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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미 Apr 19. 2020

다큐 장인이 드라마를 만들면? 내셔널지오그래픽 <마스>

2016, 2018 내셔널지오그래픽 6부작 드라마

*스포일러 있음

*<마션> 아님 주의


[셀링포인트]


SF 드라마에 설득력을 부여해주는 다큐멘터리를 접목하다

일단 형식이 신선하다. 드라마와 다큐의 결합. 2033년, 화성에 정착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탐험대에 대한 드라마와 2016년 기준 화성 도시를 세우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실제 프로젝트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병치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 모래폭풍이 불어와 위험이 고조되었다면 다음 장면에서 화성 모래폭풍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과 실험 등을 보여준다. 혹은 다큐에서 화성 생명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면 드라마에서 미생물학 박사인 인물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식이다. 너무 작위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꽤나 스무스하게 연결을 잘했다.



특히 시즌1은 정말 좋았다. 화성 이주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착할 것인지 디테일하게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게 당연하다. 화성의 기후나 지형 등의 기본적인 정보부터 의료 시스템 구축, 온실 설계, 생명체의 흔적 연구까지. 일련의 과정은 스페이스 X나 NASA에서 현재 관심을 가지고 진행 중인 사안이므로 다큐 파트를 보고 나면 이야기 자체가 더 와 닿는다.


대원들이 화성에 적응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남극 기지를 많이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화성은 선례가 없으므로. 아마 드라마 구성에도 남극에서의 경험을 많이 참조했을 것 같다. '위험한 미지 세계 정착'이라는 맥락만 가지고 스토리라인이 비슷한 사례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학적 정보도 좋지만 어린아이의 공상 같은 화성 이주를 현실로 이뤄내기 위해 간절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신의 한 수다. 누구보다 진지한 그들의 진심을 보고 나면 드라마를 대하는 자세부터 고쳐 먹게 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켜 주니까."라는 라라랜드의 명대사처럼.


다큐와 함께 하는 순간 SF의 묘미가 극대화된다. SF는 판타지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down-to-earth 장르다. 미래도시니, 화성이니, 외계인이니... SF 하면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걸 다큐로 뒷받침해준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제작 드라마라 자신들의 장점을 살렸다. 



모든 선택에는 명과 암이 공존한다는 태도

새로운 세계를 그리는 드라마에서 명백한 선악을 나누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화성에서 물을 얻기 위해 기업 쪽 캡틴은 빠르고 쉬운 방법을 택한다. 지하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 결과 물은 얻었지만 곧 지진이 일어나 기지가 다 무너지고 아끼던 대원들이 죽는다. 기업의 목표지향적 태도가 초래하는 명과 암을 동시에 보여줘 미묘한 느낌이 든다.


지구에서는 국제기구와 절대 권력을 쥔 대기업이 대립각을 세운다. 화성 역시 처음에는 두 세력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듯했으나 여러 위험 상황을 함께 겪으며 서로를 위해 울어주는 사이가 된다. <공동 경비구역 JSA>로 대표되는, 이념을 걷어낸 인간적인 우정을 보여준다. 결국 드라마는 인류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선한 가치를 공유해야 함을 드러낸다. 우리가 잠시 빌린 지구와 우주를 위해. 



[개선점]

드라마에 몰입하자 방해꾼이 된 다큐멘터리

문제는 시즌2다. 본격적으로 드라마가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화성에 새로운 개척팀이 도착하면서 자연 vs 인간에서 인간 vs 인간으로 갈등 구도가 전환한다. 순수한 사명감으로 온 과학자들과 이윤을 목적으로 따라온 기업인들 간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또 아멜리가 임신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아이를 화성에서 출산하게 되면 지구의 중력을 버티지 못해 영원히 화성에 살아야 한다. 그야말로 신인류의 탄생을 눈 앞에 둔 것이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불쑥 다큐가 튀어나오니 짜증이 났다. '60초 후에 공개합니다'도 아니고 말이지. 드라마 인물들에 정이 들기 시작하자 다큐는 맥-cutter로 전락했다.


과학자의 신념이나 무력감 같은 부분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은 달려 간 끝에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일 것이다. 미지에 대한 탐험 욕구는 본능이지만 노력을 들인 만큼 보상을 바라는 것 또한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수개월 째 아무런 생명의 징조도 발견하지 못한 미생물학자의 절망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다큐 파트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남극의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 아예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몰입이 확 깨졌다. 팩트체크가 아닌 부분은 드라마 속에서 녹여내야 몰입도가 높아진다.


그렇다고 시즌1만 다큐와 결합하고 시즌2부터는 드라마만 보여주는 것도 일관성이 없어 이상하다. 시즌2에서 드라마의 비중을 훨씬 늘리되 중요한 순간을 끊어먹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듯하다.


아직 한국 드라마에서 성공한 케이스가 없는 페이크 다큐, 모큐멘터리 형식의 드라마로 시도해봄직 하다는 생각도 한다. 다소 교육방송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드라마성을 강화한다면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장르를 열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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