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약속이 없다

by 정원

토요일 점심 영어 선생님이 수업 끝나고 뭐 하냐는 질문에 갑자기 우울해졌다. 갑자기 우울해진 탓에 표정관리를 하느라 혼났다.


평일엔 눈뜨자마자 수업준비를 하고 학원에 출근하고 마치자마자 교육봉사를 하러 간다. 집에 돌아와서 인강을 들으면 정신없이 하루가 끝난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에는 교촌치킨 반마리를 시켜서 맥주를 마시고 힘들었던 1주일을 마무리한다. 여기까진 괜찮다. 토요일 영어 회화 수업이 끝나면 내 스케줄은 허공에 떠 있는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가야 할 곳이 있는데 감사할 뿐이다. 영어 모임이 끝나면 갑자기 많아진 시간에 공허함이 물밀듯 밀려온다. 예전처럼 교보문고를 들리고 전시회를 가는 것보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만나 웃고 떠들고 싶다. 나이를 먹으면 수다스러워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실감하게 된다.


지금 다니는 영어학원에 비슷한 또래의 싱글 여성이 나포함 3명인데 친해졌으면 좋겠다. 오늘 서로 처음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길게 얘기했는데 오고 가는 정이 좋았다. 성격도 서로 수더분하고 잔잔한 느낌이 든다.


주말에 날이 추워서 부모님 집에 안 가려고 했는데 너무 외로워서 추위를 뚫고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가는 동안 습관처럼 천일문 문법책을 꺼내 한 챕터를 풀자 부천에 도착했다. 엄마를 만나서 오늘 영어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얘기했다. 80년대 생들의 반이 미혼이라면서 다들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건지 대형 쇼핑몰에는 싱글이 없다.


늦은 점심을 엄마와 먹었다. 음식이 나오면 엄마 그릇과 수저부터 챙기게 된다. 메뉴도 엄마에게 속 불편한 건 없는지 생각하게 된다. 엄마는 내 삶이라는 땅에 정박하기 위한 유일한 닻 같다. 집에 오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푹 잤다. 자고 일어나서 부모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씻었다. 편안함을 느끼면서도 이 내 마음 한편은 이 소소한 일상에 유통기한이 얼마 남아있지 않을 거 같아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수건에서 아빠 발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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