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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10. 2023

툭하면 얼굴 빨개지는 내향인이 강사가 된 비결

처음은 우선 질러야 함


현재 나는 책 쓰기와 강의를 함께하고 있다. 5년 전만 해도 나는 방송 글 뒤에 숨어 살았으며 얼굴을 내비치는 것,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일을 극도로 꺼리던 사람이었다. 잠깐 콘텐츠 회사에 다녔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고객사 앞에서 PT를 해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20분 남짓 발표를 끝내고 너무 긴장했던 나머지 화장실로 달려가서 토를 하기도 했다. 이런 내가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 서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한 번이라도 더 웃기려고 애를 쓰고 있다니 참으로 신기한 노릇이다.


처음은 항상 우연하다. 방송 작가 일을 잠깐 쉬던 때, 취미 삼아 지역의 평생교육 수업을 들으러 간 적이 있었다. 주제는 '영화 OST로 배우는 영어회화'였다. 수강생은 나 포함 5명 정도였고, 동그랗게 앉아 어설픈 발음으로 다 같이 라라랜드 같은 OST를 부르며 영어 숙어를 배웠다. 그때 내 머릿속에 '이 정도 규모 강의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즈음 첫 책을 준비하고 있었고 혹시라도 나중에 사람들 앞에 나서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본능적으로  모양이다. 수업 과정이 끝나고 평생교육 담당자에게 혹시 글쓰기 강의는 필요 없는지 물었다. 나를 10년 넘은 경력의 방송작가라고 소개하며. 커리큘럼을 이메일로 보냈고 그렇게 얼떨떨하게 첫 강단에 서게 됐다.


다행히(?) 첫 수업의 수강자는 열 명이 채 안되었다. 하지만 어찌나 떨리던지,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목소리는 염소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준비해 온 내용을 차분하게 설명하려 했지만 자꾸만 말이 빨라졌다. 그럼에도 웃으며 들어주시는 천사 같은 수강생들 덕에 점점 마음이 편안해졌다. 덕분에 무사히 첫 수업을 마쳤다. 사실, 난 이 수업을 위해 집에서 연습도 여러 번 했다. 소파 위에 인형을 쪼르르 앉혀두고 강의를 했던 건 창피하니까 비밀이다.


처음을 통과하자 그다음부터 좀 부담이 덜했다. 평생교육원에서 감사하게도 분기별로 나를 찾아주었고, 나는 '내가 아예 강의를 못하진 않나 보다' 하는 안도를 하게 됐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덮쳤다. 글쓰기책을 내고 한창 강의 요청이 많아질 때였는데 오프라인 만남이 끊겨버렸다. 그 당시 나는 영어회화에 관심이 있어서(참 신기하다, 영어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데 계속 영어를 못한다) 강남에 원어민 영어회화 학원을 다니고 있던 때였다. 자연스레 비대면 수업으로 바뀌었고, 그때 '줌수업'이라는 것을 처음 접해본다. 처음에는 접속하는 법부터 어려워서 헤맸다. 모니터 안에서 수업을 듣는 게 어색했지만 적응하다 보니까 편리한 점도 많았다. 영어를 배우러 갔다가 기대치않게 원어민 강사들의 강의 스킬을 배웠다. 비대면으로 수강생들과 소통하는 법, 강의 자료 활용법 등을 벤치마킹하여 나의 온라인 글쓰기 수업을 기획했다. 만약 내가 영어학원에서 줌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기술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비대면 수업을 나는 쉽사리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웬만한 강의가 두렵지 않은데, 자신감을 끌어올리게 된 계기가 있다. '녹화 강의' 경험 덕분이다. 책 <어른의 문해력>이 좋은 평가를 받아 기업이나 교원 연수를 하는 곳에서 녹화 강의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들 앞에서 양방향으로 소통하며 하는 강의는 해봤지만 카메라 앞에서 혼자 떠드는 경험은 없었다. 무려 20강을 녹화해야 했는데 1강에 20분씩 총 400분 동안 혼자 떠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두렵고 고민되었지만 안 해본 경험을 해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기에 이번에도 하겠다고 했다.


거의 두 달에 걸쳐 강의 원고를 썼다. 스마트폰을 얼굴 앞에 세워놓고 대본을 곁눈질하며 강의를 하면서 모니터링을 했다. 자꾸 빨라지는 말투와 습관처럼 사용하는 단어들을 잡아내고 고치려고 애썼다. 여전히 부족함이 느껴져 '강의 잘하는 법'과 관련된 책을 사서 읽고 유튜브도 보았다. 한 가지 비법이라면, 나는 강의를 잘 못하는 사람 영상을 더 자주 보았다. '저렇게 하면 안 되겠다'하는 생각을 했고 '내가 저것보다는 잘하겠다'라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내 방에서 연습을 거듭했다. 드디어 대망의 날, 예쁘게 꾸며진 스튜디오 안에 카메라 6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 연습이 답이었다. 20강 강의를 거의 NG 없이 녹화에 성공했다. 현재 그 녹화강의는 교원연수와 기업연수 플랫폼에서 판매되고 있다. 당시 강의 녹화를 마치고 힘들어서 며칠을 앓았지만 면역주사를 맞은 것처럼 강의 공포증이 사라졌다.


당연히 헤매고 실수를 하기도 했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질문을 받아서 당황한 적이 있다. 조금 얼버무렸던 것 같은데 얼굴이 후끈거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분야 책을 주문해서 공부를 했고, 다음 강의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을 때 편안한 미소로 답변할 수 있었다.  


강의를 할 때 몸에 열이 오른다는 사실을 몰라 두껍게 입고 갔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수업을 마친 적도 있었다. 물을 준비하지 않아 목이 메어 기침을 연거푸 해댄 적도 있다(보통은 생수 정도는 준비해 준다). 강의 횟수가 쌓이면서 최적의 옷차림과 준비물, 질문에 대비를 단단히 하게 됐다. 결국은 겪어보는 수밖에 없다.


책을 내면 북토크니 강연이니 남들 앞에 설 기회가 적어도 한 번은 생긴다. 기회가 안 생기면 만드는 게 좋다. 1년 넘게 공들여 쓴 책이 쏟아지는 신간에 파묻혀 사라지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작가도 발 벗고 나서야 하지 않나. 내가 쓴 책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내향인이라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체질에 안 맞는다고 체념하기에 세상밖으로 내놓은 내 이야기가 너무 아깝다. 우선 눈 딱 감고 지르라고 권하고 싶다. 그다음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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