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여행 23일차 20240608(토)
* 유럽여행 23일차 20240608(토) 인터라켄(TCS Camping Bönigen Brienzersee)- 루체른(Schweizerischer Camping)
어제 베른 여행을 통해 스위스 사람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나니 스위스 다른 도시들도 궁금해졌다. 그래서 출국을 위해 비엔나로 가는 길에 스위스 도시들을 하나씩 거쳐 가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계획에는 없었던 루체른, 취리히을 하루씩 투어하고 독일 뮌헨을 거쳐서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것으로 일정를 잡았다.
영국 청년과 중국 아주머니들
아침에 일어나보니 캠핑장 바로 옆자리에 육중하고 멋진 모터사이클이 주차해 있었고 건장한 금발 청년이 1인용 텐트를 막 걷어서 정리하고 있었다.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모터사이클을 구경하길래 덩달아 가까이 가서 구경을 해보았다. 모터사이클 주인이 와서 모터사이클에 대해 몇가지 자랑을 하는데 문외한인 나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여행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영국 출신인 이 사나이는 런던에서 출발해서 서유럽을 관통한 후 니스 등을 거쳐 지중해를 가로질러 이스탄불까지 돌아보고 다시 북쪽으로 달려서 여기 스위스 인터라켄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는 모터사이클에 텐트와 간단한 물품만 싣고서 히피족처럼 바람처럼 자유롭게 유럽 전역을 누비고 있었다. 영국인이지만 유럽 전역을 자기 나라처럼 돌아다니는 모습은 오랫동안 섬과 같은 국경에 갇혀 살아온 나에게는 생경한 것이었다. 군인 같은 호연지기가 느껴지는 그를 보며 대영제국 청년들의 스케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크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른 아침 여행에 필요한 식료품을 벌충하러 ALDI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크루아상 1개에 75센트,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싼 편이었다. 이틀 정도 먹을 빵과 요구르트 등을 사서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내 자리에 중국 아주머니 사이클족들이 분주히 텐트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주머니들은 어제 늦게 체크인한 것 같은데 취사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내 자리가 탐났던 것 같다. 규정대로면 12시 이후에 자리를 이동하는 것이 맞았다. 자리를 미리 선점하고 오전부터 사이클링하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작업을 저지하려는 젊은 남자 직원을 서너 명의 아주머니가 에워싸고 한참 이야기하면서 다른 분들은 계속 텐트를 치는 것이었다. 떼로 밀어붙이는 중국인 특유의 습성이랄까?
스위스에서도 떼로 다니며 떠들고 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는 무례한 중국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 기준으로 복장 불량, 두발 불량은 물론이고 호숫가 산책로에서 고성으로 떠들고 담배 피우면서 걸어 다니는 중국 아저씨들이 있었다. 과거 80년대, 90년대 여행 자율화 이후 한국의 아줌마, 아저씨들도 해외에서 비슷했었다. 실은 국내에서 하던 대로 행동한 것일 수도 있는데 해외 나가서 글로벌 매너에 벗어난 행태를 두고 뉴스에서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꼬집던 게 기억난다. 중국인들도 시간이 지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이 올라가면 달라지길 바라본다.
어차피 일찍 떠나려던 참이었고 모두 즐겁게 여행하러 왔으니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간단히 유감 표명을 했더니 사이클 복장으로 '완전 무장한' 중국 아주머니가 "쏘리!"라고 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체크아웃하면서 남자 직원에게도 실수가 있었음을 인지시켜 주었다.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음엔 규정대로 하시길… (어제 오전 11시경 왔을 때 지금은 체크아웃 시간이니 2시 넘어서 오라고 규정대로 했던 나이 드신 깐깐한 중년여성 직원과 대비가 되었다. 한국이나 서양이나 남자들이 좀 무른 것 같다.ㅋ~)
빈사의 사자상을 바라보며
인터라켄을 뒤로한 채 서둘러 루체른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루체른 호숫가에 자리한 '캠핑 리도'에서 묵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캠핑장 체크인 시간이 남아있어 말로만 듣던 '빈사의 사자상'을 먼저 들르기로 했다. 그런데 빈사의 사자상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도로에서 빨간 동그라미 표지판이 '떡하니!' 막아섰다. 문화재 차량통제 구역이었다. 근처 주차장을 찾아 헤매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길거리 주차 슬롯에 주차하기로 했다.
난생처음 하는 '길거리 주차'라 조금 긴장됐다. 주차머신에 동전을 투입했다. 주차머신은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는 듯했다. 넣은 동전대로 확인 버튼을 눌렀더니 40분 주차 가능하다고 나왔다. 탁 적당했다. 급하니 사용할 줄 몰라 피해 왔던 길거리 주차도 하게 되었다. 주차머신이 종류가 다양해서 좀 헷갈리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쓸모 있고 효율적인 시스템인 것 같다. 물론 주차비는 아까웠다.
빈사의 사자상은 생각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 하얀바탕의 암벽에 화살을 맞고, 창과 방패를 깔고 힘없이 죽어가는 사자 상를 깍아 놓았다. 현장에 있는 안내판 내용을 찍어서 AI 앱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관광가이드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요약하자면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시민군에 맞서 루이16세 국왕을 피신시키고 끝까지 궁전을 사수하다 전멸한 스위스 용병의 용맹과 충성을 기념하는 조각상이었다.
스위스는 알프스산맥의 열악한 환경과 사방으로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과 접해 있어 강대국들이 팽창할 때마다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갖고 있는 나라이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중 하나이지만 과거에 평지가 부족한 약소국이었던 스위스 사람들에게 용병은 중요한 생계 수단이었다고 한다. 로마 교황청의 근위대를 맡았던 스위스 용병이 1527년 '로마 약탈' 때 끝까지 싸워 교황을 무사히 피난시킨 사건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요즘으로 치면 후진국 근로자들이 선진국에 취업해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다 장애를 입거나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과 비슷하다 하겠다.
빈사의 사자상은 스위스의 역사를 닮아 있었다. 오늘날의 스위스가 있기까지 희생한 선조를 기념하는 뜻 깊은 조각상이었다. 스위스의 설움과 아픔의 역사가 죽어가는 사자상에 투영되어 그 씁쓸함이 더했다. 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남자로서 그리고 같은 가장으로서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의 용맹함과 책임감에 경의를 표하고 돌아섰다.
루체른 호수공원에서의 휴식
캠핑장 체크인 시간이 아직도 1시간 정도 남아 캠핑장 옆 호숫가에 널찍한 공원(Hundefreilaufwiese)이 있어 주차비를 조금 각오하고 차를 댔다. 여기 주차머신은 신용카드 결제도 가능하고 출력장치까지 있는 비싼(?) 머신이었다. 출력되어 나오는 '유효 마감 시간표'를 차량 앞 와이퍼에 꽂아 잘 식별되게 했다.
"햐~ 이렇게 좋은 공원을 나 혼자 전세 냈구나." 멀리 호수 너머로, 악산으로 유명한 필라투스산(험악한 산세로 예수를 내어준 '본디오 빌라도'의 이름에서 따옴)이 험준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고 바로 앞 호수에는 보트들이 잔물결에 춤을 추고 있었다. 푸른 풀밭 따라 아름드리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웠고 여기 앉아 쉬어 가라고 벤치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공원 안내판을 자세히 보니 한쪽은 반려견을 위한 공원이고 그 옆 구역이 사람들이 쉬는 곳으로 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개 2마리가 신나게 견주들과 함께 뛰어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람 쉬는 곳보다 2배는 더 넓은 구역을 개들에게 할애하고 사람은 한쪽 좁은 곳에서 쉬다니. '옳지 않아!' 속으로 말했지만, 한국도 머지 않아 이런 공원이 보편화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사람이 쉬는 구역에 돗자리를 깔고 참새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푹 쉴수 있었다.
캠핑 리도 (Schweizerischer Camping)
체크인 시간이 다가오자 슬슬 하늘이 무거워지더니 이내 비가 오기 시작했다.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호우로 변했다. 너무 친절하다 못해 느린(?) 여직원에게 비가 오니 나무 밑 자리가 좋겠다고 했더니 큰 나무가 있는 자리로 배정해 주었다. 자리만 잡고 다시 시티투어를 갈 생각이었는데 거센 비에 마음을 접고 캠핑장에서 그냥 쉬기로 했다.
빗속에서도 주말이고 시내에서 가까운 캠핑장이어선지 계속해서 캠핑카들이 밀려들었다. 이곳 날씨는 요상했다. 산악지형이어선지 금방 비가 쏟아졌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빛이 나기를 반복했다. 비가 개어서야 큰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오늘 밤 호우를 잘 견뎌주길 바라며 텐트를 쳤다.
저녁 식사 후에도 해가 지지 않고 밖은 훤했다. 조용한 루체른 호숫가를 따라 그곳 시민들처럼 호젓한 저녁 산책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