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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획과 편집 Oct 10. 2019

생존을 위한 선택에 거침없는 여성 소설

그러나 주체적이지 못한...

《제인 에어〉(지은이 샬럿 브론테, 옮긴이 나선숙, 미르북컴퍼니)

최근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말이 하나 있다. ‘선택장애’ 취향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과 음식점이나 카페를 갈 때면 꼭 듣는 말이다. “나 선택장애 있어.” 누구나 여러 가지 선택지 앞에 놓이면 – 어떤 이득과 손해가 발행할지 모른다면 더욱 – 합리적인 결정에 어려움이 느낀다. ‘선택’은 분명 어렵다. 근데 거기다 ‘-장애’라는 접미사까지 붙이면서까지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반면, 19세기를 살았던 제인 에어는 선택에 장애가 없었다. 오히려 과감했다. 부모나 남아있는 혈육을 모두 잃고, 자신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외숙모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에게 선택은 취향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어떤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그녀의 거침없고 직관적인 선택은 갈등에서 탈출하는 동시에 독자에게는 새로운 사건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외숙모의 집을 떠나 로우드 기숙학교에 가기로 한 것과 로우드를 떠나 손필드 저택의 가정교사가 된 것, 그곳에서 자신의 사랑을 만나 결혼을 선택한 것, 불미스러운 일로 결혼이 취소되자 손필드 떠나기로 한 것. 이런 결정적인 선택이 있을 때마다 공간적 배경도 바뀐다. 매번의 선택이 꼭 절대적으로 괜찮은 결과를 불러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고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다. 

Image by Gerd Altmann from Pixabay

우연히 알게 된 사촌 오빠 세인트 존 에어 리버스가 함께 인도로 떠나자했을 때도 제인 에어는 완강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인트 존은 제인 에어에게 선교 동반자로서 떠나자는 말로 청혼을 한다. 분명 세인트 존은 분명 제인 에어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음이 확실했다. 나름 자신의 방법으로 끊임없이 마음을 표현했지만 제인 에어는 결혼으로 세인트 존이라는 울타리에 갇히게 될 삶을 확실하게 경계한다. 물론 처음부터 세인트 존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제인 에어는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찾아 다시 손필드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것은 모든 재산과 한쪽 손마저 잃은 로체스터다. 그녀에게는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단지 자신이 그리워했던 사람이라는 사실만 중요했다. 

《제인 에어》는 제인 에어의 주체적인 선택과 결단력 있는 판단이 단연 돋보이는 소설이다. 모든 사건은 그녀의 선택에서 시작되고 그로인해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특히 결혼이 취소되던 날, 로체스터와 손필드로부터 도망친 그녀가 며칠 동안이나 황야에서 굶주리며 잠을 잘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배경과 인물의 감정 표현에도 섬세하다. 계절의 온도와 감정의 온도의 표현은 ‘정확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다. 문장에 쓰인 표현을 온전히 영상화할 수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배경의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물론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분명 제인 에어는 친척이나 혈육이 없는 것에 대해 불행하거나 슬프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먼 친척이 자신을 찾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고도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은 점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 알고 보니 세인트 존이 사촌오빠였다는 내용에서는 대부분의 고전소설과 마찬가지로 우연성에 의존하고 있는 한계가 드러났다. 후반부에서 많은 재산을 상속받고도 욕심부리지 않는 모습은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제인 에어는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지 않는다. 참고 참고 또 참다 보니 많은 재산이 생겼고 그로 인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은 로체스터를 다시 찾아갈 수 있던 이유도 경제적인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그 전에 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먼 친척이 제인 에어에게 큰돈을 상속해주었다는 것부터 개연성이 부족하다.   

〈제인 에어〉(2011, 캐리 후쿠나가)

2011년에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2014)에서 엘리스 역을 맡은 미아 와시코우스카와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의 메그니토 역으로 유명한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을 맡은 영화 〈제인 에어〉가 개봉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출연과 소설에서 느꼈던 감동을 영상으로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바로 결제했다. 하지만 두 권의 책을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영상으로 압축해 표현하기에는 역시 역부족했나 보다. 영화와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 어차피 결말의 내용을 알기 때문에 - 뒷부분 먼저 살짝 보았지만, 소설에서 느껴지던 감동은 절반도 느낄 수 없었다. 폐허가 된 대저택의 검게 그을린 벽과 그것을 바라보며 로체스터를 걱정하는 제인 에어의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까 잔뜩 기대했지만, 감독의 감상은 나와 달랐나보다. 과감히 생략된 내용과 상상했던 것만큼 표현되지 못한 배경들은 나를 실망케 했다. 보나 마나 앞부분도 그러했겠지.

《제인 에어》를 읽다 보면 19세기 영국의 한적한 시골에서부터 중소 도시의 풍경이 잘 표현된 소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비록 낡았지만 웅장하면서도 거대한 대저택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것이 영화 〈인셉션〉의 수준이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는 말처럼 책을 읽는 동안에는 시대를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다만, 앞서 말한 것처럼 외로워도 슬퍼도 참고 견디니 얼굴도 보지 못한 먼 친척으로부터 갑자기 큰 재산을 상속받아 행복해진 캔디형 인물(또는 금수저)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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