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깨어지는 것도 눈으로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런 날이 있다. 하루 종일 일이 베베 꼬이고, 꼬이다 못해 되는 일이 없는 그런 날 말이다.
어제는 올해 초 큰 맘먹고 맞췄던 값 비싼 안경이 톡 부러졌다. 안경이 휘어져 보여 양쪽 균형을 맞춘답시고 그저 반대쪽으로 살짝 한번 휘어보았을 뿐인데 말이다.
오늘은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핸드폰 액정이 생을 마감했다. 처음엔 전체 화면의 절반이 눈부시게 빛나더니만 얼마 안 가 그 빛을 잃고 아예 꺼져버렸다. 그저 아이가 한번 책상 높이에서 툭하고 떨어트렸을 뿐인데 말이다.
안경도, 핸드폰도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없어서는 안 되는 물건 중 하나가 된 것들이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난시와 원시를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내게 안경은 필수적인 것이고, 멀티가 안 되는 나를 위해 스케줄을 기록해주는 그리고 고요한 집을 음악으로 채워주던 핸드폰도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나와의 연결고리가 툭 끊어져버렸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 내 주위를 서성거리던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쁜 엄마 때문에 잠들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잠투정을 한껏 부리고서야 그리고 엄마의 화난 얼굴에 눈물범벅으로 보답을 해준 뒤에야 잠이 든 아이의 얼굴도.
안경도 핸드폰도 상처를 받으면 깨어지고 부서진 것이 눈에 떡 하고 보이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데, 아이가 내 주위를 서성거리며 부서지고 다치고 있었던 그 순간에는 전혀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이런 날은 마음이 눈에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든다.
'엄마 지금 바빠.'
'아빠랑 가서 놀아'
'잠깐만 기다려 줘'
'엄마 이것만 하면 끝나'
이런 말들을 내뱉을 때마다 아이의 마음이 금이 가고, 멍이 들고, 부서져내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는 절대 그 말들을 아이에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가 상처 받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눈에 띄지 못해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감정이, 바람이, 신이 없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부러진 안경을, 켜지지 않는 핸드폰을 다시 사용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수리점을 찾아가야 하듯이, 다친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도 가능한 한 빨리 서둘러 아이에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내일 아침, 아이가 눈을 뜨면 나의 마음, 아이의 마음을 반드시 말로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엄마가 그렇게 말을 했을 때 아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아이가 어떤 것을 참아냈는지를.
어제오늘 부서져 아쉬웠던 안경보다, 그리고 핸드폰보다 비교할 수도 없이 더 소중하고 예쁜 나의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분명히 이야기해 줄 것이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나에게서 아이가 툭하고 끊어져버리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