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에 앞서 해야 할 일을 챙겨야 함에도 그 실천은 쉽지 않다. 아 물론 '하고 싶은 일'이란 내 생각과 영혼이 일체가 되어 갈구하는 그런 일 말고 본능적으로 끌리는 쾌락적인 행동들을 가리킨다. '해야 하는 일'이란 내 본능이 피하고 싶어하며 흔히 고통으로 인식되는 일들을 가리킨다.
우리는 단순히 하고 싶은 마음만을 앞세울 때 조금 손쉽게 후져지고 낡아가는 것 같다. 해야 하는 일을 앞세우는 것은 책임을 다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임을 다하는 것은 편안함과는 늘 거리가 멀지만 가능한 한 책임을 다하는 삶이 조금 더 바른 방향에 있다 여겨진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편한 감각에 이끌린다. 어쩌면 대부분의 문제는 여기서부터 생기는 것 같다.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대부분의 '하고 싶은 일'도 이에 속한다. 버튼 몇 번으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자극적인 콘텐츠를 보는 등,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즐거움을 얻는다.
노력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지 않겠으나 점점 바라는 정도가 과해진다. 중국의 고사처럼 그루터기에 토끼가 와서 부딪쳐 죽는 것을 보고 오매불망 그러한 행운만 기다리는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어쩌면 그러한 모양새를 비판하면서 내가 비슷한 모양으로 토끼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손쉬운 편안함을 갈구하면 역시 후져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기에게 편안한 당위만을 취사선택하기에 그렇다. 조직에서도 비슷한 궤적을 느낀다. 위에서는 의례적인 일이나 치레만으로 어떻게든 아래에서 알아서 해 주기를 바라며, 아래에서도 막연하게 위의 책임이 많다는 이유를 앞세우며 먼저 나서 주기를 원한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책임과 의무가 유쾌한 사람이 있을까? 시민사회를 움직이는 두 축이 권리와 의무라면, 우리는 아직 권리만을 빠르게 앞세우며 그것이 공정한지를 예민하게 살피는 시대에 있는 것 같다. 편안히 얻는 게 익숙하기에 작은 불편도 참기 어려운 모양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삶이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지기에, 조금만 더 고된 쪽을 일부러 고를 필요가 있을듯 싶다. 물론 인지와 실천은 전혀 다른 문제라 나도 번번이 편안한 선택에 굴복하지만, 책임을 마주하고 자유로부터 너무 멀리 도피하지 않아야 내 삶도 우리가 일할 조직문화도 우리가 살아갈 시민사회도 조금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