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마 Oct 21. 2024

돈오: 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하기

곳곳에서 접한 여러 사실의 조각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추어지는 때가 있다. 그것이 사실인지를 검증하는 것은 다른 문제지만 물밑의 맥락이 문득 떠오를 드는 짜릿함이 있다. 그렇게 문득, 어쩌면 '반면교사'는 우리의 삶에서 기능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언젠가 우리의 뇌가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영상을 보았다. 부정할수록 오히려 더 강조되어 그것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외침에 코끼리가 떠오르는 것과 같다. 눈 덮인 산길을 내려가는 스키 선수가 '나무에 부딪치지 않겠다'가 아니라 '길을 따라가겠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스키선수의 입장에서는 길에 집중하는 가운데 부딪치지 말아야 할 나무를 자연스레 피하는 것이다. 반면교사란 말 그대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라는 깨달음이다. 후진 것을 보며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만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러지 않겠다고 되뇔수록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이 무언가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싫어할수록 은연중에 닮아 가는 것과도 비슷한 것 같다. 그러니 반면교사는 한 번의 순간으로 족하다. 한 번의 깨달음 이후에는 반드시 나만의 방향이 따라와야 한다.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에서 그칠 게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를 되뇌야 다음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고자 하는 바에 집중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가져가고 다듬을 수 있다면 단정한 일상을 꾸리는 것도 그렇게 머나먼 꿈만은 아닌 것 같다.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나만의 시선에 매몰되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살아내는 방향으로 또 한 걸음 내딛는 한 주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회고: 일상 쌓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