓였다. 다행히 그림에 대한 실험 정신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요기 나게 쓰였고 아동미술 외부 특강 요청이나 아동미술 관련 작화 외주가 들어왔다. 한때는 아동미술 일이 천직일 거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자기 인지 부조화라 했던가.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고 내 나이는 어느덧 앞자리가 3으로 바뀌었다. 나는 아동 미술 업계에 담겨 있던 발을 모조리 빼고 영어 학원 강사 일을 하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가정의 달 행사로 에코백 만들기 수업 의뢰가 들어왔었지만 그마저 거절했다. 당장 며칠 후에 영어 시험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시험이 없어도 몸이 힘들어서 못 했을 것 같다.
20대의 열등감은 해결됐을까? 작업 스타일을 고민한 지 딱 십 년이 되고 내가 원하던 작업물이 나왔다. 아이패드로 상상하는 이미지를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실력과 주제의 균일성을 갖게 되자 디지털 문방구 업체에 입점 제안을 받아 판매 상품을 준비 중이다. 제안받은 지 일 년이 되도록 상품이 준비가 안 된 건 안 비밀이다.
입점 제안이 갑작스러웠는데 생각해 보니 입점 업체와 나는 작년 겨울 일러스트 페어에 같이 참여했었다. 심지어 부스에 있던 직원에게 커피숖이 어디 있냐고 묻기까지 했던 기억이 문득 스치기도 했는데 인연이 참 재미있지 않은가.
20대의 열등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30대의 열등감이 그 빈자리를 메꿨다.
고백컨데 하루라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져도 나는 4시간 도 그림 그리는 걸 힘들어한다. 그건 학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토론 수업과 교양 수업 외에 내 작업시간은 많아봤자 5시간이기에 내가 꽤 미술에 헌신한다고 단정 짓기 쉬웠다.
작가들은 아침에 눈 뜨고 잘 때까지 그림을 그려도 질려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봤다. 하루 16시간을 작업한다는 작가 인터뷰를 보고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10시간 넘게 해도 질려하지 않았던 게 뭘까?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지만 영어발음이 좋다는 소리도 들었다. 지금도 영어를 가르쳐 보면 해외에 살지 않았는데도 유독 잘 따라오는 친구들이 있다. 몇 년 전 미술학원 사업을 접고 유튜브를 네 편 정도 찍어 올리면서 영어로 자막을 번역하여 올렸다. 그 과정이 재미있던 터에 영상 번역 공부를 시작했지만 번역가의 생활리듬이 나에게 영 맞지 않았다.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미술 수업을 하고 나면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어깨를 많이 써선지 어깨와 허리가 욱신 욱신 했는데 영어 수업을 목 아프게 하고 와도 전처럼 체력이 방전되는 기분은 느끼지 않는다. 집에 와서도 영어책을 뒤적거리는 걸 보면 하루 8시간 이상은 영어에 매여 있어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구나를 체감한다.
중학교 내신관리가 누워서 떡먹기였던 내 시절과 달리 제법 높아진 시험 난이도에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다. 수업준비를 하면서 유야무야 인지했던 영어 문법을 다시 곱씹어 보게 되니 내 영어 실력도 단단해지는 것 같다.
미술전공으로 유학했다는 이력뿐이니 독학사와 학점은행제로 영어학사를 취득하고 있다. 9월 말이면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을 정도의 학점을 만들 수 있다.
4월 말부터 준비해 8월 초까지 14과목 시험을 봤고 9월에 2번의 과제와 6과목의 시험을 남겨 두고 있다. 항상 시험 보기 일주일 전은 성대가 부어서 응급실과 이비인후과를 가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살만하다.
30대의 열등감이 학력이 될 줄은 또 몰랐다. 학사 점수를 취득하는 시일이 가까워 오니 열등감이 그런대로 수그러들어 가고 있다.
30대의 열등감은 뭐랄까. 20대의 열등감에 비해 고상하다. 자괴감을 느낄 때마다 운동을 하거나 화장품이나 옷을 산다. 계속되는 시험에 어두울 만도 한 낯빛은 정샘물 쿠션에 힘입어 반질반질하다.
어찌 됐건 제2의 인생을 위한 도전이기에 응급실과 병원에 오랜만에 자주 드나들고 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어려운 시험들을 빨리 일단락해 두어야지 몸이 너무 힘들다.
미술로 허리를 잃었다면 영어로 목을 잃어가고 있지만 아무 목표가 없던 시절을 겪어봤기에 열등감이라도 있어야 삶의 이유라도 생기는 것 같아 몸이 힘들지 마음이 딱히 힘들지 않다.
나를 집어삼킬 것 같던 위태한 감정이 내 존재의 이유가 되다니 시간을 버텨낸 자의 보너스 같다. 최근에 엄마가 시험 끝난 기념으로 립스틱을 사 줬다. 고르긴 내가 골랐지만 내 피부톤과 찰떡인 립스틱을 골라서인지 바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당장 공부하러 스터디 카페에 가야 하는데 놀러 가는 착각을 갖게 해 주니 안타까운 정신 승리다.
곧 엄마 생신이 온다. 화장품을 사드릴까 했는데 옷을 선물해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