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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Nov 01. 2023

정원아 밥 먹어

가장 최초의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미술 치료사님이 말씀했다. 아니 최초의 나쁜 기억이었던가. 엄마가 링거를 맞고 누워있었고 나는 도시락을 챙겨달라며 빈 도시락을 들고 엄마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나는 4~5살이었고 울고 있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게 내 일상이었으니까.


치료사님은 생존과 직결되는 부분이 채워지지 않았군요라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엄마는 남동생을 막 낳았고 아빠는 일로 바빴다. 언니는 사립 유치원에서 저녁까지 먹고 오지만 나는 미술학원이라는 간판을 단 어린이집에서 무척 허기진 채로 집에 오곤 했다. 내가 도시락을 안 가져올 때마다 하얀 빵을 나눠주던 같은 반 여자아이 얼굴이 지금까지 기억이 난다.


집이 가난했던 게 아니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난 시점부터 사업이 잘됐으니까. 짐작컨대 엄마가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가 밥 달라는 소리에도 머리에 손만 얹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주양육자인 엄마는 셋째를 돌보랴 아빠 일을 돕느라 늘 정신없이 바빴고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나는 종종 끼니를 걸렀다. 동네 아파트 단지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옮긴 뒤에는 상황이 좋아졌다. 어린이집에 제일 먼저 도착하면 선생님 가족들이 먹고 떠난 밥상에서 밥에 김을 싸서 한 그릇 뚝딱하곤 했다. 다소 이른 시간에 어린이집에 왔던 터라 밥을 다 먹고 어린이집 미끄럼틀을 타면 아이들이 하나둘씩 왔다. 어린 시절 기억은 거의 희미한데 밥을 챙겨주웠던 친구 엄마, 선생님, 그리고 친구 얼굴과 그 상황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아마 죽기 전에 사진을 보여주며 누구냐고 물어봐도 바로 고를 수 있을 정도로.


차라리 언니처럼 사립유치원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내면 이런 기억들은 없었을 텐데. 굳이 이런 기억들을 갖게 해 주었는지. 막 넘긴 맥주가 목에서 유난히 따갑게 넘어간다.


어렸을 때보다 삼십이 넘은 딸 밥걱정이 한창인 부모님은 밥 잘 먹고 있는지 전화를 자주 하신다. 빵순이한테 빵 좀 사 먹지 말라는 아빠의 말은 가혹 하지만 밥 먹으라는 말이 꼭 사랑해 딸이라고 하는 거 같아 괜한 걱정이 듣기 좋다.  

오랜만에 집에서 음식을 해 먹었다. 엄마가 준 장조림은 다 쉬었고 잡곡밥인 줄 알았던 밥은 약밥이고 국은 너무 달고 설거지거리는 쌓였다. 결국 약밥에 계란 프라이와 김치를 먹었다. 프라이팬이 다 탔는데 어떻게 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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