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를 위하여

옛날 옛적에, 시를 좋아하는 인어공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시보다도 노래 부르는 걸 더 좋아했습니다. 매일 밤, 그녀는 바다 속에서 그녀가 쓴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렀습니다. 그녀는 날 때부터 가수이자 시인인 이 세상의 유일한 인어공주였습니다.


인어공주가 열 살이 되는 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 옆에는 마녀가 서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이 마녀가 네 선생님이 될 거다. 그리고 네가 알아야 할 바다 위 세상에 대해 알려줄 거야.

-왜 내가 바다 위 세상에 대해 배워야 하죠?

인어공주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열 다섯 살이 되면, 알게 될 거다.

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부터 인어공주는 마녀로부터 인간의 언어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도무지 수업이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수업 중에 자주 자작곡을 흥얼거리곤 했죠. 마녀는 그녀의 태도가 몹시 성가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언니들은 세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 안달이었기 때문입니다.


-맙소사! 넌 정말 바다 위 세상에 대해 관심이 없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열 다섯 살이 되면 넌 싫어도 바다 위에 나가야 해. 그때부터는 밤마다 바다 위 공기를 마셔야 살 수 있어. 우리는 완전한 물고기가 아니니까. 그러면 바다 위 세상에 대해서 알아야 한단 말이야. 바다 위에 뭐가 돌아다니는지,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냐.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언니들은 막내 인어공주를 나무랬습니다.


-난 아무 관심 없어.

막내 인어공주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큰 언니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바다 위 세상을 다스리는 왕자가 사람들을 거느리고는 뱃놀이를 오곤 해. 그때, 왕자를 홀리려면 인간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세상에 무슨 노래가 유행하는지, 왕자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 온전히 알고 연습해야지 그나마 왕자와 맺어질 확률이 높단 말이야.

그녀는 도무지 언니들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왜 왕자 따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지?


어느 날, 마녀는 인어공주에게 몹시 화가 났습니다.

-너한테는 가르쳐봤자 도무지 아무 소용이 없어. 배우려는 의지가 하나도 없으니. 난 이제 포기하련다.

-바다 위에 나가면 네가 원하는 노래나 실컷 불러라.

-정말 그래도 돼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습니다.


열 다섯 살이 되는 날 밤, 그녀는 드디어 바다 위 바위에 올랐습니다. 그 날은 보름달이 밝게 떠 바다 물결이 금빛 실크처럼 은은히 빛을 발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녀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녀만이 부를 수 있는 그런 노래였지요. 온 세상이 그녀의 노래를 숨죽여 듣고 있었습니다. 그녀만 모르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안녕하세요.

저 배 위에서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어깨, 깊고 맑은 눈을 가진 사람.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그녀는 서둘러 바다 속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네가 본 사람이 바로 왕자님이야.

언니들은 인어공주보다 더 신이 나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너한테 말을 걸었다고?


-난 왕자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고 마녀한테 배운 노래 몇 천 번 연습해서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는데.

큰 언니가 말했습니다.

-나도야.

작은 언니가 씩씩대며 말했습니다.


막내 인어공주는 “몰라, 난 관심 없어.” 하고 방으로 들어왔지만 그날 침대에서 밤새 뒤척였습니다. 흑수정보다 맑고 깊은 그의 눈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아무도 바다 위로 올라가지 말거라. 내 말을 듣지 않고 올라갔다가는 한 달간 물 위로 올라갈 수 없다. 그랬다가는 한 달 동안 산소통을 매고 생활해야 한다.”

다음날 밤, 아버지가 모두에게 엄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오늘 밤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모두가 잠들었을 때 그녀는 바다 위로 올라갔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거센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고 그녀도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번쩍’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자 순식간에 세상이 밝아졌고 그녀는 바다 한 가운데 배 한 척이 쪼개지는 걸 보았습니다. 그녀는 쏜살같이 유연하게 헤엄을 쳐 그 배에 다다랐습니다. 흠뻑 젖은 몸에 창백한 볼, 감기어진 눈의 왕자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을 힘을 다해 그를 해변가에 옮겨 놓았습니다.


그리고 밤새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의 흠결 없는 피부. 길쭉한 손가락, 탄탄한 가슴을 한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드디어, 왕자가 그 검고 맑은 눈을 떴습니다. 둘은 눈을 마주쳤습니다.

“당신이 나를 구해주었군요! 가지 마시오. 나와 결혼해 주시오.”


인어공주는 눈으로 그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그녀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제 저는 한 달 후에나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물 위로 올라가지 말라는 아빠 말을 어겼거든요. 한 달 후에 바위 위에서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 불렀던 노래를 부를게요. 그때 만나요. 그리고 그때 절 데려가 주세요. 당신의 왕궁으로.”

하지만 그녀는 인간의 언어를 몰랐기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 동이 터 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가야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인어공주는 그 빨갛고 귀여운 입술을 그의 볼에 갖다 대었습니다. 그리고 물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인간의 언어를 배울래요. 왕자와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왕자와 결혼할 거에요.”

그녀는 마녀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진작 그렇게 나올 것을.”

마녀는 사악하게 웃었습니다.

“하지만,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네가 인간의 언어를 배우면 넌 더 이상 너만의 그 괴상망측한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단다. 네 혀가 인간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순간 넌 인어의 언어를 잊게 되지. 네 언니들을 봐. 점차 인어의 말을 잊어가고 있잖아.”


“뭐라고요? 이 나쁜 마녀! 언니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

인어공주의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알건 말건 그 애들은 왕자에 미쳐서 상관 안 할 거다. 애초부터 자신의 언어 따위엔 관심이 없던 애들이니. 왜, 싫으니?”

“아버지에게 일러서 널 당장 감옥에 가둬버릴 거야.”

“난 이미 늙을대로 늙었다. 어디서 살건 문제가 안 돼. 네 맘대로 하렴. 하지만 이건 기억해야 한다.”

“또 뭐가 있지?”

“인간과 살려면 넌 인어다리를 싹둑 잘라버려야 해.”


다리를 잃는 건 상관 없지만 내 목소리를 잃게 된다고?

그렇게해서까지 왕자와 결혼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 난 아무와 결혼하지 않아도 좋으니 내 목소리를 지킬 거야. 죽을 때까지.


막내 인어공주는 언니들을 모았습니다.

“언니들, 이제 더 이상 인간의 노래를 불러선 안 돼.”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들은 인어의 목소리를 잃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뭐? 그게 정말이야? 어쩐지 요새 자꾸 단어가 생각이 안 나더라니.”



나쁜 마녀는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인어들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비한 그들의 언어로만 노래를 부릅니다. 당신이 보름달 아래 인어의 노래를 듣게 된다면 저도 모르게 바다 속에 빠지지 않도록 당신의 몸을 밧줄로 비끄러매어야 할 것입니다.


막내 인어공주는 가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러 온 왕자의 얼굴과 마주합니다. 그의 얼굴은 몹시 슬퍼 보입니다.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을 아는 사람처럼. 그도, 그녀도 알고 있습니다. 그 몇 분간의 만남이 그들에겐 잊지 못할 사랑의 순간이란 걸. 그러하기에 그녀는 더욱 미끈하고 유려하게 자신만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그는 숨죽이고 그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럴 때면 하늘도, 바다도 조용히 그녀의 노래에 귀 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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