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발견한 연대
<영화와 인문상담> 첫 수업 시간, 각자 ‘인생 영화’를 소개하느라 들떴는데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감동적으로 본 영화들이 몇몇 떠올랐지만 기억이 흐리기도 했도 그것을 인생 영화라 칭하기에는 이유가 불분명했다. 결국, 엉뚱하게도 최근에 본 사무엘 베게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추천을 대신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시네마 천국>이라고 말하겠다. 그만큼 푹 빠져서 본 이 영화는 스토리, 영상미, 음악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까지 어느 하나 나에게는 아쉬움이 없었다.
내가 꼽은 한 장면은 영화 초반부, 알프레도와 토토가 많은 사람이 영화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극장 밖 건물 벽에 영화 화면을 쏘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다. 당시 ‘영화’는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인기가 좋고 높은 위상을 가진 매체였다. 시네파라디소가 불탔을 때, 생명을 잃을 뻔한 알프레도는 뒷전인 채 유일한 오락거리가 사라져 어쩌냐고 울분을 터뜨리는 어떤 이의 모습을 보고, 도대체 당시 대중에게 영화란 어떤 존재였을까 궁금해졌다.
그 궁금증은 영화에 열광하는 대중의 표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는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표정을 자주 비추는데(영화를 보며 ‘영화’를 보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설렘, 환희, 슬픔(대사를 따라 하는 빌런 관객 장면에서 폭소했다), 키스 신을 기다리는 애타는 표정, 채플린을 보며 깔깔깔 웃는 모습을 보며 당시 사람들에게 영화는 억눌린 감정을 배출하는 카타르시스였다는 걸 알아챘다.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불안, 가난의 고통, 버거운 일상에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 영화는 넓은 세계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호기심, 그리고 숨겨진 열망을 대신해서 펼쳐주는 기특한 도구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려면 돈이 필요했다. 또 특권을 가진 신부에 의해 편집되었다. 알프레도는 정식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이를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공평한 기회’를 나누어준 셈이다. 무엇보다 이를 토토와 함께했다는 것. 토토는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 차별받는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는 함께 이어져있다는 그 충만함 속에 자신의 꿈을 키워가지 않았을까.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것만큼 뿌듯한 일은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