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랭보 Oct 08. 2021

언제쯤 그만둘 수 있을까

그만두어야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타임> 지 기자를 거쳐 세계적인 여행작가가 된 피코 아이어는 '그만두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음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뭔가가 당신을 수긍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당신이 뭔가에 수긍할 수 없어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불평불만이 아니라 긍정적인 선택이고 인생 여정의 종착역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걸음이다.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 중


올해 직장생활 10년 차가 되었다. 한 공간에서 크게 바뀌지 않는 똑같은 사람들과 꼬박 10년을 보낸 셈이다. 타이트한 예산과 인력운영을 하고 있는 공공기관에 근무하기 때문에 새로운 젊은 피의 유입은 상대적으로 적다. 예전에 사기업 다닐 땐 “신입사원이 조직의 활력”이란 소리도 많이 들었다. 사기업처럼 이직이 잦은 유연한 문화에 속해 있다면 다양한 경력직이 들고나기 때문에 변화도 더 있을 테지만 내가 속한 조직은 매우 잔잔하다. 나쁘게 말하면 침체되어 있다. 젊은 피는 곧 기존의 찐득하고 무거운 피에 흡수되거나 기름처럼 섞이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게 된다.


나는 그럼  조직의 피에 섞였느냐 묻는다.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있다. 조직에 순응한 듯하다가도 어느 날엔 마음에 불길이 일어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10 전과 차이가 있다면 그때의 나는 꿈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꿈을 잃은 대신 삶의 무게를   체감하게 됐다. 밥벌이는 고단하지만 밥그릇의 무게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그릇의 밥을 먹어야 이곳을 떠날  있을까.


조직생활을 하면서 반쪽짜리의 나로 사는 게 너무 익숙해졌다. 사람이 매 순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나? 그 괴리를 무슨 큰 거짓이라 생각했던 어린날의 나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났다. 회사 안에서의 나의 인격과 실제의 나 간의 괴리가 심해질수록 삶의 만족도는 떨어진다고 여겼나 보다. 그런데 이게 10년이 넘다 보니 이마저도 익숙해졌다.


10년 정도 한 곳에서 큰 탈 없이 매일을  출근하고 살았으니 이제는 졸업을 좀 하고 싶다. 또래들이 육아휴직이다 해서 잠시 쉼표를 찍지만 그렇다고 별로 내키지도 않고 하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결혼을, 육아를 생각할 수도 없다. 매일은 그래도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살아내고 있지만, 그 바쁨 속에서도 삶이 너무나 지루하다. 십 년 뒤 이 십 년 뒤? 이 조직에서 인정받고 유능한 선배 직원을 보면 한숨이 난다. 물론 인격적으로도 능력으로도 빠지지 않는 이들이지만, 그들처럼 사는 삶이 썩 흥미롭지도 내키지도 않는다.


더 재밌는 일이 어딘 가에 있지 않을까. 일 안 하고 노는 건 내 취향은 아니기에 요새 유행한다는 파이어 족이 되고 싶진 않다. 그냥 의미 없는 일, 삶을 성장시키지 않는 일을 멈추고 싶다. 누구의 공을 치켜세워주기 위해, 인정받고 싶어서 일하기도 싫다. 나이 들어감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 뭘까? 의미 있는 내 일을 찾아 독립적인 주체가 되는 것인지, 현실에 순응하며 즐기고 사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정답이 있는 문제이겠나. 결국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게 되겠지. 지금 이 순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가려면 지금, 현재에 무엇보다 집중하고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노동의 쓸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